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개특위 임기 내 제 손으로 선거제 개혁안을 의결하겠다."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위원장이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28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정개특위 연장이 안 될 경우 30일까지 선거제도 개혁안을 의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심 위원장은 27일 페이스북에 "내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개특위 연장이 결의된다면 무리하게 의결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만일 연장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된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뜻일 테다. 정개특위 활동은 이달 30일 종료된다. 심 위원장이 이날 "정개특위에서 이틀 내에 개혁안을 의결하겠다"고 강조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28일 본회의를 통해 활동기한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선거제도 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결정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를 의식한듯 심 위원장은 "한국당은 국회 정상화를 거부하고 정개특위룰 파행시켜 왔다"라며 "이제 국민들은 자유한국당에 '국회에 들어가라'고 요구하던 것을 지나, '차라리 나가라', '국민소환제를 도입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라고 일갈했다.
이날 열린 정개특위 전체회의 역시 한국당 소속 의원들의 거센 항의로 30여분만에 정회됐다. 한국당은 비례대표제 폐지와 의원정수의 30석 축소를 골자로 하는 '정유섭 의원안'을 여야4당 안과 함께 축조심의(법안 의결에 앞서 법 조항을 한 조목씩 모두 심의하는 방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개특위 활동시한이 사실상 하루밖에 남지 않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물리적 시간이 없다는 지적이다. 심 위원장이 "정개특위에서 할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본다"라며 "여야 4당 안은 충분한 숙의 끝에 나왔고, 내일이 마지막인데 절충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한국당 요구를 일축한 배경이다.
심 위원장을 비롯해 여야 4당은 본회의에서 정개특위 활동기간 연장이 무산될 경우 28일 전체회의에서 표결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한국당의 반대로 선거제도 개혁안이 표류돼왔던 만큼 표결처리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로 안건을 넘기겠다는 뜻이다. 총 18명의 정개특위 위원 중 한국당 몫은 6명이기 때문에 표결처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한국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야 4당이 한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년 총선 전까지 선거제도를 손보기 위해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국회는 선거일로부터 1년 전(4월 15일)까지 국회의원 지역구를 확정해야 한다고 명시한 선거구 확정시한을 넘겼다. 이 역시 한국당이 비협조적으로 나온 탓이었다.
실제로 선거제도 개혁안과 관련해 한국당이 보여준 것이라고는 '반대'와 '몽니'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개특위가 출범한 이후 한국당은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가 하면, 거듭된 국회 보이콧으로 논의 자체를 아예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여야 5당이 올해 1월 안으로 선거제도 개혁 문제를 처리하기로 합의했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한국당의 선거제도 개혁 의지 자체가 의심받는 상황에 이르자 여야 4당은 결국 패스트트랙이라는 고육지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당은 되레 큰소리를 쳤다. 한국당의 몽니가 계속되면서 패스트트랙 가능성이 제기되자 '의원직 총사퇴' 카드를 꺼내들며 으름장을 놓은 것.
한국당의 강력 반발하자 심 위원장은 지난 3월 6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선거제도를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면 의원 총사퇴할 것'이라는 한국당의 주장은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라고 강하게 꼬집었다.
이어 "더이상 자유한국당에 발목 잡혀, 국민들의 정치개혁 열망이 좌초돼선 안 된다"라며 "패스트트랙은 '자유한국당 패싱'이 아니라 '자유한국당의 선거제도 패싱'을 방어하기 위함이다. 패스트트랙은 이렇게 선거제도에서처럼 자유한국당의 몽니를 견제하라고 만든 합법적인 책임수단이다"라고 역설했다.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 절차를 논의하게 된 원인이 한국당에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 각층에서 한국당의 맹목적인 반대와 비협조적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그러나 한국당은 시종일관 남탓이다. 대통령이, 정부가, 여야 4당이 정국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일 하는 국회법', '국민소환제' 등 부글부글 끓고있는 여론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다.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다. 한국당의 적반하장은 27일에도 이어졌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기자들과 만나 "내일 본회의는 불법"이라며 "여태까지 전례가 없는 일이고, 본회의를 마음대로 하겠다니 국회가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자괴감이 든다"라고 성토한 것이다.
말문이 막힌다. 그는 국회가 이 지경이 된 이유를 정말 모르는 것일까. 국회가 80일이 넘도록 공전하는 것은 한국당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국회 파행 책임을 묻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당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응답이 높게 나오고 있다. 한국당이 맹공을 펼치고 있는 패스트트랙 역시 잘했다는 여론이 더 높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정반대의 목소리를 낸다.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입맛대로 행동한다.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의 국회 정상화 합의가 2시간 만에 뒤집혔지만 나 원내대표는 사과 대신 "의원들 의견이 국민의 의견이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아 빈축을 샀다. 그가 말하는 국민은 대체 어느 나라 국민일까.
한국당은 국회 등원을 거부하면서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임위만 선별적으로 골라 출석하고 있다. 말로는 경제와 민생을 운운하면서도 정적 국민에게 시급한 민생법안은 내팽개치고 있다. 강원도 산불 피해 지원 등이 포함된 민생 추경안도 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으로 두 달이 넘게 심사조차 못하고 있는 상태다.
당 안팎으로부터 등원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지만 외려 한국당이 내건 조건은 나날이 늘어간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철회, 고소·고발 취하, 경제청문회 등을 요구하며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다. 정개특위 연장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나 원내대표는 28일 민주당과 한국당이 위원장을 나눠 맡아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집안 분위기가 싸한데 눈치 없이 밥투정 하는 아이 꼴이다. 국회를 향한 세간의 시선은 그야말로 폭팔 일보직전이다. 국민들은 놀고 먹는 국회의원의 수당을 반납시켜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자격 없는 국회의원을 걸러내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국민소환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뜨겁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당을 향해선 이참에 아예 국회에 들어오지 말라는 비난과 냉소가 들끓는다. 내년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보다 야당 심판론이 더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최근 한국당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도 이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당의 명분 없는 장외투쟁에 실망한 여론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당은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국회의 책무와 본분을 망각한 채 등원을 거부하며 국회 공전의 책임을 외부에 전가시키고 있다.
장기 국회 파행으로 민생·개혁 법안이 수두룩하게 쌓여간다. 국민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등이 말해주듯 국민은 국회를 향해 존재의 이유를 되묻고 있다.
한국당이 민심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일 터다. 시곗바늘은 지금도 총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적반하장을 용인할 이는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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