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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문 대통령의 '국정상설합의체' 제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 한겨레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넘어섰다. 문재인 정부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정부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의 퇴행과 역행을 바로잡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촛불의 명령이 문재인 정부의 과제로 주어졌다.

임기 초반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고 거침없이 순항하는 듯 했던 문재인 정부는 그러나 거듭된 인사잡음,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논란, 남북관계 경색, 조국 사태 등이 잇따르며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임기 초 여소야대 국면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 수사, 개헌, 세월호 진상규명, 남북관계 개선, 권력기관 개편 등 외교-안보와 정치-사회 개혁 과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배경은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율 덕분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를 떠받치던 핵심 동력이었던 국정 지지율은 임기 반환점을 지난 현재 거의 반토막이 나있다. 80% 중후반을 기록하던 지지율이 40% 중반대에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촛불혁명 이후의 숙제로 남겨진 각종 개혁 과제의 실현 여부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임기 초부터 사안마다 국정의 발목을 잡아온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의 행태가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이 10일 여야 5당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공전하고 있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의 재개를 제안한 것도 이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정치난맥을 풀어내기 어려운 현실에서, 개혁 과제 좌초의 부담감이 야당과의 관계 복원에 나서게 된 요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협치를 통해 정국을 풀어가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이 성공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데에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국당 등이 보여온 한결같은 행태가 이같은 추론에 무게를 실어준다.

지난 대선 당시 대선후보들의 공통공약이었던 '지방선거-개헌 동시투표' 약속은 한국당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 한국당은 정권 창출에 실패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바꿨다. 원내 제1야당이 무색하게 사과조차 없이 국민과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버린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논란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역시 한국당이 내걸었던 대선 공약이었다. 극에 달한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했던 한국당은 그러나 대선 이후 180도 다른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2018년 12월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합의처리하기로 약속했지만 한국당은 이마저도 없던 일로 만들었다. 이후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국회법 절차를 무시한 채 조직적인 폭력 행사로 의사일정을 원천 봉쇄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집권하던 시절인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은  북한의 참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안달복걸이었다. 대회 개막 이후에는 김무성 등 소속 의원들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팀을 열렬히 응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권에 실패하자 한국당의 태도는 또다시 돌변한다. 2018년 평창 올림픽 북한 참가를 반대하더니, 대회가 진행되는 내내 작심한 듯 시커먼 재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한국당의 자가당착적 행태는 이후 남북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밖에도 한국당의 맹목적으로 어깃장을 부려온 사례는 일일히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심지어 20대 국회 출범 이후 한국당의 국회 보이콧 횟수만 해도 20여 차례에 달할 지경이니 말해 무엇하랴.

이렇게 대놓고 노골적으로 정부 정책에 반대를 하고 국회 의사일정을 훼방놓고 있으니 국정이, 국회가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는 노릇이다. 합리적-상식적 비판과 생산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반대와 몽니로 국정을 마비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작태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문 대통령의 제안이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머릿속이 온통 정권 탈환으로 가득한 정당에게, 정치적 술수와 정쟁으로 체제를 흔들려는 정당에게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제안한다 한들, 이 제안이 문 대통령의 선의대로 진행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시쳇말로 누울 자리를 보고 누워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당의 지난 행태가 이를 여실히 방증하고 있지 않은가.

기실 한국당의 실체는 이미 총풍사건, 차떼기 사건, 국정원 사건 등으로 명확히 드러났다. 한국당은 정권 획득을 위해선 못할 것이 없는 정당이다. 북한에 총을 쏴달라고 부탁을 하고, 불법선거자금을 차로 퍼나르고, 국가기관을 동원해 부정선거까지 저지르는 정당을 과연 공당이라 부를 수 있을까.

반민주-반지성-몰상식 '친일-수구' 이익 집단인 한국당이 존재하는 한 의회가 정상적으로 운용될 것이라는 기대와 낙관을 아예 접어야 한다. 제대로 된 국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면 한국당을 논외로 치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생산적이다. (한국당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떠올려보라).

내년 총선이 더욱 중요해진 이유일 터다. 정치개혁-사법개혁의 첩경은 어쩌면 정치적 상상력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