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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군인 김관진, 그가 말해야 할 것들

ⓒ 오마이뉴스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이 주목받고 있다. 국방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사실을 청와대에 고의로 누락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다. 지난달 30일 청와대는 국방부가 사드 추가 반입과 관련해 수차례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보고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국방부가 이를 공식 부인하자 청와대는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의 공식 브리핑을 통해 사드 추가 배치를 파악하게 된 배경을 자세히 공개했다.

청와대는 브리핑에서 애초 국방부 보고서 초안에 들어있던 발사대 6기에 대한 문구가 삭제되면서 두루뭉술하게 보고됐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 사이의 대화 내용도 공개했다. 정 실장이 한 장관에게 "사드 4기가 추가됐다는데요"라고 묻자, 한 장관이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했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청와대는 관련 사실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이 진상조사를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파장이 커지면서 세간의 이목은 한 장관과 김 전 실장, 그리고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게 집중됐다. 한 전 장관과 김 전 실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사드 배치를 주도했던 인물인데다, 황 총리는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정을 지휘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한 장관과 김 전 실장은 사드 배치 보고 누락과 관련해 청와대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을 중심으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파문에 연루된 당사자들이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드 배치 보고 누락과 관련해 한 장관이 자신의 입장을 적극 표명하고 있는데 반해 김 전 실장은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한 장관은 지난달 31일 기자들에게 "실무진이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내용을 빼라고 한 적이 없다"며 반박하는가 하면, 정 실장과의 대화 내용 역시 "대화를 하다 보면 관점의 차이가 날 수도 있고 뉘앙스의 차이도 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청와대 조사를 받은 다음날에도 "조사 중인 내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면서도 "충분히 설명했다"고 밝히는 등 입장 표명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태다.

반면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김 전 실장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사드 배치 보고 누락 사실이 공개되고, 그로 인해 청와대로부터 조사까지 받았음에도 관련 내용에 대해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김 전 실장은 청와대 인수인계 과정에서 사드 관련 회의록이나 정책 결정 과정과 관련된 자료 등을  인계하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낸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사드 배치 보고 누락에 김 전 실장이 중심이 된 '독사파'가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독사파는 독일 유학이나 연수를 다녀온 육사 출신 유학파 모임으로 김 전 실장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 탄핵 이후 사드 문제는 김관진 실장이 독점적으로 일처리를 해왔다. 실제로 보고 누락을 김관진씨가 지시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걸 주도했던 사람들은 대개 김관진씨와 다 연관이 있는 분들"이라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이어 "김관진 전 안보실장을 비롯한 김관진 인맥 등 육사 내의 특정인이 중심이 된 몇몇 사조직이 결탁해서 군내 여러 사안들을 좌지우지 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군내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청와대 보고 라인에 있는 몇몇 인사가 독사파이며, 그들이 김 전 실장과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홍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 전 실장을 중심으로 한 군내 사조직이 국방과 안보분야의 기밀과 정보를 독점하며 국방 인사와 정책을 주도해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군내 사조직 문제는 김영삼 정부 시절 단행됐던 '하나회' 척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돼왔던 사안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열렸던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의 박범계 의원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군내 사조직인 '알자회' 인사에 개입했으며, 이 과정에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도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육사 34기에서 43기 사이의 인사 100여 명으로 구성된 알자회는 군내 인사와 정책 결정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군내 사조직이다. 따라서 독사파와 알자회 등 군내 사조직 문제가 이번 사드 배치 보고 누락 파문 과정에서 재부각된 만큼 김 전 실장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과 국가안보실장을 역임하며 지난 수년 간 대한민국 군과 국가안보 정책 전반을 통솔해왔던 책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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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실장이 해명해야 할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감사원은 현재 차세대 전투기 사업(FX사업)과 관련해 방위사업청을 감사 중에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김 전 실장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FX사업은 7조원이 넘는 국가 예산이 투입된 대표적인 국방사업이었다. 지난 2007년 공군의 소요 제기로 검토가 시작된지 6년 만인 2013년 9월 미국 보잉사의 F-15SE로 최종 모델이 상정됐지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이를 부결시켰고 그로부터 6개월 뒤에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F35A로 기종이 변경된다.

F-15SE를 부결을 주도했던 방위사업추진위원장이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 전 실장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종이 바뀌는 과정이 영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당초 군 당국과 정부는 기종변경의 대가로 미국측으로부터 핵심기술을 이전받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계약 체결 이후 미국 측은 이를 거부했고 핵심 기술 이전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군 당국과 정부는 아무런 대비책을 마련해놓지 않아 의혹과 지탄을 동시에 받아야 했다.

F35A의 성능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엔진 결함이 발견되는가 하면 이륙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고, 핵심 기술인 소프트웨어 개발이 늦어지는 등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미 국방부조차 2017년 7월 말로 예정된 개발 시험 완료 시점을 1년 가량 늦춰야 한다고 의회에 보고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우리 군은 결함 논란은 물론이고 성능 검증이 채 끝나지도 않은 F35A를 오는 2018년부터 매년 10대씩 40대를 도입하기로 전격 결정해 버렸다


FX사업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의문점과 의혹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문제제기가 잇따랐지만 당시 책임자였던 김 전 실장은 절차대로 진행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사드 배치 문제부터 시작해서 사드 추가 반입 보고 누락 파문, 알자회·독사회 등 군내 사조직 논란, 그리고 FX사업에 이르기까지 김 전 실장이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던 지난 2010년 10월 국방부 장관에 임명된 이후 최근까지 김 전 실장은 무려 7년 가까이 대한민국 국방부와 군 조직을 이끌며 국가안보를 책임져온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군내에 방산비리, 군납비리, 병영 내 폭행사건, 군 지휘관 성추문 사건 등 각종 비리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던 오욕의 세월이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이 청와대를 나온 이후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는 의혹들은 결코 우연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 온 국민의 시선이 꽉 다문 그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진실을 말해야 할 책임이, '그'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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