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19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2018년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후 독일과 미국 등지로 연수를 떠난지 1년 4개월여 만이다.
안 전 대표의 복귀가 주목받는 것은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을 중심으로 보수통합이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안 전 대표의 등판이 야권 재편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사로 떠오른다.
일각에서는 안 전 대표의 정계 복귀 의미를 축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새정치 바람을 일으키던 당시와는 확연히 달라진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입지와 위상 등을 고려하면 파급력이 크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정계복귀를 둘러싸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안 전 대표가 총선 구도를 가를 변수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안 전 대표는 과연 얼마만큼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지난 3일 동안의 행적을 통해 그 가능성을 살펴보자.
안 전 대표는 귀국 당일 인천공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진영 정치를 벗어나 실용적 중도정치를 실현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간절하게 대한민국이 변화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러 왔고, 다음 국회에서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많이 (국회에) 진입하게 하는 게 제 목표"라며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한국당과 새보수당 등이 참여하는 '혁신통합추진위원회'(혁통위) 합류 여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며 "야권에도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진영 대결로 1대1 구도로 가는 것은 오히려 정부·여당이 바라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기자회견 내용을 종합해보면, 안 전 대표는 먼저 실용 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중도 정당을 염두해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는 보수통합 논의에 합류하지 않고 독자적 노선을 걷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다만 그가 말하는 중도·실용주의 정당이 신당 창당을 의미하는 지는 아직까지 불분명한 상태다. 창당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선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의 합류가 필수적인데, 그들 대부분이 비례대표라는 점이 걸림돌이다. 비례대표는 탈당을 하면 의원직을 상실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안 전 대표가 바른미래당에 복귀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안 전 대표가 합류해 재창당 수준으로 당을 환골탈태시키는 그림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당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손학규 대표의 의지가 확인된 데다,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이 낮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안 전 대표는 귀국 다음날인 20일 국립서울현충원과 광주 5·18 묘역을 참배했다. 주목할 것은 안 전 대표가 정계 복귀 첫날 '광주'를 방문했다는 점이다. 이는 2016년 총선 당시 국민의당 돌풍의 진원지였던 '호남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날 방문에는 바른미래당 소속 김동철, 박주선, 권은희, 주승용 의원 등 광주전남 의원들이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안 전 대표를 중심으로 바른미래당 호남계 의원과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등이 참여해 호남 기반의 제3지대 정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문제는 안 전 대표에게 돌아선 민심이다. 2016년 총선에서 호남은 안 전 대표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당시 안 전 대표는 박지원·박주선·주승용 의원 등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호남 지역 28개 의석 중 무려 23석을 얻는 깜짝 놀랄 성과를 거뒀다. 호남은 이후 국민의당의 텃밭이자 안 전 대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그러나 안 전 대표를 향한 호남의 지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안 전 대표는 DJ의 철학이 녹아있는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등 정체성과 노선에서 지역 민심과 충돌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고, 급기야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정당인 바른정당과 손을 잡으며 국민의당 분당 사태를 초래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안 전 대표에 대한 지역 민심은 4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7일 발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호남에서 안 전 대표에 대한 지지율은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를 기록한 황교안 한국당 대표보다도 낮은 수치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안 전 대표와 함께 국민의당 창당을 주도했던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 역시 호남지역에서 제2의 '안풍'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20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광주 시민들이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겠나. 저도 이번 주말 광주에 있었는데 '아니올시다'"라며 "호남이 두 번 속지 않을 것"이라 평가한 것. 이같은 상황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 창당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안 전 대표는 21일 김경률 전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과의 회동 직후 보수통합 논의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그것이야말로 정부·여당이 바라는 함정에 들어가는 길"이라며 "야권에서 치열하게 혁신 경쟁을 하는 것이 나중에 파이를 합하면 훨씬 더 커질 수 있는 길"이라고 밝혔다.
당장은 참여할 의사가 없지만, 연대나 연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귀국 기자회견 당시 혁통위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 "관심이 없다"고 단호히 선을 긋던 것과는 결이 다른 발언이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미묘한 입장 변화를 두고, 안 전 대표 특유의 언행이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우선 순위로 두고 독자세력화에 나서되, 여의치 않을 경우 '반문연합'을 고리로 한 총선 야권연대를 도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과 혁통위 등에서 안 전 대표를 향해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관측에 무게를 실어준다. 보수진영의 합류 요구가 거세질수록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주가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독일·미국 등지로의 외유를 끝내고 1년 4개월여 만에 정치 일선에 복귀한지 3일, 안 전 대표가 보여준 행보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민주당·한국당 거대 양당 모두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걷겠다고 천명했다. 정부·여당에 대해선 진영논리를 앞세워 배제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각을 세웠다. 보수통합 움직임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여지를 남겨뒀다.
그런데 어떤가. 이 장면 어딘가 대단히 낯이 익지 않은가. 기성 정치를 양비론으로 싸잡아 비난하고, 정권과 각을 세우고, 반정치주의를 앞세워 정치혐오와 불신을 부추기고, 두루뭉술한 화법으로 본질을 비켜가던 안 전 대표의 과거 모습과 닮아있지 않은가 말이다.
정계 복귀 선언 전후로 안 전 대표는 직간접적으로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이는 귀국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하나 하나의 워딩은 다를지 몰라도, 그 말들은 결국 "낡은 정치를 바꾸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정치를 바꾸겠다던 안 전 대표가 정작 자기 스스로는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기계적 중립과 전략적 모호성으로 세간의 비판을 받아왔던 안 전 대표에게 중요한 것은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극복해내는 일이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안 전 대표가 달라졌다는 징후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의 참패가 이를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다. 안 전 대표는 과연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정치 초년생이었던 저의 부족함으로 많은 실망을 안겨드렸다"는 고백이 나오게 된 이유를 성찰해야 하는 이유일 터다. 그것이 없다면 '안철수'의 시간은 이번에도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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