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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라진 대통령, 그가 까맣게 잊고 있는 것들

대통령은 지금 어디에 있는걸까? 꽤 오래도록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의문 중의 하나다. 물론 뜬금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다 한들 지금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굳이 TV를 켜지 않아도, 신문을 쳐다보지 않아도 대통령이 현재 미국 방문 중이라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 대통령은 지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 순방에 나서고 있다. 이를 모르는 국민이 어디에 있을까.

대다수의 언론들이 오늘 있을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서 한미동맹 발전, 북핵 문제 등 대북공조, 동북아 평화 번영을 위한 협력,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 등 다양한 상호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녹음기처럼 내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나라의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 자체가 생뚱맞기 그지없는 일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의문은  좀체 가시질 않는다. 대체 이 나라의 대통령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지금 정부 여당이 강행한 교과서 국정화의 여파로 아수라장에 빠져 있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극심한 분열과 갈등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사회가 양분되어 국론이 분열되고 혼란이 거듭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반목, 대립을 중재하고 이를 통해 화합과 단결, 통합을 이끌어야 할 대통령이 그 자리에 없는 것이다. 나는 자리의 부재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문제다.

대통령은 미국 출국에 앞서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화 논란을 '정쟁과 이념대립은 안된다', '국론분열이 아니라 국민통합에 힘쓰자'며 단칼에 정리해 버렸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역사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에 정쟁과 이념대립을 멈추고 국민통합에 힘써야 한다는 논리다. 대통령의 지병인 유체이탈 질환이 또 도진 모양이다. 가치중립의 역사문제에 이념과 진영논리를 끌어 들여 국민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장본인이 천연덕스럽게 국민통합을 말한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유체이탈 증상이 아주 심각하고 위해한 질병이라는 사실을 이 나라의 대통령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한심하고 씁쓸한 풍경이다. 





어쨌든 미국 출장에 앞서 내려진 대통령의 교지로 인해 끝이 안보이던 국정화 논란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정치권, 학계, 교육계, 일반 시민들이 그동안 박 터지게 싸우고 있었던 거다. 아무리 복잡하고 난해한 사회 문제라 할지라도 대통령의 머리를 거쳐 나오면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가 된다. 참으로 신기한 능력이자 생각하면 할수록 편리한 사고방식이다.

박 대통령의 기이한 능력은 비단 이번에만 발휘된 것이 아니다. 국정원 사건, 인사파문, 세월호 참사, 간첩조작사건, 비선실세논란, 성완종 게이트, 메르스 사태 등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트린 사건 사고들도 하나같이 대통령의 손을 거쳐 나오면 감쪽같이 정리되어 버렸다. 이럴 것이라면 사태가 더 확대되기 전에, 국민 갈등과 분열이 극한으로 치닫기 전에 대통령이 손을 썼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지경이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타이밍이다. 아무리 신출귀몰한 능력과 신묘한 재능을 지녔다 한들 적시적소에 발휘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언급했던 사건 사고들에서 대통령은 늘 마지막이 되어서야 불쑥 모습을 내비치곤 했다. 국민들이 간절히 원할 때는 행방이 묘연하다가,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식이었다. 그 사이 국론은 분열되고 사회는 씻을 수 없는 반목과 갈등으로 멍들어 갔다.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 대통령에게 상황을 일순간에 정리하는 신묘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온 국민이 다 아는 바다. 나는 대통령이 이 출중한 능력을 이제는 다른 곳에 집중해서 발휘해 주길 바란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통령의 능력이 필요한 분야가 수두룩하다.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공정성을 높이는 경제민주화, 한국형 복지체제의 구축, 성장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치혁신, 농어촌 활성화와 중소기업 육성, 교육혁신, 맞춤형 보육,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 등 대통령이 공약했던 것들부터 한방에 정리해 주었으면 한다. 대통령이 남발한, 지키지도 못할 공약들로 인해 국민의 심기가 나날이 불쾌해 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숨바꼭질 놀이는 이제 그만 멈추어 주길 당부한다. 장작 필요할 땐 국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불현듯 나타나 염장을 지르는 대통령의 숨바꼭질 놀이는 재미도 없을 뿐더러 식상함 그 자체다. 대통령은 귀국하는 대로 재발한 유체이탈병의 치료에 전념하기 바란다. 그리고 병세가 호전되는 대로 방치된 채 나뒹굴고 있는 대선 공약을 위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남아있는 임기 동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그것 하나면 족하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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