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유시민의 분노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지난 2013년 2월 20일 한 사람의 정치인이 현실정치를 은퇴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여기서 지칭하는 '우리'라 함은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거침없는 언변, 비논리적 객기로 무장한 여타 저질 정치인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철학과 혜안을 가진 그를 그리워 하는 일단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물론 이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가 머물렀던 정당마다 분란과 분열이 일어난 것을 비꼬며 '정당 스포일러'라는 별칭을 부여하는가 하면, 달변가인 그의 거침없는 언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촉새'라는 조롱섞인 닉네임을 달아주기도 했다. 그는 이처럼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정치인이었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납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치인 유시민을 성원해주셨던 시민여러분 고맙습니다. 열에 하나도 보답해 드리지 못한 채 떠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2013. 2. 20 유시민' 


그의 정계 은퇴는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 모으며 한때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까지 여겨졌던 정치인의 퇴장치고는 매우 조용하고 소박했다. 파격적이고 화려했던 그의 등장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의 이 소박한 퇴장은 유시민이기에 전혀 이상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다. 그는 형식과 절차, 격식 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명한 학자이자 칼럼리스트에서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이후 보건복지부장관과 야당의 대표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의 애증의 정치인생을 마감하며 그는 원래 있었던 시민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정계를 은퇴한 후 책 집필에 전념하던 그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NLL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여름 무렵이었다. 당시 그는 애초 이 논란에 불을 지폈던 새누리당의 정문헌 의원의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정문헌 의원의 착각 또는 거짓말'이라는 연재 형식의 칼럼으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개재했다. 이 칼럼의 말미에 그는 의미심장한 표현을 남겼다. 그는 "정치참여는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권리이며 정치현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말하는 것은 시민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정치 참여 방법이다.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정치를 그만두었을 뿐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헌법적 권리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시민으로서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리고 다짐대로 그는 어제(21일)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추모하는 산문집 '그가 그립다' 북콘서트에 참석해서 박근혜 정권을 향해, 시민들을 향해 묵직한 돌직구를 날렸다. 


그는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집권 7년동안 대놓고 부패를 저질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와 함께 세월호 사건 역시 부정부패가 그 원인으로 "돈이 오고갔든 안 갔든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반칙과 편법•불법을 저지른 부패"라고 단언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고위공직자들의 면면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손쉽게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편법증여 및 상속', '군 면제', '논문 표절' 등의 편법과 불법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사사로이 사익을 주도하는 자들이 판을 치는 사회가 정의 및 공정과 멀어지는 것은 필연이다. 대형 국책사업에는 언제나 특혜와 담합비리가 속출했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를 엄격하게 지휘•감독해야 하는 공직자들부터가 반칙과 편법•불법에 이미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참사 역시 이같은 부정•부패가 부른 인재이며 관재였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척결하겠다는 '관피아'를 조장하고 활개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이 정부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마치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이 이를 구습, 관행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정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최고통수권자로서 대단히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유시민이 분노하는 대상은 따로 있다. 그의 날카로운 돌직구가 향하는 곳은 박근혜 정권이 아니라 시민들이다. 그는 "제가 지금도 화가 나는 건 왜 우리 국민들은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은 내버려 두고 저렇게 물질에 대한 욕망을 대놓고 자극하고, 타인의 마음에 공감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좋아할까 하는 것"이라며 "예전에 정치할 때는 국민에게 화가 난다고 하면 조•중•동에서 '유아무개, 드디어 국민 탓'이라고 하겠지만 이젠 말할 수 있다. 국민들한테도 저는 화가 난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유시민다운, 유시민만이 할 수 있는 화법이자 상황인식이다. 사실 문재인에게 없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유시민의 투사적 기질과 화법의 기교다. 문재인에게 조금 더 투사의 기질이 있었더라면, 이성의 힘을 조금 덜어낼 수 있는 화법의 기교가 있었더라면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본 글의 주제와는 조금 어긋나겠지만) 문재인은,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치를 계속 할 생각이라면 조금 더 전투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난세에는 영웅이 필요한 법이다. 확실히 그는 지금과 같은 난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유시민이 분노하는 까닭은 명징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분노가 온전히 그만의 것이 아님을 또한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거론하면서 빠지지 않는 지역•이념•세대•계층 갈등과 함께 유시민이 거론한 나쁜 정치인을 걸러내지 못하는 저급한 유권자 의식이야말로 우리사회의 성장과 도약을 가로막는 병폐 중 으뜸이기 때문이다. 정몽준 막내 아들의 일침을 그저 미성숙하고 철없는 아이의 실언으로 흘려 듣는다면 고도의 정치적 기만과 위선이 판치는 세상을 버텨낼 재간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며칠 전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의 만평은 우리사회의 기득권과 피기득권 사이의 질곡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묘사해서 충격을 주었다. 유시민의 분노 역시 도무지 바뀌지 않는 무분별한 유권자 의식으로부터 기인하고 있다. 어쩌면 유시민의 이 이유있는 도발(?)은 또 다른 논란을 유발할 지도 모르겠다. 그는 관성을 거스르는 타입의 인간이다. 옳지 않다고 믿는 현상들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절대로 지나치지 않는다. 바로 이같은 이유로 그는 혼란과 갈등, 분열을 야기시키는 정치인이라는 오명을 들어 왔다. 언론이든, 정당이든, 정치인이든,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오래된 관성에 저항해 온 인물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발칙하게도 시민들의 낡은 정치 의식을 겨냥하고 있다. 


유시민의 문제제기가 옳은 것인가, 아닌가는 이를 받아들이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그의 지적처럼 현재 우리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원칙을 무시한 불법과 부정의 광란의 질주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깨어있는 유권자의 올바른 정치행위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가 유권자들 사이에 널리 퍼지지 않는다면 이 질곡의 시간은 꽤 오래 지속될 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아주 꽤 오래도록.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