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모양새입니다. 지난달 28일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등과 교섭단체 원내대표 합의를 주도하며 국회를 정상화시키는 데 성공한 더불어민주당이 여야 4당 공조 균열이라는 암초를 만난 것입니다.
앞서 6월 28일 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 3당은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습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를 연장하되, 민주당과 한국당이 위원장을 하나씩 맡기로 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습니다. 민주당이 한 곳을 먼저 고르면 한국당이 나머지 한 곳을 맡게 됩니다.
주목할 것은 이날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교섭단체 3당이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을 교체하기로 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루 전인 6월 27일 "가장 예민한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위원장을 1당과 2당이 하나씩 맡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며 "위원장 자리를 하나씩 맡는 조건이라면 당연히 (특위를) 연장할 수 있다"라던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의도대로 된 셈입니다.
문제는 그동안 거대양당의 힘겨루기 속에 표류해오던 선거제 개혁을 지금까지 이끌어온 심 의원이 결과적으로 국회 정상화의 희생양이 됐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위원장 교체 과정에서 만주당이 정의당과 충분한 사전 교감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 당 사이의 파열음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야 합의 직후 심 의원은 "그간 선거제 개혁을 위해 공조해온 여야 4당 안에서 협의절차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어안이 벙벙하다"라며 불쾌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하루 뒤인 29일에는 정의당 전국동시당직선거 호남유세에서 “심상정이 받은 굴욕과 정의당이 받은 모욕에 대해 끝을 봐야 한다"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정의당도 민주당 압박에 나서고 있습니다. 특히 정의당은 위원장 교체와 관련해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2일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양해 접촉이 전혀 없었다"라며 "여야 4당과 직접 연관된 특위인데 (3당끼리) 합의를 해놓고 전부 끝낸 다음에 문구를 우리가 봐야한다는 것을 정치적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 있나"라고
꼬집었습니다.
같은 날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정개특위 시한이 다가왔을 때 심상정 위원장이 '연장이 안 될 가능성도 높으니 패스트트랙을 정개특위 안에서 처리하고 넘어가자. 그렇게 되면 위원장직이 뭐가 문제인가'라고 했는데 이인영 원내대표가 이 말을 곡해를 하고 앞의 상황을 다 잘라먹으며 양해를 구했다고 한 것"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이정미 대표는 이날 손학규 바른미래당·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의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은 여야 4당 공조로 만들어 온 선거제도 개혁을 책임 있게 완수하고자 하는 의지와 방도를 밝히기 바란다"라며 "그 의지의 출발점은 정개특위 위원장을 민주당이 맡아 특위를 책임 있게 운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한국당이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게 될 경우 여야 4당 공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실제 이날 야 3당 대표는 "정치개혁 논의의 주도권이 반개혁 세력인 한국당에 넘어간다면 선거제 개혁은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강하게 역설했습니다.
야 3당 대표가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당은 여야 4당이 추진한 패스트트랙의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제 개혁법안은 물론이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역시 반대 입장이 명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이 정개·사개특위 위원장을 맡게 될 경우 법안 심의가 제대로 될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심 의원과 정의당이 민주당을 강하게 비토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지금껏 선거제도 개혁을 주도해왔던 심 의원이 위원장직을 사퇴해야 하는 데다가, 앞으로의 상황 또한 전망이 그리 밝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정의당을 비롯해 야 3당은 선거제 개혁이 누구보다 절실한 입장입니다. 기득권 양당제를 고착화시키는 현행 소선거구제 아래에서는 당의 존립과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죠. 야 3당이 민주당과 공조해 패스트트랙 열차에 동승한 배경입니다.
그러나 만약 한국당이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게 될 경우 야 3당의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그간의 한국당의 행태로 미루어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원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섭단체 3당이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지만 국회는 여전히 불협화음이 끝이질 않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네 탓 공방에 날 새는 줄 모릅니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향해 발목잡기를 멈추고 산적한 민생경제 법안과 추경안 처리에 즉각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당은 진정한 국회 정상화는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을 합의 처리할 때만 가능하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말이 국회 정상화이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합의 이전이나 이후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한국당이 복귀했지만 국회는 여전히 정치공방으로 뜨겁습니다.
민주당이 곤욕스러운 지점입니다. 이번 합의로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한 당 안팎의 비판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합의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제 개혁·공수처 설치·검경 수사권 조정 등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개특위와 사개특위가 서로 맞물려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될 공산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더욱이 두 곳 중 하나는 한국당이 위원장을 맡게 됩니다. 선거제도 개혁과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대한 한국당의 입장은 한결 같습니다.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기 위해 국회 파행을 주도했던 한국당이 법안 심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전략적 오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당 당원 게시판과 SNS 등지에서는 이번 합의를 이끌어낸 민주당 지도부를 성토하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당 지지율은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장기간 계속되는 국회 파행에 한국당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황교안 대표의 계속된 실언과 여성당원 행사 도중 발생한 '엉덩이 춤' 논란 등이 잇따르면서 당내에서는 조건 없는 등원론까지 제기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합의로 코너에 몰리고 있던 한국당의 막힌 숨통이 트이게 됐습니다. 국회 정상화를 위한 출구전략을 고심해야 할 처지에 한국당은 오히려 최상의 결과를 도출해 냈습니다. 더욱이 정개·사개 특위 위원장 한 자리까지 전리품으로 얻었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습니다.
한국당은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이요, 민주당은 긁어 부스럼을 한 셈입니다. 어차피 조만간 국회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처지였던 한국당의 기세를 민주당이 살려 준 꼴이 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여야 4당의 공조마저 시험대에 오르게 됐으니 이번 합의로 민주당이 입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민주당이 왜 그런 무모한 합의를 했는지 모르겠다. 추경을 빨리 이끌어내려다 보니 가장 전략적이고 중요한 정치개혁과 사법개혁을 뒤섞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한국당에 자꾸만 협상을 내주는 것은 잘못이다. 국회 운영 과정이 바뀌어야하는데 그것이 개혁을 말하는 민주당이 해야할 역할이다."
윤소하 원내대표가 앞서 인터뷰에서 분통을 터트리며 내뱉은 말입니다. 사법·정치개혁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앞든 시기에 정개·사개 특위 위원장 한 곳을 한국당에 내준 민주당을 향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어납니다.
국회 정상화를 명목으로 민주당은 한국당과 의 타협을 선택했습니다. 추경 등 민생·개혁 입법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이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실질적 배경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의 결단에도 국회는 여전히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야 4당의 공조도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정말 궁금해집니다. 민주당이 감행한 국회 정상화 합의로 그들이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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