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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다섯가지 죄

정권심판론에 대한 옳고 그름의 논쟁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야권에게 가장 효과적인 선거전략이라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총선은 기본적으로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의 장이자 심판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총선은 복잡하고 난해한 고차방정식이 아니다. 쉽게 말해 대통령과 집권당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느냐 마느냐를 가리는 과정인 것이다. 만약 국정을 잘못 운용했다면 대안 세력에게 자연스럽게 정국운영권이 넘어가도록 하는 민주적 과정이 바로 선거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총선은 지난 4년 동안의 새누리당에 대한 평가이면서 동시에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새누리당이 주장하고 있는 야권심판론은 선거의 기본적인 의미를 왜곡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반이 넘는 의석으로 국정을 주도해 왔던 집권당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억지에 불과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난 4년 동안 국정을 운영해 왔던 주체가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20대 총선은 박근혜 정권 3년과 이명박 정권 5년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는 엄중한 의미가 있다. 이번 총선으로 민주주의의 퇴행과 인권 탄압, 서민경제와 민생의 파탄, 시대착오적인 국정교과서와 테러방지법, 전대미문의 세월호 참사, 천문학적 혈세를 낭비한 사자방 비리, 헌정 질서를 유린한 국정원 사건 등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 책임정치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발전되어 간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사라져 버렸다. 국민의당이라는 거대한 암초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중심이 되어 창당된 정당이다. 천정배 상임공동대표와 당을 이끌고 있는 지도부가 존재하고 있지만 안 대표가 없다면 이 정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안 대표가 알파요 오메가이기 때문이다. 이 정당에서는 안 대표의 말과 의중이 법이요 곧 진리다.


야권단일화의 당위를 내세우던 천 대표와 김한길 의원, 그리고 당내의 목소리가 안 대표의 고집에 맥없이 고꾸라졌다. 한때 개별 후보 중심으로 추진되던 야권후보 단일화의 흐름 역시 불이익을 주겠다는 중앙당의 으름장이 나온 뒤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는 국민의당이 당내 민주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안 대표의 '사당'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 오마이뉴스



서론이 길어졌다. 나는 오늘 20대 총선을 앞두고 안 대표가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을 자행하고 있는지 돌아보려고 한다.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 중도개혁가로 포장된 정치공학도에 의해 좌초될 위기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8년의 퇴행과 역주행을 심판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허무하고 또 허무하다. 조금 더 솔직하게, 그리고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멱살이라도 잡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왜 그랬냐고, 왜 그렇게 해야만 했냐고. 다수 국민이 간절히 기다려온 정권교체의 희망을  짓밟고 있는 안 대표. 그의 죄는 모두 다섯가지다.

첫째, 총선을 앞둔 중차대한 시기에 야권분열을 일으킨 죄다. 안 대표가 야권분열을 주동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자신이 창당한 정당을 탈당한 뒤 신당을 만들며 야권을 분열시켰다. 뿐만 아니라 야권후보 단일화를 결사적으로 반대함으로써 총선을 '일여다야'의 구도로 만들어 버렸다. 가뜩이나 불리한 현 선거시스템을 감안한다면 야권 전체를 향해 고추가루를 뿌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로 인해 새누리당은 손도 안대고 코를 풀 수 있게 됐고, 정권교체를 벼르던 야권의 계획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새누리당이 과반을 넘어 과연 몇석까지 차지할 수 있느냐로 모아진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이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가져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야권을 공중 분열시키고 정권교체의 희망마저 앗아간 것, 이것이 그의 첫번째 죄다.

둘째, 심판받아야 할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을 구명시켜 준 죄다. 주지한 것처럼 이번 총선은 지난 4년 동안의 국정운영에 대한 냉정한 심판을 내리는 선거였다. 그러나 야권의 분열로 그들에 대한 심판은 불가능해졌다. 오히려 총선 이후 심판을 받아야 할 그들이 야권과 국민을 심판하는 끔찍한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누리당은 다수당이 되면 당장 국회선진화법부터 손보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는 상태다. 안 대표의 창당과 야권 연대 거부는 새누리당에게는 호재 중의 호재다.

