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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언덕의 天-地-人

당신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입니까?

ⓒ SBS뉴스


올해의 마지막 날, 출근하는 길 달리는 차 안에서 문득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영화 '버킷리스트'가 떠올랐다. 하고 많은 생각의 편린들 중에서 영화,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버킷리스트'가 떠오르다니 참 알 수 없는 12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버킷리스트' 만큼 이 즈음에 어울리는 영화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역시 괜히 떠오른 생각이 아니었다.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며 '버킷리스트'의 장면 장면들을 떠올려 본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돈 많은 고집센 억만장자(에드워드, 잭 니콜슨)와 가난하지만 지식과 상식이 풍부한 자동차 정비공(카터, 모건 프리먼)에게 어느날 갑자기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다. 그 둘은 우연찮게 같은 병실에 머물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마음을 터 놓는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어느날 카터가 적어놓은 '버킷리스트'를 우연히 발견한 에드워드는 그에게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고 그 둘은 생의 마지막 여행에 나서게 된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에드워드와 카터의 '버킷리스트'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던 이유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좌절과 낙담에만 빠져 있지 않았던 두 사람의 모습 때문이었다. 내게는 남아있는 삶에 대한 애착과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열정을 불사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대단히 신선하게 느껴졌고,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 Daum 영화


당시 이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버킷리스트'가 유행했던 기억이 난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영화 속 에드워드와 카터처럼 해보겠다며 많은 사람들이 리스트를 만들고는 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와 에드워드와 카타의 '버킷리서트'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두 사람과 달리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는 절박함과 절실함이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비단 '버킷리스트'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무엇인가에 다다르기 위한 절박함과 절실함, 간절함이 배어있는 구체적 행동보다는 막연한 기대와 비현실적 공상 사이에서 정처없이 배회했던 것 같다. 젊은 시절의 빛나던 꿈들과 희망들이 해묵은 기억 속에 잠잘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내 안에 절박함과 절실함, 그리고 간절함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안의 '버킷리스트'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나는 지우지 못했다. 먹고 살기 바빠서, 경제 사정이 넉넉치 못해서, 피곤해서, 흥미를 잃어버려서. 이유를 찾으려면 수십가지를 족히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들도 절박함과 절실함, 그리고 간절함이 없다는 것에 비할 바는 못된다. 그렇다, 내 안에는 저것들이 없다.

물론 저것들이 없어도 삶을 살아가는 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다. 지금까지 살아왔듯이 또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후회다. 후회의 감정이 밀려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념에 휩싸이게 되고, 때로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꽃이 피고 다시 지고, 계절이 왔다가 다시 가듯이 후회와 상념이 어느 순간 되살아나 우리의 마음을 희뿌옇게 만든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많은 시간을, 꿈들을, 희망을, 사람을, 사랑을 떠나보낸 것이다.



ⓒ 아주경제


시간은 과거로부터 흘러오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현재로 흘러온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마음 속 한켠에 잠자고 있던 '버킷리스트'를 깨우고 싶어졌다올해가 가기 전에, 새해가 밝아 오기 전에 '버킷리스트'를 다시 불러내야 겠다.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닌, 여전히 부유하고 있는 꿈들과 희망에 다다르기 위해서, 그리고 여전히 불투명한 삶의 목적과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버킷리스트'를 소환해야 겠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잠자고 있을까. 당신이 꿈꿔왔던 것들과 당신을 강렬하게 사로잡고 있었던 열정과 욕망, 소망과 꿈들, 사랑과 추억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것들은 지금 어디에서 박제되어 있는 것일까. 반복되는 일상 속에 사로잡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후회와 다가올 미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이 정해졌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진실함과 간절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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