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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정희 기념우표 제작한 대학생들, 그가 누군지 알고는 있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가 제작돼 3일 만에 모두 완판됐다.박정희 기념 우표를 직접 제작해 판매한 '한국대학생포럼'은 지난 20일부터 판매를 시작한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가 3000여명의 신청자가 쇄도하는 폭발적 관심 속에 발매 3일 만에 모두 팔렸다고 밝혔다. 한국대학생포럼에 따르면, 박정희 기념우표는 사전 후원자들에게 2만 세트, 온라인 판매로 1만 세트, 총 3만 세트가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박성은 한국대학생포럼 회장은 24일 <뉴데일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신청자들이 많아 12월에 기념우표 추가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며 "이번에 모인 우표 판매 수익금으로만 2차 우표 발행에 나설 계획이며 1만장 이하의 규모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는 시작부터 논란이 많은 사업이었다. 5공화국 이후 대통령 관련 우표는 취임 이외에 별도 기념우표 발행이 중단돼 오던 터였다. 이에 공과 논란이 첨예한 박정희 기념우표의 제작을 놓고 각계의 비판이 속출했다. 더욱이 박정희 우상화 논란과 함께 우정사업본부의 심의과정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면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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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해 4월 경북 구미시청은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의 요구로 기념우표 발행을 신청했고, 그해 5월 우정사업본부 심의회의 만장일치로 기념우표 발행 결정이 난 바 있다. 당시 우본의 결정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이미 경북 구미시를 중심으로 박정희 관련 예산이 대폭 증액되며 한바탕 논란이 게세게 일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정희 기념우표까지 발행하기로 결정하자 범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비판이 잇따랐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 사업은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제동이 걸리게 된다. 기념우표 제작이 박정희 미화와 우상화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은 데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 심의회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재심의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결국 우본은 지난 7월 12일 재심의를 통해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전면 백지화시켰다.

그러나 그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던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은 다시 한번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국가안보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준수하는 대학생들의 모임'인 한국대학생포럼이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에 나서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생포럼은 "대통령 기념사업이 정파적 차이를 떠나 이뤄지기를 바란다"며 지난 9월 4일부터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우표 제작 자금을 모금했고 직접 제작에 나섰다. 우체국의 '나만의 우표 만들기' 서비스를 활용한 것이었다.


ⓒ 오마이뉴스

"우리는 대학생들에게 국가안보의식을 고취시키고, 왜곡된 역사인식하에서 대한민국을 역행시키려는 움직임을 준엄히 비판하는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또한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중요시 여기며,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필요한 기틀을 다지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한자리에 모인 대학생들은 대한민국 사회에 대학생으로서의 올바른 소리를 전달하는데 중심이 되겠습니다."

한국대학생포럼 홈페이지에 실려있는 단체의 소개 내용이다. 범상치가 않다. 한 눈에 봐도 이 단체가 우파 청년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한국대학생포럼의 주요 활동 내용을 살펴보면 이같은 심증이 틀리지 않다는 것이 이내 드러난다.

2009년 2월 발족한 한국대학생포럼은 전교조 명단 공개, 복지포퓰리즘 반대를 위한 표어 공모전, 박근혜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 통합진보당 해체 요구 기지회견, 제주 해군기지 건립 지지 시위, 임금피크제도입 진정서 제출, 노동시장 개혁 촉구 기자회견, 한미동맹 지지 기자회견, 민노총 전공노 전교조 총파업 규탄 기자회견, 철도노조 불법파업 철회 촉구 기자회견, 문재인 전 참여정부 비서실장 북한인권결의안 규탄 시위 등 이명박·박근혜 보수우파 정권의 주요 정책을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활동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특히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한국대학생포럼이 목소리를 높인 현안들은 대부분 박근혜 정권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던 의제들이었다. 정치사회적 논쟁이 벌어지는 민감한 사안마다 한국대학생포럼이 정부여당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에 앞장서 온 셈이다. 박정희 기념 우표 제작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정파의 이익과 무관하게 기념사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그들 자신이 특정 세력의 정파적 이익을 대변해 왔다는 점에서 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박정희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강압적인 철권통치로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인권을 말살한 독재자라는 평가도 있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온 논쟁적인 인물답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박정희의 이미지는 이렇게 엇갈린다. 그러나 이처럼 상반된 양극단의 평가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박정희 신화의 발원지인 경제성장의 이면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은 박정희가 곧 법이고, 국가인 시대였다. 무자비한 국가폭력이 횡행해도 어디에 하소연조차 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고,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시절이었다.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간첩으로 둔갑되는가 하면, 정치공작에 연루돼 목숨을 잃는 일이 서슴치 않게 벌어지던 잔인무도한 시절이었다.

제 2차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끔찍한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용공조작사건으로 기억된다. 유신독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에서 사형선고를 받은지 18시간 만에 전격 사형이 집행된 이 사건은 지난 1995년 4월 25일 MBC의 <근대 사법제도 100주년 기념 설문조사> 당시 판사들로부터 '우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이라 꼽혔던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사법살인'이었다.

박정희를 치켜세우는 세력들이 이구동성으로 내세우는 산업화의 한켠에서는 이처럼 야만적 국가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시민들이 있었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어쩌면 아득히 먼 나라의 이야기쯤으로 여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로 인해 누군가의 부모들과 누군가의 자식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해야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박정희 시대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것처럼 그를 추모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을 독재자에 대한 미화와 우상화 작업이라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본의 발행 취소 결정에 반발해 직접 제작에 나서는 젊은이들도 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와 그들을 기억하는 방법은 어디까지나 개별 주체들의 가치 판단의 영역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가지 사실은 환기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대의 잣대대로라면 보수우파의 매파 역학을 톡톡히 하고 있는 한국대학생포럼을 민주주의 체제와 질서를 위협하는 반국가단체 및 이적단체로 규정해 대대적인 통제와 압력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대의 논리와 방식이라면 어쩌면 그보다 더한 물리적 폭력과 탄압이 자행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와 같은 야만적인 국가폭력은 결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 사상, 철학, 양심, 종교의 자유와 가치를 존중하고 보장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뜨거웠던 민주화의 과정을 체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잊지는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개인의 인권을 짓밟는 야만적인 국가폭력에 맞서 당대인들이 치열하게 싸워왔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유가 사실은 누군가의 피와 땀의 결과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서슬 퍼런 독재정권의 압제 속에서 민주주의 본령를 지켜내기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자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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