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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언덕의 天-地-人

작은 아버지의 복숭아는 정말 최고였어요!

ⓒ 구글이미지 검색

 

 

사람에게는 누구나 잊혀지지 않는 숫자가 하나 쯤은 있다.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생년월일...같은 것들 말이다. 전라북도 김제군 용지면 장신리 103번지. 내게는 이 주소가 그렇다.

맞벌이에 정신이 없었던 부모님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를 할아버지·할머니 댁에 맡기셨다. 할아버지는 내게 아버지였고, 할머니는 어머니였다. 내 유년 시절의 추억 대부분이 바로 저곳에서 만들어졌다.

봄이면 할머니와 이들 저들로 봄나물을 캐러 다녔고, 여름이면 고사리손으로 산너머 고추밭에서 풀을 뽑았다. 가을에는 앞마당에서 밤과 대추, 감을 땄고, 겨울이면 논두렁에 나가 날이 저물도록 얼음치기를 했다. 새하옇게 눈이 내린 추운 겨울이 오면 할아버지는 손수 재배한 고구마로 구수한 고구마빵을 구워주셨다.

작은 아버지 댁은 할아버지·할머니 집에서 100미터 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서울 살이를 시작한 아버지를 대신해 작은 아버지는 두분의 곁을 지키셨고, 그렇게 긴 세월을 묵묵히 거슬러 가셨다.

작은 아버지는 과수원을 하셨다. 주로 복숭아와 포도, 배를 하셨는데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인근에서 맛으로 작은 아버지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서울로 간 나는 방학이면 시골에 내려갔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까지 산과 들을 지나며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풋풋했다. 싱그러운 바람, 초록빛을 더해가는 들녘, 졸졸 흐르는 시냇물, 눈덮인 겨울의 스산한 갈대소리까지도.

할아버지·할머니 집을 가려면 작은 아버지의 과수원을 지나가야 했다. 과수원에서 살다시피 하셨던 작은 아버지는 터벅터벅 시골길을 걸어오는 어린 조카가 신기했는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커다란 백도를 입에 넣어주시곤 했다. 입안 가득 퍼지던 그 향긋함을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작은 아버지는 그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셨을까.

그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은 아버지가 그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과 함께. 평생 농사밖에 모르시던 작은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빼닮았던 분이셨다. 작은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나는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캐나다로 이민 온 후 자주 연락드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가실 줄 알았으면 전화라도 더 넣어드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세월의 무게에 바래지게 마련이지만 어떤 기억은 오히려 더 선명해져 간다. 내게는 작은 아버지의 복숭아가 그렇다. 더없는 달콤함으로 기억될 작은 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작은 아버지의 복숭아는 정말 최고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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