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6개월 동안 이미 적폐가 산처럼 쌓였다? 그럼 뭐, 5년 한 이명박 전 대통령 때의 적폐는 뭐 히말라야 산맥을 이루고 있겠습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적폐가 산 하나면 여기는 히말라야 산맥 정도 있는 거네요. 재미있는 말을 많이 했네요. 환부를 메스로 도려내듯이 해야지 최소한으로. 그런데 본인이 그 환부면 어떻게 할려고 이런 말을 합니까? 어쨌든 그런 인터뷰를 했습니다."
22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1부에서 나온 김어준 공장장의 발언이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적폐가 산처럼 쌓였는데 누가 누구를 청산하느냐"라고 반발한 것을 신랄하게 비꼰 것이다. 재임 당시의 치부와 부정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임에도 사과 한마디 없이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을 힐난한 것일 테다. 한마디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정권에서 자행된 불법과 부정의 실체를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행위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국가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적폐청산'은 불공정한 특권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혁신하는 작업이다. 더욱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불법 행위들은 하나 같이 민주주의의 근간과 헌정질서를 심각하게 유린한 중대범죄였다. 따라서 이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은 정치보복이 아닌 정의와 공정, 상식을 회복하고 복원시키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무조건적으로 반발만 하고 있다. '야당 탄압', '정치보복' 프레임을 가동시켜 본질을 호도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보수야당의 반발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라 볼 수 있을 터다. 가만히 있다가는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작동한 결과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대선 참패의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보수야당으로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보수결집과 보수개혁을 위한 모멘텀을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한다는 게 고작 '적반하장'과 '어불성설'이다. 밑도 끝도 없는 생떼와 어깃장을 부리고 있는 보수야당의 행태를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적절한 비유는 없을 터다. 이동관 전 수석의 항변만 보더라도 이 얼마나 궁색하고 졸렬한가. 그런 의미에서 이제 고작 6개월 된 문재인 정부의 적폐가 산이라면, 국가권력을 총동원해 5년 동안 전횡을 일삼던 이명박 정부의 적폐는 히말라야 산맥에 견줄만 하다고 꼬집은 김어준 공장장의 지적은 대단히 시의적절해 보인다.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막고, 집권 세력을 견제·감시하는 것은 야당의 중요한 책무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적확한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 비판을 전제로 한다. 그것이 결여된 야당의 비판은 무분별한 정치공세나 발목잡기에 지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현 보수야당은 바로 이 부분이 심각하게 왜곡·결핍되어 있다. 비판의 근거와 논리가 불분명한 데다, 최소한의 형평성과 일관성조차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 뉴스1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발생한 북한 병사 귀순 과정에서 우리 군의 대응 방식을 문제삼으며 이를 정치쟁점화 시키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행태가 그 비근한 예일 터다. 한국당은 22일 장제원 수석대변인의 구두논평을 통해 우리 군의 대응을 비판하며 문재인 정부의 사과와 함께 책임자 문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쪽으로 총격을 가했고, 추격조 중 1명이 MDL을 넘어왔다가 돌아갔는데도 우리 군이 군사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러나 JSA 관할 경비부대의 운영과 비무장지대 내 경계초소 운영 등의 임무를 맡고 있는 유엔군사령부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 군을 매섭게 몰아세우던 한국당과 달리 상황 대처가 적절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유엔사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JSA 소속 자원들이 적절한 조치를 취했으며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을 막았고 인명 손실 또한 없었다고 결론지었다"며 우리 군의 대응을 높게 평가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절제된 대응으로 교전이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는 판단이다.
유엔사는 또한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CCTV와 열상감시장비(TOD) 영상을 공개하며 "한국 측 경비대대는 신속한 대응준비를 했고, CCTV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상황관리를 했다"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굉장한 용기를 보여주었다"고 극찬했다. 이는 "북한군이 MDL을 넘어와 총부리를 겨눴는데도 우리 군이 아무 대응도 못했다. 언제부터 대한민국 국군이 이렇게 나약한 군이 되었느냐"고 거세게 비판한 한국당의 인식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평가다.
한국당은 우리 군을 거세게 질책하는데 유엔사는 외려 한껏 치켜세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와 비판부터 하고 보는 한국당의 맹목적 관성이 빚어낸 웃지 못할 촌극이다. 남·북한군이 완전무장을 한 채 지근거리에서 대치하고 있는 JSA는 한순간의 오판이 자칫 심각한 교전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지역으로,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대응이 요구되는 곳이다.
유엔사가 극찬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 군이 위중한 상황에서도 사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침착하고 절제된 대응으로 교전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앞뒤 정황은 생각지도 않고 무조건 비판 일색이다. 그러다 보니 이와 같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유엔사의 팩트 폭격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이같은 민망한 상황 말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당에게 과연 우리 군의 나약함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국당이 집권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만큼 우리 군의 '군기'가 빠져있던 때가 또 없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노크 귀순 사건, 목함 지뢰 사건 등 국가안보가 '뻥' 뚫린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는가 하면,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안보위기가 고조되던 2013년 3월에는 군 장성들이 태연스럽게 골프까지 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해 연평도에서 탈북자가 어선을 훔쳐 월북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군의 심각한 전력 공백을 야기시키는 방산비리와 군납비리도 끊이질 않았다. 통영함·소해함, 고속함·호위함·정보함 등의 군함건조사업은 물론이고 무인기 사업, 한국형 개인화기 개발사업, 헬기사업 등의 방산비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가 하면, 방탄복·야전상의·배낭·전투화, K-11 복합형 소총 등 군납비리가 그 사례를 일일히 열거하기 벅찰 정도로 부지기수로 발생했다. 이처럼 우리 군이 내부적으로 곪아가고 있는 동안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한국당의 잣대대로라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할 터다.
주지한 바와 같이 비판은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일관된 원칙과 기준 하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한국당은 뚜렷한 근거도 명분도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 비판을 위한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성찰은커녕 일말의 반성조차 없다. 오직 문재인 정부 비판을 통해 반사이득을 보려는 정치공학적 행태만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와 군을 질책하는 한국당을 향해 외려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일 터다.
낡고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등 돌린 민심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한국당은 직시해야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문재인 정부 때리기'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음에도 지지율이 여태 '그 모양 그 꼴'인 이유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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