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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법농단 진상규명 가로막는 법원의 수상한 영장 기각

ⓒ 오마이뉴스


박근혜 정부 시절 자행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에 사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솟구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13일 사법부 창립 70주년 기념식에 나란히 섰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진상 규명 의지를 강조했고, 김 대법원장은 국민에게 사과하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창립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하며 만약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잡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법행정의 전권을 쥐고 있는 김 대법원장 앞에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의 진상규명을 역설한 것이다. 

지난 6월 15일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사과한 이후 줄곧 침묵 모드를 유지해왔던 김 대법원장도 모처럼 입을 열었다. 그는 "최근 사법부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러 현안들은 헌법이 사법부에 부여한 사명과 권위를 스스로 훼손했다는 점에서 매우 참담한 사건"이라며 "사법부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하고 다시 한 번 깊은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사법부가 지난 시절의 과오와 완전히 절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안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생각"이라며 "대법원장으로서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으나, 현 시점에서도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협조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부의 최고 수반과 사법부의 수장이 같은 날 동시에 양승태 대법원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의 진상규명 의지를 천명한 것은 '사법부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는 심각한 위기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은 일반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실제 사법부 내에서 버젓이 일어났는가 하면, 검찰 수사를 피해 증거를 인멸한 정황도 포착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진상조사와 검찰 조사 등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원은 박근혜 청와대와 '정치 결사체'나 다름 없는 밀착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드러난다. 애초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출발한 이 사건은 이후 양파껍질처럼 새로운 의혹과 사실들이 추가되며 양승태 대법원의 전방위적인 사법농단 사건으로 비화되기에 이른다. 조사 결과 양승태 대법원은 판사 블랙리스트는 물론이고 다수의 재판 개입을 통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이를 청와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지난 7월 31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196개 문건에는 상고법원 추진과 관련해 청와대는 물론이고 국회와 언론, 변호사 단체 등을 상대로 대대적으로 로비를 해온 정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시국현안과 관련해 재판의 공정성 논란이 있을 때마다 '사법부 독립을 침해한다'는 방어 논리를 펴왔던 그들이 뒤에서는 '시장잡배'들이나 할만한 짓을 파렴치하게 자행해왔던 셈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은커녕 법관으로서의 정의와 양심조차 찾아보기 힘든 낯뜨거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사법부의 추악한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사건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상규명이 가로막히고 있는 주된 요인으로는 법원행정처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손꼽힌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 6월 15일 대국민담화문에서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힌 것과 달리 법원행정처는 사법농단 관련 자료의 제출을 사실상 거부해 온 터였다. 검찰 수사 등으로 새로운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관련 자료를 제때 제공하지 않아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영장 기각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 관련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에 의해 줄줄이 가로막히고 있는 것이다. 일반사건의 경우 10%대에 불과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이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서는 90%에 이르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법원의 수사 방해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법원은 12일에도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지난 2016년 현직 부장판사 뇌물 수수 사건의 확대를 막기 위해 일선 법원에 '영장 지침'을 내렸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대부분 기각했다.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판사 사무실 및 당시 영장전담판사들이 사용했던 컴퓨터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일부 이메일을 제외하고 모두 기각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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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지난 2016년 김수천 당시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재판 청탁과 함께 억대의 뇌물을 수수한 의혹이 불거지자, 법원행정처가 이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판사 7명의 부모와 자녀들의 가족 정보 등을 신 전 형사수석 부장판사를 통해 영장전담판사에게 전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영장심사를 담당했던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판단은 달랐다. 이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법관 비위 대처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신 전 형사수석 부장판사로 하여금 법관 비위 정보를 수집하게 한 행위는 공무상비밀누설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판사들 비위에 대한 수사 정보를 구두 또는 사본으로 신 전 수석부장 부장판사에게 보고했다는 점에 대해 영장판사들이 상세히 진술해 이 부분 사실 관계는 충분히 확인되었으므로 압수수색 필요성이 부족하다"며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법관 뇌물 수수 의혹의 확산을 막기 위해 법원행정처가 수사기밀을 유출시키고, 영장실질심사를 사실상 지휘한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이다. 이는 사법부 창립 70주년을 맞아 문 대통령이 양승태 대법원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의 진상규명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하고, 김 대법원장이 수사에 적극 협조할 뜻을 재차 내비친 것과는 극명히 대비된다. 이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적극적인 수사 협조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사법부의 인식과 태도, 김 대법원장의 그동안의 행보 등을 종합해 보면 사건의 진상규명은 쉽지 않아 보인다. 팔은 결국 '안으로 굽는다'라는 속설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사법부의 행태를 상기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법권력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오만과 일탈 그 반대편에서는 법원의 '치외법권화'를 막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조사와 함께 특별재판부의 도입을 적극 추진할 태세다. 대통령 역시 실체규명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무엇보다 치부를 감추기에 급급한 사법부의 몰염치한 행태에 국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커지고 있다. 사법부의 '제식구 감싸기'가 부메랑이 될 공산이 커보이는 이유다.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그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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