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검찰개혁을 위한 공수처법 처리에 모아진다. 오는 30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한국당을 제외한 4+1 협의체가 공수처법 표결에 들어갈 예정인 가운데, 여야는 필리버스터를 통해 날선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공수처 도입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엇보다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도입이 절실하다는 평가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매년 실시하는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도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현저하게 낮게 나타난다.
2016년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신뢰도와 청렴도 부분에서 4점 만점에 3점 이상을 기록한 공공기관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대적으로 신뢰도와 청렴도가 높게 나타난 조직인 의료기관이 2.5%와 2.4%다.
반면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는 신뢰도와 청렴도에서 각각 1.7%와 1.6%를 기록해 최하위를 기록했다. 중앙정부부처(2.0%, 1.9%), 검찰(2.0%, 1.9%), 법원(2.1%, 2.0%), 경찰(2.2%, 2.1%) 등도 신뢰도와 청렴도 부분에서 민망한 성적표를 받았다.
세계 반부패운동을 주도하는 비정부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지수 순위(2016년 기준)에서 우리나라는 176개 조사 대상국 중 52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국가기관에 대한 지독한 불신은 지난 수십 년간 층층이 쌓여온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의 후과다. 주목할 것은 국가권력의 중추인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모두 신뢰도와 청렴도 면에서 낙제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정기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검찰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적폐를 발본색원 해야 할 검찰이 정치권력과 유착하거나, 스스로 거악의 일원이 되어가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는 공직사회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국가 시스템이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공수처 도입이 주목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정기관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검찰을 대신해 권력형 비리와 불법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한 별도의 기구를 통해 2급 이상의 고위공무원들과 그 가족들의 비위를 전담 수사하게 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조직으로는 권력형 비리를 근절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공수처는 국민의정부 시절인 1999년 박상천 당시 법부무 장관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공직비리수사처'를 만들겠다고 보고한 이후, 정치권(한국당 제외)과 시민사회의 요구가 가열차게 터져나오고 있다.
실제 고위공직자의 부정비리가 터져나올 때마다 공수처 설치 요구는 빗발쳤고, 관련 법안이 쏟아져 나왔다. 18대 국회부터 현재까지 발의된 공수처 관련 법안만 해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공수처 설치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충돌하면서 번번히 좌초되고 말았다.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권력형 부정비리 사건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비일비재했다.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부정비리 의혹의 상당수가 검찰의 봐주기 수사, 꼬리 짜르기 수사 등으로 실체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개중에는 김학의 사건, 성폭력 무마사건, 공문서 위조 사건, 고래고기 사건 등 검찰 내부 비리와 제식구 감싸기 행태도 상당하다.
만약 공직비리 전담기구인 공수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국민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드는 대형비리사건의 상당수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절대다수의 국민이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는 이유일 터다.
조국 수사에서 드러났듯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의 폭주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는 수준으로까지 비화됐다. 4+1 협의체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금이 공수처 설치를 위한 절호의 기회다. 법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검찰권력의 분산과 견제를 위해서라도 공수처는 반드시 설치돼야 한다. 검찰개혁은 정치-사회 개혁을 위한 시발점이자 마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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