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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당권 노리는 홍준표, 그가 놓치고 있는 것

ⓒ 오마이뉴스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4일 귀국했다. 대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정국 구상에 몰두했던 홍 전 지사는 한국당의 신임 지도부를 선출하게 될 7.3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출마할 예정이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에도 홍 전 지사는 정치활동을 활발하게 해온 터였다. 대선 이후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다른 대선후보들과 달리 그는 SNS를 통해 국내 정치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존재감을 부각시켜왔다.

이른바 'SNS 정치'로 명명되는 홍 전 지사의 행보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 공세를 취하는 것이 그 하나요, 친박계를 겨냥하는 것이 그 둘이요, 바른정당에게 각을 세우는 것이 그 셋이다. 홍 전 지사는 이를 통해 무너진 보수세력을 일으켜 세울 적임자가 자신임을 지지층에 강조하고, 당권 경쟁과 보수적자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심산이다.

지난달 29일 홍 전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에 집권한 노무현 정권 2기는 준비된 좌파정권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먼저 할 것은 우파 분열정책일 겁니다"라며  "검찰을 동원해 사정정국으로 가서 자유한국당울 부패집단으로 매도하고 이 땅의 보수들을 궤멸시키려고 할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문재인 정부가 보수궤멸을 위해 대대적인 사정에 나서리라 예상되는 만큼 이를 저지시키기 위해선 강력한 대여투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보다 앞선 24일과 21일에는 각각 "극소수 친박들이 지도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변경을 시도하는 것은 당 쇄신을 막고 구체제 부활을 노리는 음모에 불과합니다. 이는 국민과 당원이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한국 보수세력을 이렇게 망가지게 한 세력들은 이제 반성하고 역사에 사죄해야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이 탄핵된 세력들이 또 다시 준동한다면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친박계를 정조준하기도 했다.

홍 전 지사는 바른정당을 향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바른정당을 금수저 물고 태어나 서민 코스프레나 하는 "얼치기 강남좌파", "위성정당" 등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일부 인사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가차없이 버리자고 하는 등 아예 노골적으로 흡수 통합을 거론하고 있다. 다만 그는 바른정당이 건전보수 프레임으로 나오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약 한달 여 동안 홍 전 지사가 보여준 전략적 행보를 요약하면 '문재인 정부와 친박·바른정당 때리기'로 규정할 수 있다. 그는 이를 통해 궤멸 위기에 빠진 보수세력을 규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양이다. 실제 보수층 사이에서는 강력한 리더십과 대중 선동력을 갖춘 홍 전 지사가 한국당을 이끌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상당하다. 위기에 빠진 한국당을 재건할 인물로 저돌적이고 거침없는 홍 전 지사가 적격이라는 것이다.

열기가 뜨거웠던 홍 전 지사의 귀국 풍경 역시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4일 인천공항은 환영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이에 고무된 듯 홍 전 지사는 다음날 페이스북에 "패장이 귀국하는데 환영하러 공항에 나오신 인파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큼 마음둘 데 없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대선 패배에 대해 사죄드리고 앞으로 자유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데 함께 하기로 약속했습니다"라는 소회를 피력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에 나설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 오마이뉴스


그런 면에서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7.3 전당대회는 홍 전 지사가 구상 중인 '홍준표식' 보수재건을 위한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국당을 '꽉' 잡고 있는 친박계의 권위와 아성을 무너뜨리고 당 대표가 될 수 있다면 그가 천명하고 있는 보수재건의 당위는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관건은 친박계의 막강한 조직과 세를 홍 전 지사가 감당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바른정당 창당으로 인해 당내 친박계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진 상태다. 당내 권력구조가 기존의 '친박-비박'에서 '친박' 하나로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홍 전 지사의 고민은 대중적 인지도만으로는 계파와 조직이 탄탄한 친박계를 상대하기 벅차다는 점이다. 여기에 친박계와의 정치적 타협을 이뤄낼 가능성도 희박하다. '바퀴벌레' 논쟁에서 드러나듯 둘 사이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것이 중론이다.

홍 전 지사가 당 대표가 된다 해도 난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먼저 바른정당과의 보수적자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부터가 미지수다. 국정농단 사건과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한국당의 치부가 여실히 드러났고, 그 과정에서 합리적 성향의 보수층이 상당수 이탈해 바른정당으로 옮겨갔다. 그 결과 한국당은 TK지역과 충성도 높은 60대 이상의 보수층을 제외하면 지지기반이 급속하게 얇아진 상태다. 두 당 사이의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다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는 한국당의 잠재적 불안 요소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홍 전 지사를 향한 당안팎의 우려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극대화된다.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결국 정당 쇄신과 혁신으로 모아진다. 구시대의 관성과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라는 것이 탄핵정국에서 확인된 민심이었다. 그러나 홍 전 지사는 기존의 정치 문법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해묵은 진영논리와 색깔론으로 분열을 시도하는가 하면 빈약한 근거와 논리로 정치공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가 검찰을 동원해 사정정국을 조성할 것이라는 주장은 양심이 있다면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몰염치한 행태다. 시대착오적인 사정·공안정국을 부활시켜 야당인사를 탄압하고, 정부여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온 건 다름 아닌 구 여권이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한국당을 외면하는 이유가 보편적 상식과 가치를 허무는 그들의 구시대적 정치행태 탓이였다는 사실을 그는 여전히 인지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인사청문회가 끝나면 당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것도 권력이라고 집착한다면 정치적으로 퇴출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자유한국당은 늘 이러한 치열한 문제의식 없이 눈감고 넘어가는 바람에 망한 겁니다. 당을 혁신하고 재건 할려면 구성원들의 절실함과 치열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제1야당입니다. 야당답게 전열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지난달 17일 홍 전 지사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 중의 일부다. 혁신과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건 그가 당이 직면한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는 방증일 터다. 그러나 절실함과 치열함의 방향이 틀렸다. 혁신과 개혁의 전제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책임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에 대한 성찰과 고민 없이 혁신과 쇄신을 말하는 건 대단히 비겁하고 위선적인 기만 행위일 뿐이다. 이율배반이 제1야당 재건의 시작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어쩌면 지금 홍 전 지사에게 필요한 건 외부를 향한 공세적 비판보다 '스스로'를 향해 던지는 치열한 문제의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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