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법이 통과되면 저희는 곧바로 비례대표 전담 정당을 결성할 것임을 알려드린다."
지난해 12월 23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김재원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다음날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비례대표를 위한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된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가 임박해지자, 찾아낸 묘수(?)였습니다.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을 더 확보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지난해 12월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따르면, 국회 의석은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으로 나뉘어집니다. 정당득표율의 연동률은 50%이며, 연동률 적용 캡은 30석으로 제한됩니다. 전체 비례대표 의석 중 나머지 17석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병립해서 배분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과 의석수의 불균형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정당득표율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적은 정당의 의석을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죠. 그런데 이렇게 되면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 등 상대적으로 지역구 의석이 많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거의 얻지 못하게 됩니다.
어떤 정당이 21대 총선에서 20%의 정당득표율로 60석의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럴 경우 이 정당은 300석의 20%인 60석을 이미 확보했기 때문에 연동형 캡을 통해서는 비례대표 의석을 한 석도 보전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득표율에 따라 병립형(17석)에서 3~4석 정도의 추가 의석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만든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도 정당득표율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의석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구는 지역구대로 챙기고, 비례대표는 비례 위성정당을 통해 확보하는 셈이니,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죠.
한국당이 추진 중인 비례 위성정당의 명칭이 '미래한국당'으로 결정됐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비례OO당' 사용 불허 결정으로 '비례자유한국당'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당명을 바꾼 것입니다.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준비위원회(창준위)는 17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위헌적이고 편향적인 선관위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비례자유한국당 창준위는 대한민국의 건전한 공당과 준법기관을 지향함에 따라 '미래한국당(가칭) 창당준비위원회'로 명칭을 변경 신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선관위는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비례OO당'의 정당 명칭 사용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비례OO당'이 이미 등록된 정당의 명칭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아(정당법 41조 3항에 위반) 정당 명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한국당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심재철 원내대표는 1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름이야 무궁무진하다. 이름은 신경 안 쓴다"며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어떻게든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어 의석수를 늘려보겠다는 생각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한국당의 뜻대로 국면이 전개될지는 의문입니다. 일각에서는 비례 위성정당이 한국당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20일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선관위에 문의한 결과를 토대로, 한국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창당한다 해도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내용입니다.
그에 따르면, 현행 공직선거법 88조(타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금지)는 후보자,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회계책임자, 연설원, 대담ㆍ토론자는 다른 정당이나 선거구가 같거나 일부 겹치는 다른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선관위는 만일 어떤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낼 경우, 해당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는 물론 지역구 후보와 선거운동원 관계자는 다른 정당 비례대표 후보 당선을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거리 연설이나 TV토론 등에도 해당됩니다.
선관위의 답변은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은 다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내세운 의미가 무색해질 수 있습니다.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인 하승수 변호사도 비례 위성정당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습니다. 12월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실제 선거 환경을 생각하면, 한국당과 비례 위성정당 "모두 '폭망'하기 쉽다"고 꼬집은 것이죠.
하 변호사 역시 공직선거법 제88조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를 근거로 "자유한국당의 지역구 후보자, 선거운동원들이 ‘정당투표는 비례한국당에게 투표하라’고 얘기하면 전부 선거법 위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밖에도 하 변호사는 '당 지도부가 비례용 위성정당의 비례대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없다', '기호 문제로 유권자 혼란이 초래된다', '정치자금 조달 및 사용이 어렵다' 등의 이유를 들어 비례 위성정당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례 위성정당의 불확실성은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비례 위성정당 창당에 대한 여론이 매우 안 좋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죠. 리얼미터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 응답률은 5.1%) 결과에 따르면, 비례정당 창당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1.6%(찬성 25.5%)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렇잖아도 비례 위성정당이 선거법 개정의 취지를 왜곡시키고 정치를 희화화한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선관위의 유권 해석과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 등 현실적 문제 역시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여기에 여론마저 아주 싸늘합니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비례 위성정당'을 밀어붙일 기세입니다. 그러나 장미빛 환상에 젖어있기에는 감수해야 할 위험요소가 한 둘이 아닙니다. 이쯤되면 냉정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까딱 잘못했다간 제 발등을 찍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한국당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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