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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 정상화 합의문 걷어찬 한국당..5년 전에는 달랐다

ⓒ 오마이뉴스

 

국회 정상회를 위한 여야 합의가 말짱 도루묵이 됐다. 24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나경원 자유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합의문에 전격 서명할 때까지만 해도 80여일 간 지속된 국회 파행이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의원들을 대표하는 교섭단체 원내대표 간 합의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그러나 합의문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휴지조각이 됐다. 일각의 우려대로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결국 사달이 났다. 한국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대하면서 여야 3당의 합의문이 추인 받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당은 여야 합의 조항 중 특히 '패스트트랙 법안은 각 당의 안을 존중해 합의정신에 따라 처리한다'는 내용을 문제 삼았다.

한국당은 '합의 처리한다'가 아닌 '합의정신에 따라 처리한다'는 문구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며 집단 반발했다.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 여야 4당으로부터 '패싱'당한 아픔이 있는 한국당은 보다 확실하고 구속력 있는 문구를 넣길 원했다.

의총 직후 나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합의문에 대해 의원들이 조금 더 분명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사 표시가 있어서 추인이 어려워졌다"라고 의총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 소속 의원 일동은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운영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을 원천 무효화하라는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기로 했다"며 재협상에 나설 뜻임을 시사했다.

나 원내대표는 25일에도 기자들과 만나 "합의가 무효로 됐기 때문에 민주당과 재협상을 하겠다"라며 "책임 있는 여당으로서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재협상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라고 밝혔다. 추경안 처리 등이 시급한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와 관련해 더 양보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돌고 돌아, 다시 원점이다. 국회 파행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추인에 한국당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한국당은 자신들을 뺀 패스트트랙 상정은 "원천무효"이며 "의회민주주의 부정"이라며 국회 보이콧을 선언하고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그렇게 국회가 파행된지 50여 일, 본회의가 열리지 않은지 무려 80여 일이다.

일 안 하는 국회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냉랭하기 그지없다. 이에 국회의원에게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시켜 세비를 반납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자격 없는 국회의원을 걸러내기 위한 장치인 국민소환제 도입 목소리도 가열차게 일고 있다. 

국회의원의 본분을 망각한 채 '동물국회'와  '식물국회'를 반복하고 있는 볼썽사나운 국회를 향한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국회 파행의 책임을 놓고 정치권은 서로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국회 파행 원인은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 안 하는 정부와 여당 때문이다"(나 원내대표), "국회 파행은 한국당의 책임이라 생각한다"(이 원내대표), "국회 파행의 책임은 온전히 한국당이 져야 할 몫이다"(오 원내대표) 등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의 목소리가 제각각이다.

반면 여론은 한국당의 책임이 더 크다고 여기는 듯 하다. 국회 파행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당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응답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시민단체 역시 비슷한 시각인 것 같다. 지난 17일 전국 57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정치개혁공동행동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국회 파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제·국회 개혁 단행',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 수당 반납', '국민소환제 도입 위한 범국민적 논의 시작' 등을 요구했다.

정치개혁공동행동 등은 특히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책임은 무엇보다 자유한국당에 있다"라며 "현행 선거제도로 누리던 부당 이득을 내려놓기 싫어 선거제도 개혁 요구를 끝끝내 외면하더니 이제는 자신의 정치적 잇속을 챙기느라 정상적인 국회 운영까지 훼방을 놓고 있다"라고 일갈했다. 민생을 볼모로 장기간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는 한국당을 맹비난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실제 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은 명분이 부족할 뿐더러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법 절차인 패스트트랙을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패스트트랙은 지난 2012년 당시 새누리당(현 한국당)이 주도했던 국회선진화법에 포함돼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입법과정이기 때문이다.

외려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을 동반해 불법을 저지른 건 한국당이었다. 한국당은 의안과 앞을 점거해 의안접수를 원천적으로 봉쇄시키는가 하면, 동료의원과 국회직원을 불법 감금시키고, 국회 기물을 파손하는 등 국회 의사일정을 집단적으로 방해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국회 파행의 책임이 전적으로 정부·여당에 있다며 장외투쟁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살펴본 것처럼 한국당의 주장은 각계로부터 자가당착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합법적 절차인 패스트트랙을 불법이라 호도하며 장외로 뛰쳐나간 것도, 경제와 민생을 운운하며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는 것도 앞뒤 말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야 합의를 파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합의는 장기 국회 공전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해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한 결과다. 그러나 극적으로 도출된 합의문은 불과 두시간 여만에 무용지물이 됐다. 패스트트랙 과정 당시 여야 합의와 절차를 그토록 강조하던 모습과는 정반대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4년 8월  20일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이 의총에서 세월호특별법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 추인 유보 결정을 내리자 당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무거운 책임있는 원내대표간 합의가 또 뒤집힌다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정당민주주의,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무성 최고의원은 "우리 국회가 세월호에 묶인 동안 경제활성화 골든타임이 화살처럼 지나가고 있다"라고 안타까워 했고, 이재오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저도 야당 원대대표 두 번 해봤지만 이런 협상을 본 적이 없다"며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여야 합의를 헌신짝처럼 내던진 한국당이, 나 홀로 반대만을 외치고 있는 한국당이 기억해야 할 일화일 터다.  

국회정상화를 거부한 한국당은 검찰총장·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북한어선 입항 사건, 수돗물 사태 관련 상임위에만 선별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안만 가려가며 활동하겠다는 뜻으로 책임있는 공당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국회를 향한 불신과 냉소가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추경 등 경제와 민생 관련 법안은 먼지만 쌓여간다. 5년 전 했던 저 말이 현재의 한국당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이유일 것이다. 경제와 민생을 위한 골든타임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한국당은 조건 없이 국회에 복귀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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