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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석고대죄에서 삭발까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라면

마치 총파업의 출정식을 보는 것 같았다. 나이 지긋한 사내가 투쟁과 결의의 상징인 새빨간 옷을 입은 채 삭발식을 거행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이 사내가 이날 보여준 행동은 총파업을 선언하는 노조위원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결기가 가득했고 몸 구석구석에서는 강렬한 비장함이 묻어 나왔다.

비단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사내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도심 속으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자신이 왜 삭발식을 거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대구 시민', '지지와 사랑', '새누리당', '자만', '무계파 선언' 등의 단어들이 뒤섞인 문장들을 장황하게 늘어 놓더니 이내 삭발식을 거행했다.

나는 이 사내가 왜 삭발을 해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과 그의 삭발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그가 왜 대구시민에게 사죄를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의 삭발로 인해 중앙당의 오만과 독선이 가려지기라도 한다는 것인지, 삭발을 했으니 대구 시민의 마음이 다 풀려 버린 것인지도 역시 모르겠다. 국회의원 출마와 삭발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기묘하기 짝이 없다.



ⓒ 경북일보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대구 지역 새누리당 후보들은 지금 지역 민심을 돌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선거운동이 끝날 때까지 매일 아침 100배 석고대죄를 하겠다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시민들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사죄를 하는 후보들도 있다. 유세 도중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후보들도 있고, 대통령을 끌어들이며 지지를 호소하는 후보들도 있다. 당선만 될 수 있다면, 유권자의 표만 얻어낼 수 있다면 저들은 지금 지옥불이라도 들어갈 기세다.

선거를 앞두고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중의 하나다. 특히 새누리당은 이 방면으로는 독보적이다. 위에 열거한 방법들은 모두 과거 저들의 선배들이 했었던 것들을 재탕 삼탕한 것들이다. 그들은 선거 때마다 '잘못했습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에는 절대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등을 반복하며 읍소에 읍소를 거듭해 왔다.

유권자의 동정심을 자극하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는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것이 저들의 일관된 선거 전략의 하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 선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후보자의 철학과 가치관, 정책과 비전이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데에 있었다.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선거 당시 국민에게 바짝 엎드렸던 자들이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감추었던 발톱을 드러냈다.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던 자들이 어느 순간 국민 위에 군림해 있었다. 국회로 진입한 그들의 위세와 권세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 선거가 돌아오기 전까지 국민은 저들의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게 되었다.

선거 전 국민은 하늘이었다. 그들은 국민을 위해 간이라도 내어줄 듯 갖은 아양과 애교, 교태를 부렸다. 그러나 선거 이후 국민 은 완전히 찬밥 신세로 전락한다. 그들의 봉이며, 호구도 이런 호구들이 또 없다. 무관심과 무시는 기본이고, 때에 따라서는 막말과 망언도 들어야 한다. 선거 전과 후에 벌어지는 기막힌 반전이자 '페이스오프'.



ⓒ SBS뉴스 화면 갈무리


이번 선거라고 다를까? 그들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 무릎을 끓고 절을 하고 심지어 머리까지 깎고 있다. 짦은 선거 기간의 굴욕과 수모만 감수하면 온갖 특권과 특혜를 누릴 수 있기에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훗날의 영예와 보상을 생각하면 그깟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삭발하는 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선거 때마다 되풀이 되는 웃지못할 촌극이 아닐 수 없다.

진작에 사라져야 했을 20세기의 소음과 공해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재연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볼쌍스런 장면을 지켜봐야만 하는 것일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유권자가 각성하지 않는 한 이 장면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권자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과거의 낡은 것들과 분명하고 단호하게 결별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선거 전과 후의 악순환의 사슬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낡은 것들이 득세하는 시대를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후보들에 대한 비난보다 유권자의 각성이 먼저다.

대구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들의 같잖은 장면을 보고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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