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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책연대부터 시작하겠다, 안철수의 변신이 의미하는 것

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정책연대협의체'가 출범했다. 2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 권은희 원내수석부대표, 채이배 의원과  김세연 바른정당 정책위의장, 오신환 의원 등 5명이 모임을 갖고 양당의 정책연대 모임인 '정책연대협의체'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앞서 28일 국민의당은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의당·바른정당 정책연대협의체'를 결성하겠다며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한 법안들을 중심으로 '정책협약 6대 분야'를 선정해 공동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 공조하겠다고 밝힌 '정책협약 6대 분야'는 ①제왕적 대통령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입법 ②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입법 ③정치 선거제도 교육 사법 등 개혁을 위한 입법 ④민생 및 일자리 창출 입법 ⑤방송 개혁 법안 ⑥안보포퓰리즘 방지 법안 등이다.


국민의당은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입법 및 정책공조를 추진함으로써 극과 극으로 점철된 정치투쟁을 종식시키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연대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라고 정책연대의 취지를 설명했다. 통합 문제로 극심한 내부갈등에 휩싸이고 있는 만큼 바른정당과의 입법 및 정책 공조 등을 통해 통합의 물꼬를 트겠다는 전략적 의도로 풀이된다.

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안철수 대표의 최근 행보도 이와 같은 전략 수정에 무게를 실어준다. 안 대표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다당제 정착을 위한 과제와 국민의당의 진로' 토론회에서 참석, 모두 발언을 통해 분권의 의미와 국민의당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기자들의 통합 관련 질문에 대해선 "지금은 정책연대부터 시작하는 입장"이라며 "그 부분부터 잘 조율해 나가겠다"고 말을 아꼈다. 이는 통합의 당위와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역설하던 기존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로 국민의당은 그동안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심각한 내홍에 휩싸여 있었다. 통합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의 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설전이 오고 갔고,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은 안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기까지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민의당이 분당 수순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제기되기도 했다. 통합에 대한 이견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데다가, 그 과정에서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정체성과 노선의 차이가 극명하게 표출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대하고 있는 호남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안 대표에 대한 불신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국민의당 창당 주역이자 호남 중진 의원들의 좌장 격인 박지원 의원은 안 대표를 '저능아'라고 공격하는가 하면, 바른정당과의 통합으로 제 2야당이 될 수 있다는 안 대표의 생각을 '구상유치'라 대놓고 비꼬기도 했다. 정동영 의원과 천정배 의원 역시 안 대표의 통합 행보를 비판하며 '통합 불가'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이 세 사람은 통합반대 모임인 '평화개혁연대' 발족을 주도하고 있는 상태다.


ⓒ 오마이뉴스


이래저래 안 대표가 '독불장군'식으로 통합을 밀어붙이기는 어려웠을 터다. 호남 민심은 물론이고 호남 중진 의원들의 당내 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탓이다. 게다가 안 대표가 당내 반발을 무시하고 통합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당이 쪼개질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극한의 상황이었다. 통합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안 대표가 한발 물러서서 정책연대를 먼저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와 같은 당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통합 반대파 역시 안 대표에 무작정 반기를 들 수 없는 입장이다. 국민의당 내에서 안 대표가 갖는 상징성이 여전히 절대적인 데다가, 통합으로 인한 내부 갈등을 집단 탈당이나 분당으로 연계시킬 동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통합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한 평화개혁연대의 발족이 피일차일 미뤄지고 있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천 의원은 지난 2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끝장 토론 뒤 20명 이상의 현역 의원이 참여해 모임을 발족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평화개혁연대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세부 일정은커녕 명단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는 세 규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런 상황에서 안 대표가 통합 행보를 잠시 유보하고 정책연대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로 당안팎의 피로감이 쌓여가는 상황에서 호남 중진 의원들을 상대로 극단적인 '치킨게임'을 펼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원외지역위원장 간담회 결과 통합 찬성 의견이 우세하게 나타나고, 당원을 상대로 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 역시 통합 찬성 비율이 높게 나타나자 당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며 반대파 설득에 나서겠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다당제'와 '중도보수 통합'이라는 화두를 앞세워 통합 움직임을 본격화 하려 하고 있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촛점이 내년 지방선거에 맞춰져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의 국면으로 지방선거를 치르게 되면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국민의당으로서는 어떻게든 정치 지형에 모종의 변화를 만들어 내야만 하는 입장이다. 그런 면에서 안 대표에게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선택지가 없는 사실상의 '외길'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안 대표의 통합 의지가 노골화되면서 그 진의가 의심받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파들은 바른정당과의 통합이 궁극적으로 자유한국당까지 끌어안는 3당 합당의 재판이 될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통합파와 반대파의 대결이 정치철학과 노선, 지지기반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타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안 대표의 전략 수정은 이와 같은 당내 현실이 반영된 결과일 터다. 때맞춰 중도보수 통합의 한축인 바른정당도 안 대표의 구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유승민 대표가 28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희망도 변화도 없는 한국당과의 통합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도리를 친 것. 동병상련을 앓고 있는 셈이니, 누구보다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을 터. 한국당이 문을 걸어 잠근 상황에서 국민의당과의 연대 및 통합에 힘을 쏟겠다는 취지다.


무리한 통합 행보로 당내 갈등과 분열의 중심에 서있던 안 대표가 조금 멀리 보기 시작했다. 정책 연대를 통해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그를 바탕으로 내년 지방선거를 통해 본격적인 선거 연대와 통합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내부적으로도 극단적인 대결을 펼치기보다 논의와 설득의 과정을 통해 공통분모를 찾아나가겠다는 뜻이다. 반대파들도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나 선거연대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니 명분도 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의 변신은 주목할 만하다. '선 실리, 후 타개' 전략을 들고 나온 안 대표의 통합 구상이 어떻게 결말이 나게 될지 흥미롭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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