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자중지란에 빠져있던 한국당의 혁신을 위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그는 비대위원장 수락연설에서 "잘못된 계파 논쟁과 진영 논리와 싸우다 죽어서 거름이 되면 큰 영광"이라며 "미래를 위한 가치 논쟁과 정책 논쟁이 정치의 중심을 이루도록 하는 꿈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국당 내의 뿌리깊은 계파 대립을 청산시키고 가치 중심의 정책정당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였다.
'김병준 비대위' 체제가 출범한지 벌써 두 달. 한국당은 김 위원장이 바람대로 나아가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초 '김병준 비대위'의 성패는 인적 쇄신과 정책·논선 등의 변경에 달려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당의 몰락 요인으로 '친박-비박'간의 해묵은 계파 갈등이 손꼽혀온 데다가, 시대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이념 역시 국민의 거센 지탄을 받고 있던 탓이었다.
따라서 '김병준 비대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당 쇄신 작업을 통한 인적 청산과 한국당에 덧씌워져 있는 수구보수의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한 이념과 노선의 재편이 반드시 이뤄져야만 했다. 진저리나는 당내 계파 갈등과 냉전·반공주의에 입각한 시대착오적 행태로는 돌아선 민심을 회복시키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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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병준 비대위'가 출범한지 두 달이 지나도록 한국당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당 혁신의 바로미터가 되어야 할 인적 청산이 전무한 상태다. 자진 탈당한 서청원 의원, 지방선거 이후 물러난 홍준표 전 대표 등을 제외하면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대선·지방선거 참패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한국당의 혁신을 총책임지고 있는 김 위원장 역시 인적 청산에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달 14일 "2020년 총선 때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도록 바뀌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인적 청산) 방법"이라고 말한데 이어,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한 11일에는 "사람을 자르는 게 절대 개혁이 아니다"라며 "인적 쇄신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은 국민이, 유권자가 해주셔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비대위 차원의 인위적인 인적 쇄신보다 총선 등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인적 쇄신이 당을 개혁시키기 위한 요체라는 것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 위원장의 의중은 결국 당을 쇄락시킨 결정적인 요인으로 지목돼 온 계파 대립과 갈등을 묵인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지 않았는데 당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건 눈가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일각에서 당내 최대 계파인 친박계의 반발을 의식해 김 위원장이 인적 쇄신을 단행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 위원장이 강조했던 가치 중심의 '정책정당화'도 찾아보기 힘들다. '김병준 비대위' 출범 이전이나 이후나 한국당의 정책과 노선은 거의 변화가 없어 보인다. 구체적인 대안과 비전 제시 없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노선에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보는 기류는 앞선 '홍준표 체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 뼈를 깎는 당 쇄신을 통한 내부적 혁신보다 권력의지를 앞세워 반사이득을 보려는 정치공학적 행태만 돋보인다.
김 위원장의 인식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안보제일주의'와 '반공보수'를 버릴 것을 주문했다. 한국정치의 폐단으로 '국가주도주의'와 '패권주의', '표퓰리즘'을 꼽은 그는, "박정희 시대처럼 국가기획주의에 입각해 기업을 간섭하는 국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같이 갈 수 없다"고 못 박기도 했다.
기존의 한국당과는 차원이 다른 수사로 이목을 끌었던 그의 행보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당내 반발이 잇따르자,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성공 신화를 써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는데 그 기적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 돌연 태도를 바꿨다. 언제는 박정희식 국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더니 당안팎의 비판이 속출하자 그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이승만 띄우기'에 나선 것도,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을 '정치재판'이라 규정한 것도,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지역 민심 다지기에 나선 것도 모두 기존의 한국당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란는 평가다. 계파를 일소하고 가치와 노선의 재정립을 통한 정책정당으로 당을 환골탈태시키겠다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태다.
당안팎의 많은 기대를 받으며 닻을 올렸던 '김병준 비대위'의 씁쓸한 현실은 정당 지지율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갤럽이 지난 4~6일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한국당은 정의당과 같은 12%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내 112석에 달하는 제1야당이 원내 5석에 불과한 정의당과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는 상황은 한국당이 직면해 있는 초라한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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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한 지 두 달, 무너진 한국당을 재건하겠다며 호기롭게 출발한 '김병준 비대위'가 기대와 달리 연착륙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인적 청산은 물론이고 가치와 노선의 재정립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한국당의 모습에 국민의 냉정한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김병준 비대위가 겉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달 20일 과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018 한국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나온 김 위원장의 발언에서 어쩌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인적 청산을 말하지 않으면 혁신도 비대위도 없는 거라 얘기해왔다.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우리는 고장난 자동차다. 차를 저렇게 만든 것은 기사 잘못도 있지만 그렇다고 자동차를 고치지 않고 새로운 기사를 영입한다고 해서 이 차가 갈 수 있나. 한국당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가치는 반공, 안보, 친기업, 기득권 옹호, 수구집단, 부패 등이다. (이제는) 정말 새로운 시대를 향한 무엇을 가지고 나가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당시 김 위원장은 한국당을 '고장난 자동차'에 비유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자동차가 존재한다. 고쳐쓸 수 있는 자동차와 그렇게 할 수 없는 자동차. 한국당은 그 중 어디에 해당하나. 박 전 대통령 탄핵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사로이 농단한 위정자 한 사람에 대한 심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터다. 탄핵 정국 당시 국민들이 '한국당 해체'를 목청껏 부르짖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자동차도 바꾸고 사람도 바꾸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인 것이다.
그러나 '김병준 비대위'는, '한국당'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현실은 그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혁신과 개혁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인적 청산 없이, 새로운 가치와 노선, 비전의 제시 없이 과거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김병준 비대위'를 향한 국민적 불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 김 위원장이 외려 그들과 '동거동락'하려는 것은 아닌지 세간의 의구심이 쌓여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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