그것이 마냥 고마웠던 것일까. 새누리당이 안 대표를 응원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 몇차례나 연출됐다.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여당으로부터 성원을 받고 있는 야당 대표. 이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 모습만으로도 안 대표가 얼마나 야권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는지는 여실히 입증이 된다. 야권에게는 절망을 안겨 주고 있으면서,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게는 오히려 희망이 되어 주고 있는 죄, 이것이 그의 두번째 죄다.



새누리당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 새누리당 페이스북



셋째, DJ 정신을 왜곡하고 호남을 고립시키고 있는 죄다. DJ 정신은 화합과 통합을 상징한다. DJ는 마지막 순간까지 야권의 단합과 단결을 당부했고, 그 힘으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야권분열을 주도하며 연대마저 단호히 거부한 안 전 대표가 DJ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DJ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 끔찍한 이율배반이다.

현재 국민의당은 호남 이외의 지역에서는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호남 바깥으로 외연 확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역정당이라는 태생적 한계에 총선 패배의 책임론까지 더해지면 호남은 결국 정치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화합과 통합을 상징하는 DJ 정신을 기만하면서 호남을 정치의 변방으로 내몰고 있는 죄, 이것이 그의 세번째 죄다.

넷째, 민주화 세력과 진보세력을 모독한 죄다. 안 전 대표는 민주화 세력과 진보세력을 묶어 '낡은 진보'로 매도하고 있다. 그는 가장 최근에도 지역구 경쟁자인 더민주의 황창화 후보에게 '운동권이 시대정신에 맞나'라며 민주화 운동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내비친 바 있다. 비록 과정의 오류가 있을지언정 독재권력에 맞서 이 땅의 민주화와 진보 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의 열정마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안 대표가 누리는 자유의 대부분은 그들의 목숨을 건 헌신과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586세대이면서 치열했던 민주화의 현장에서 비켜나 있었던 안 대표가 민주화 세력과 진보세력을 매도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가 배워야 할 것은 오히려 민주화와 진보적 가치에 대한 저들의 헌신과 열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 땅의 민주화와 진보운동에 청춘을 바쳤던 사람들을 '낡은 세력'으로 규정했다. 민주화 운동, 진보 운동의 수혜자로서 그들을 모독한 죄, 이것이 그의 네번째 죄다.

다섯째, '새정치'를 참칭하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죄다. 안 대표의 오늘을 만들어낸 '안철수 현상'의 요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새정치'. 기성정치에 대한 극한 혐오와 불신이 안 대표가 내세운 '새정치'에 대한 기대감으로 옮겨 붙은 것이 지난 대선을 강타했던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었다. 그러나 안 대표의 '새정치'는 한낯 신기루에 불과했다. '새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는 기계적인 양비론과 뜬구름 잡는 말의 향연으로 채워질 뿐이었다. 그 결과 그에게는 '새정치'의 이미지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정치'를 좇아 그에게 합류한 인물들 역시 새로움, 개혁, 혁신과는 거리가 먼 인사들 일색이다.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는 정치인,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분열을 일삼는 정치인 등 '새정치'의 대의와 명분을 찾아볼 수 없는 인물들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런 것이 '새정치'라면 우리는 새 것의 정의를 완전히 다시 써야만 한다. 그럼에도 안 대표는 자신이 마치 새정치, 개혁, 혁신의 전도사인양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실체없는 것으로 혹세무민하고 있는 죄, 이것이 그의 다섯번째 죄다.



ⓒ 오마이뉴스



총선을 앞두고 야권은 지금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권심판은 고사하고 최악의 경우 새누리당의 힘만으로 법안 통과가 가능한 의석까지 내어줄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야권의 총선 전망이 이처럼 암울해진 이유는 이번 총선이 '일여다야' 구도로 치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구도를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국민의당이다. 어떤 이유를 들이댄다 해도 국민의당이 야권의 분열을 초래하고 야권연대를 무산시킨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국민의당 안 대표가 있다. 그는 야권 연대를 갈망하고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다수 국민에게 해서는 안될 '다섯가지 죄'를 범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더 무거운 죄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짓을 벌이고 있는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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