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을 앞두고 극심한 내홍을 겪었던 여야의 공천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직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몇몇 지역구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후보 인선 작업이 끝난 상태다. 후보자 등록 마감일인 오는 25일을 전후로 여야는 본격적인 총선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바야흐로 총선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번 총선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단연 '일여다야'의 선거구도를 꼽을 수 있다. 공천학살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여권 인사들이 여럿 있기는 하지만 이를 두고 '다여다야'로 규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대 1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무소속 출마자들이 연대를 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다, 안상수 의원(인천 서구강화군을)을 제외하면 여권의 분열이 당락에 영향을 미칠 후보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친박계에 의해 자행된 3·15 공천학살의 강력한 후폭풍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은 '다여다야'가 아닌 '일여다야'의 구도 속에서 치뤄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 예측은 야권에게는 암울함 그 자체다. 역대 총선에서 야권이 분열해 승리한 경우는 딱 한번, 그것도 3김의 입김이 절대적이었던 13대 총선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결과는 '일여다야' 구도가 야권 패배 시나리오의 상수라는 것을 환기시켜 준다.
ⓒ 데이타뉴스
흔히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봤을 정치세계의 변치않는 생리다. 그러나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보수는 부패해도 망하지 않는 반면 진보는 분열하면 확실히 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보수가 부패한다고 해서 망할 일은 없다. 새누리당의 존재가 그 살아있는 증거다. 부패로 망할 것이었다면 이 정당은 진작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어야 했다.
그러나 진보는 다르다. 진보의 분열은 언제나 선거 패배로 귀결됐다. 1987년 대선에서의 단일화 실패 이후 이는 깨지지 않는 철칙에 가깝다. 단 한번의 예외였던 13대 총선은 어디까지나 지역주의와 3김이라는 정치적 거목에 편승한 이변에 불과했다. 이후 진보의 분열은 곧 선거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야권이 분열해서는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뜻이다.
정치의 문외한조차 알고 있는 '분열=필패'의 정석을 야권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야권에서는 현재까지 선거연대에 대한 그 어떤 밑그림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선거가 불과 20여 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데도 말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표면화된 모습만으로 보면 야권연대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야권의 맏형 격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의 김종인 대표는 야권연대에 대해서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고, 국민의당은 진작부터 독자행보를 가겠다 공언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전 대표가 사퇴하기 전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와 합의한 '범야권전략협의체' 구성 역시 전혀 진척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야권연대가 무산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 SBS뉴스 화면 갈무리
19대 총선의 득표율 통계는 이 가설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 준다. 당시 수도권에서는 득표을 3% 이내로 당락이 결정된 곳이 19곳, 5% 이내로 결정된 곳이 무려 30곳에 달했다. 야권연대가 없었다면 새누리당은 어쩌면 19대 총선에서 이미 180석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
혹자들은 선거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야권 연대를 정치적 담합이나 거래로 치부하기도 하고, 연대의 효력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야권 연대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야권 연대의 본질을왜곡하는 주장일 뿐이다. 전자는 어디까지나 야권 연대의 위력을 체험한 보수세력의 연대 무력화 담론을 그대로 차용한 것에 불과하고, 후자 역시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 연대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에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연대에 감동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19대 총선을 제외하면 야권은 늘 선거 막판에 이를 때까지 이해타산에 매몰된 모습을 연출하며 국민들의 진을 빠지게 만들었다. 총선 승리를 원하는 국민의 염원과 요구를 망각한 채 정치공학에 급급했던 야권의 모습이 연대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과거 실패했던 야권 연대의 클리셰다. 그 때의 전철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은 연대에 대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보다 더욱 암담하다. 물론 실제 선거전에 돌입하게 되면 중앙당 차원이 아니라도 후보간의 자율적인 연대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방식으로는 감동은 커녕 공감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지난 선거 결과들이 말해주고 있다. 결국 중앙당 차원의 끈끈한 연대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 위키피디아
새누리당은 고정불변의 지지율 40%와 영남지역의 의석수 67석, 그리고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는 현행 선거 제도 등 선거 승리를 위한 여건을 다수 갖추고 있다. 이에 반해 야권은 유리하다고 내세울 만한 것들이 거의 없다. 오히려 온통 불리한 것들 태반이다.
선거판을 일거에 요동치게 만들 북한이라는 돌발 변수도 존재하고 있고, 편향된 언론 환경도 여전하다. 선거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대간 투표율은 극심한 편차를 보이고 있고, 그마저도 이번 총선은 60대가 전체 유권자의 23%에 해당하는 974만명으로 가장 많다. 무엇 하나 야권에 유리한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야권의 거의 유일한 무기라 할 수 있는 야권 연대마저 불투명해졌다. 가진 패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과연 무엇으로 새누리당의 강력함에 맞서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연대 없이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은 야권이 승리를 포기했거나 아니면 만용을 부리는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야권 연대 없이는 총선 승리도 없다. 지구가 둥근 것만큼이나 명징한 이 사실을 야권 지도부만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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