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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잇따른 실언..'심사일언'(深思一言) 해야 할 사람은 '황교안'

ⓒ 오마이뉴스

 

정치인이 논란에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거나 그런 일 없다고 잡아떼거나, 진위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해명하거나. 외국인 노동자 임금 차별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그 중 두 번째와 세 번째를 택하기로 한 모양이다.

황 대표는 20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업인들과 의견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외국인 근로자 최저임금 문제를 지적했더니 일부에서 차별이니 혐오니 터무니없는 비난을 한다"고 항변했다.

이어 "중소기업들이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을 감당하기도 힘든데 외국인 근로자에게 숙식비 등 다른 비용까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제 이야기의 본질은 외국인 근로자를 차별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바로잡자는 것이었다"라고 반박했다. 

자신의 발언을 왜곡·확대하는 정치권과 언론이 외려 문제라는 식이다. 그러나, 입은 삐뚫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 하지 않을까. 전날 황 대표가 부산상공회의소 조찬간담회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그동안 기여해온 바가 없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똑같이 임금 수준을 유지해주어야 한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기본 가치는 옳지만, 형평에 맞지 않는 차별 금지가 돼선 안 된다. 한국당이 법 개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외국인 근로자 임금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

너무나 간명해서, 왜곡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황 대표의 발언 취지는, 워딩 그대로 "우리나라에 기여한 바가 없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동일 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법 개정을 통해서 이를 바로 잡겠다는 거다.

그러나 황 대표는 자신의 발언이 거센 논란에 휘말리자 이내 말을 바꾼다. 취지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말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적나라하게 '커밍아웃'했으면서, 오히려 이를 지적하는 이들에게 '터무니없는' 역정을 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황 대표는 자신이 얼마나 큰 실언을 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듯 보인다. 황 대표의 주장은 '국적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및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대표적 우파시장주의자인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도 이 점을 꼬집었다. 20일 홍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내외국인 임금 차별 정책은 근로기준법 및 ILO 협약에도 위배되는 잘못된 국수주의"라고 비판했다.

눈여겨 볼 대목은 그 다음이다. 홍 전 대표는 "보수주의의 기본 정신은 자유시장 경제이고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라며 "과거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서독, 중동에 나가던 시절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일침을 날렸다.

어디 서독, 중동 뿐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계 곳곳에서 땀흘려 일하고 있다. 황 대표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겨냥했지만, 같은 논리라면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노동자 역시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역으로 한국인이 외국에서 부당한 차별을 당한다면 황 대표는 어떻게 대응할 참인가. 황 대표는 국내 거주 외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재외 한국인의 가슴까지 철렁하게 만드는 아찔한 발언을 한 셈이다.

 

ⓒ 오마이뉴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황 대표가 대중의 혐오와 증오를 정치에 이용했다는 점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수만 100만이 훌쩍 넘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급증하다 보니 내·외국인 사이의 갈등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외국인 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기도 하고, 선입견이나 배타적 감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한다.

황 대표의 발언이 심각한 것은 그런 이유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자극하고 대중의 증오와 혐오 감정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분열과 증오가 아닌 화합과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 미움과 배제가 아니라 포용과 상생을 모색해야 한다.

증오정치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굳이 히틀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중의 증오와 혐오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는 설명이 필요 없는 문제다.

현실적인 부분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경제는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들 대부분이 내국인이 꺼려하는 3D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영세중소기업, 농수산업, 건축업, 식당 등 많은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커지고 있다.  

황 대표의 주장과 달리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실제 IOM이민정책연구원의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경제유발 효과는 2016년 74조 1천억 원, 2018년 86조7000억 원 등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대한민국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성장 동력이 돼버린 것이다.
 
황 대표의 주장은 글로벌 시대의 흐름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 수많은 내·외국인이 국내·국제시장에서 상호 교류하며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내·외국인의 구별이 무의미해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과 내국인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정책적 배려와 사회 분위기 조성에 정치권이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황 대표는 그 반대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 정치적 목적과 입지를 위해 노골적으로 차별을 조장하고 대중의 혐오를 자극한다. 비판 여론이 솟구치자 "터무니없는 비난을 한다"고 역공을 펼친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고 말을 바꾼다. 하루 사이에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황 대표는 20일에도 논란의 중심이 됐다. 이날 숙명여대 1학년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아들의 취업과 관련해 "학점도 엉터리,  토익 점수도 800점이었다. 졸업 후 15개 회사에 서류를 내서 10개 회사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서류심사를 통과한 다섯 군데의 회사는 최종 합격을 했다"라고 말해 구설에 오른 것이다.

황 대표는 "큰 기업에서는 스펙보다는 특성화된 역량을 본다"라며 아들의 취업 성공담을 자랑하듯 말했지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아들의 KT 특혜 채용 의혹이 가시지 않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는 황 대표를 향한 비판과 함께 아들의 특혜 채용 의혹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실 황 대표의 말실수(?)는 유례가 꽤 깊다. 국무총리 재임 당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교육을 하라는 교육부 지침이 있는데도 "주체사상 가르치라는 가이드라인이 있을 수 없다"라고 반대로 말하는가 하면, 한미연합사에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에 '한미공동'이라고 답해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국가테러대책회의의 의장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답변해 논란이 되기도 했고, 국정교과서 논란 당시에는 교육부에 있는 교과서 저작권이 "집필진에 있다"라고 대답해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한국당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황 대표는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중이던 박영수 특검의 기간 연장을 거부했던 이유가 박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서였다는 취지로 말해 당 안팎의 비판을 받았다. 이밖에도 탄핵의 정당성을 부정하는가 하면, 태블릿PC 조작설에 동조하는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에 좀처럼 말실수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황 대표의 실언은 보는 바와 같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시대착오적이며 반인도적인 인종차별적 인식, '경알못'(경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외국인 노동자 임금 차별 발언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라 할 수 있을 터다.

소속 의원들의 막말과 실언이 잇따르자 황 대표는 지난 3일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항상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해 심사일언(深思一言), 즉 깊이 생각하고 말하라는 사자성어처럼 발언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누구보다 실언이 잦은 사람은 다름 아닌 황 대표처럼 보인다.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녹음해 들려줘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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