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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정교과서 논란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국정교과서의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정부여당이 지난 12일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을 발표하자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각계각층에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계와 교육계, 시민단체, 그리고 일반시민들까지 정부여당을 맹비난하며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광장과 거리에는 촛불이 다시 켜졌고,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반민주적이며 시대착오적인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었다.


물론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만 분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수 학계와 교육계를 중심으로 국정화에 찬성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가 하면, 가장 최근에는 권영해 전 국방부장관과 정기승 전 대법관,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등 보수 성향의 지식인들과 퇴직 중고교 교장 500여명이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정화 논란으로 인해 국론이 첨예하게 분열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디어오늘은 아주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미디어오늘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에스티아이와 함께 지난 10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반대한다는 응답이 57.7%로 찬성한다는 응답 33.7%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같은 조사 결과는 여론이 국정화 반대로 급속히 돌아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여론이 교과서 국정화 반대로 강하게 돌아서고 있는 것은 정부 여당이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근거인 기존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좌편향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던 황교안 국무총리와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망신을 당했던 정부의 모습 등이 여론 악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론이 급속하게 돌아서자 새누리당은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그들은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교과서 국정화가 대다수 역사학자들의 집필 거부와 대학교 교수들의 연쇄적인 반대 성명, 중고등학교 학생들까지 가세한 시민들의 촛불시위 등으로 거센 역풍에 시달리자, 전가의 보도인 이념 공세에 당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그 결과 '종북', '좌파' 등의 익숙한 프로파간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주체사상', '혁명전사양성소', '인민학습궁전' 등의 문구들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전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문구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국면이 그만큼 위중하다는 방증이다. 위기의식에 시로잡히자 새누리당은 그들의 전매특허인 이념 프레임을 작동시켜 친일과 독재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종북과 친북의 이념 갈등으로 넘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연일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이념 공세는 그들의 오래된 필살기이자 국면 전환을 위한 회심의 카운터 펀치다.



저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뼈아픈 역사의 비극을 환기시킨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은 시대정신을 역행하고 민족정기를 거스르는 바로 이 사건으로부터 잉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일부역자의 색출과 처벌을 위해 탄생했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아무런 성과없이 무력화된 것이 바로 그렇다.

해방 이후 역사와 민족의 당위였던 친일부역자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훗날 쿠데타 세력이 발호하는 빌미가 되었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시민권, 사회정의와 공의가 실종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동하게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해방 이후 친일반민족 행위자를 색출하고 그들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묻는 일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요구였다. 반민특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친일부역자를 단죄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자 제헌국회는 1948 9 22일 역사적인 반민족행위처벌법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반민특위는 친일부역자 박흥식을 검거하며 1949 1 8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친일세력과 그들을 등에 업고 집권한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인 방해공작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해산하고 말았다. 당시 이승만 정권과 친일세력들은 반민특위를 '빨갱이' '좌익'으로 매도하며 여론을 호도했고, 반민특위를 해체시키기 위해 테러를 감행하기까지 했다. 수십년 전 벌어졌던 장면들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장면들의 데쟈뷰다.

반민특위에 정치적 위기를 느낀 친일세력과 이승만 정권이 이념 갈등을 부추기며 살 길을 모색했듯이, 교과서 국정화를 감행하고 있는 자들 역시 같은 방법으로 반민족적인 친일행각과 반민주적인 독재행위에 면죄부를 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핵심은 현행 검인정 교과서의 편향성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역사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 간의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대립과 갈등이 놓여 있다. 해방 이후 친일독재세력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결집했다면, 이제는 그들의 후예들이 역사를 다시 쓰는 것으로 미래를 위한 교두보를 삼으려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정교과서 논란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반민특위의 해체 이후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친일독재세력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고 조작되었는 지가 교과서 국정화 이후를 예단해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물증들이다. 우리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해야 할 당위로 이보다 더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반민특위의 해체가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알린 서막이었다면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대한민국 미래사의 조종(弔鐘)을 울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우리가 국정교과서 논란의 핵심을 직시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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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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