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본격적인 총선체제에 돌입했다. 각 정당들은
선대위 체제를 조직하고 선거를 위해 모든 당력을 쏟아붓고 있는 중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공천 파동을 극적으로
봉합하고 총선 필승을 위해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친박계와 비박계는 극심한 내홍과 갈등이 언제
있었냐는듯 한 목소리로 총선 승리를 외치며 손을 맞잡았다.
전투를
앞두고 일사분란하게 전열을 정비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모습은 이 정당이 원내
1당을 줄곧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새누리당이 극심한 당내 패권과
계파 싸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같은 본능에 가까운 '피아구별법'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적과 아군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공동으로 전선을 구축해 전투에
임한다. 새누리당이 연전연승하는 까닭이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반면 야권은 그와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여 왔다. 그들은 대규모
전투를 앞두고서도 늘 분열과 갈등에 휩싸이며 힘을 규합하지 못했다. 하나로 힘을 합치기는 커녕 아군에게
칼을 겨누는 황당한 장면도 심심치않게 연출되고는 했다. 거의 모든 선거 환경이 야권에게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모습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방법이 없다. 사정이 이쯤되니 이제는 야권에게 선거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한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이번 총선에서도
야권은 야권연대 문제를 놓고 자중지란에 휩싸여 있다. 하나가 된 여당과 셋으로 나뉜 야당의 싸움이 누구에게 유리한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힘을 합쳐도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마당에 분열한다면 야권의 필패는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다.
ⓒ 오마이뉴스
이런 상황에서 세간의 모든 관심은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에게로 향하고 있다. 시종일관 야권연대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시민사회와 재야 원로 등 각계각층에서 터져나오는 야권연대 요구에도 그는 미동조차 않고 있다. 게다가 중앙당 차원의 연대 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후보 개별간의 연대마저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야권연대없이 총선을 치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대표는 야권연대 거부의 명분으로 기존의 양비론과 함께 유권자의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거대 양당이 독점하고 있는 기성 정치체제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견제해야 할 제3당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기계적 중립과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부추기는 이 전략은 그가 정치에 입문한 이후 계속되고 있는 일관된 흐름이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의 이 전략은 식상함은 둘째치고라도 그 자신이 이미 기성 정치화되었다는 측면에서 전혀 유효하지 못하다. 그는 기성 정치를 비판하면 할수록 그 비판의 화살이 부메랑이 되어 국민의당과
자신에게 되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대표의 양비론과 정치 혐오 전술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국민의당이 거대 양당보다 우월한 '도덕적 권위'를
지니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국민의당은 창당과정에서의 갖은 논란과 '도끼'까지 등장했던 공천 과정에서의 극심한 내분, 노선과 정체성 논란 등 크고 작은 파행의 과정을
국민에게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안철수 대표가 그토록 강조했던 기성정당과의 차별화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안철수 대표가 양비론을 제기할 때마다
거센 비판에 직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멘스인 자기합리화야말로 그동안
기성 정치가 신물나게 보여주었던 구태 중의 구태다.
ⓒ MBC뉴스 화면 갈무리
야권연대를
거부하고 있는 안철수 대표에게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야권연대는 시대적 흐름이자 거부할 수 없는 국민의 요구다.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야권이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안이자 무기인 셈이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는 야권연대보다 거대
양당체제를 깨뜨려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더욱 중시하고 있다. 문제는 자신의 신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인식 자체가 아예 없다는 점에 있다. 이 얼마나 오만한 발상이며 치기어린 만용이란 말인가.
백번 양보해서
안철수 대표에게 거대 양당체제를 허물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한들 그것이 야권의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의 주장대로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치사회적 현상들이 양당체제의
폐해에서 기인한다고 가정해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치세력은 정치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진보적 색채를 지난 정당이지 국민의당 같은 보수 우파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공급과잉에 지나지 않는다.
안철수
대표는 이번 총선의 목표를 원내교섭단체 구성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국민의당 창당 당시 제시했던 최소 100석과 비교하면 목표치가 두달여만에
1/5로 쪼그라든 셈이다. 이와 함께 거대 양당체제를 허물겠다는 그의 원대한 포부도 상당히 궁색해졌다.
지금 상태로 총선이 치루어진다면 거대 양당체제가 문제가 아니라 일당 독주체제의 출현을 막을 방법이 없어진다.
그럼에도 안철수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내세워 야권을 공멸시킬 수도 있는 극단적 선택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자신의 신념에 매몰된 나머지 야권연대를 갈망하는 국민의 염원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적은 과연 누구인가. 그는 지금 무엇을 위해,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인가. 안철수 대표에게 진심으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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