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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이요, 뭐할라고 거기 갔능교?

옛말에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매지 말고 참외밭에서는 짚신을 고쳐신지 말라고 했다. 이는 사람의 처신에 대한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빛나는 경구다. 아무리 좋은 목적과 선한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라 할지라도 때와 장소, 상황에 맞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기 십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부산을 방문했다. 지난 10일 대구에 이어 일주일만에 다시 부산을 찾은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총선을 불과 한달여 앞두고 연이어 이루어진 대통령의 지방행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대통령의 대구 부산 방문에 정치적 의미가 없다는 청와대의 주장이 공허하게만 들리는 이유다.


정치인은 말 하나 행동 하나에도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 때에 따라선 침묵까지도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총선을 코 앞에 둔 민감한 시기에 대통령이 대구와 부산을 연달아 방문했다. 그것도 '진실한 친박' 후보들이 출마를 선언한 지역구에 말이다. 이들 두고 정치적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 민중의소리


대통령의 대구 부산 방문에 얼마나 큰 정치적 의미가 담겨있는지는 동선만 체크해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10일 대구에서 대통령은 동구의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북구의 엑스코, 수성구 삼덕동의 대구육상진흥센터를 차례로 방문했다. 이곳은 대통령이 대구지역 물갈이를 위해 내려보낸 측근들인 진박 후보들이 대거 포진해 있거나 중요 격전지로 손꼽히는 선거구들이다.

현재 대구 동구갑은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동구을은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예비후보로 등록되어 있고, 북구갑은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 수성구갑에는 김문수 전 의원이 결전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 지역구들은 해당 후보들이 상대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높지 않아 고전하고 있는 곳이다.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이런 배경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16일 부산에서의 동선도 대구와 아주 흡사했다. 대통령은 이날 창조경제혁신센터, 수산가공선진화단지, 사하사랑채노인복지관을 잇따라 방문했다. 이 지역은 현재 진박 현역의원들과 예비후보들 간의 경선이 진행 중인 곳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방문이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대통령이 가장 먼저 방문했던 부산창조경제센터는 비박계로 분류되는 하태경 의원의 지역구인 해운대갑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선거구 획정으로 분리된 기장을과도 인접해 있는 곳이다. 기장을에는 현재 대통령 측근인 윤상직 전 산업통상부 장관이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다음으로 찾은 수산가공선진화단지는 부산 서구동구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친박의 핵심이자 실세인 유기준 의원이 3명의 예비후보와 경쟁하고 있는 지역이다. 사하사랑채노인복지관이 위치한 사하구갑 역시 진박인 허남식 전 부산시장이 경선을 앞두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의 동선이 진박 후보들과 겹치고 있다.



ⓒ 아시아경제



청와대는 대통령의 대구 부산지역 방문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대통령이 선거 중립의 의무를 위반하고 총선에 개입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선제적 조치다. 그러나 대구와 부산이 어떤 곳인가. 한쪽은 죽은 자를 신의 영역으로 밀어 올리고 있는 곳이며, 다른 한쪽은 변치않는 지역정서로 집권여당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이다.

어디 이뿐인가. 이 지역은 후보자의 철학과 가치관, 살아온 이력과 능력, 정책과 비전보다 누가 더 대통령에 가까운 사람인가, 누가 더 대통령에게 진실한 사람인가가 선거 당락을 좌우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자체가 명백한 선거개입인 것이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대통령의 행보에 '총선용'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을까.


물론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관권선거와 부정선거가 횡횡했던 군사독재정부 이후 역대 정부들에서도 대통령이 선거를 위해 간접적으로 측면지원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대통령은 일찌기 없었다.

대통령의 관심은 온통 선거에 맞춰져 있다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운운하며 불같이 성을 내는 것도자신들의 측근을 대놓고 지원해주고 있는 것도사실을 호도해가며 연일 야당을 성토하고 있는 것도민감한 시기에 대구와 부산을 방문한 것도 모두 그에 기인한다승리에 대한 맹목적 집착이 부른 남용인 것이다.  


뭐가 대수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선거에 개입하고 있는 뻔뻔한 대통령과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하며 권력다툼에 날 새는 줄 모르는 집권여당, 권력을 향한 산 자들의 추악한 욕망을 걸러내지 못하는 지역 민심이 어우러진 이 씁쓸한 장면이 벌써 수십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비극이자 악몽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끝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총선이 이 끔찍한 비극과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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