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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고래 고기 사건'의 본질, 검찰의 직무유기-봐주기 수사

ⓒ 한겨레

 

업자들이 훔친 작물을 거래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이 압수한 작물의 시중가는 30억에 달했다. 그런데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수사에 착수한 지 한 달 만에 작물 21억원을 업자들에게 되돌려준다. 압수한 물품이 작물이라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자 경찰의 심기는 불편해졌다. 누가 봐도 훔친 게 분명한데 검찰이 사건을 덮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검찰은 작물의 진위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한 성분 검사를 의뢰한 상태(검사 결과 작물로 확임됨)에서 그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압수 물품을 되돌려 줬다. 뭔가 석연찮다고 느낀 경찰은 사건을 다시 파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엔 검찰이 경찰 수사를 가로막았다. 작물업자의 뒤를 봐준 의혹을 받던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시킨 것이다. 경찰은 전직 검사 출신이었던 이 변호사와 담당검사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고 의심했다.

한편 시민단체에 의해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된 사건 담당검사에 대한 수사 역시 흐지부지됐다. 검찰은 담당검사를 해외연수차 국외로 내보냈고, 수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담당검사를 고발했던 시민단체는 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해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연을 올렸다. 그러자 의혹의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움직였다. 수사관을 해당 지역에 내려보내 내막을 알아본 것.

그러나 이 사건은 경찰의 영장 청구를 번번이 기각한 검찰의 수사 방해(?)로 진실에 다가서지 못한다. 외려 사건은 이후 청와대의 하명수사 의혹으로 비화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이상은 '청와대 하명수사' 논란으로 옮겨붙은 일명 '고래고기 사건'의 전말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이 사건은 너무 간단하다. 불법 포획한 고래고기를 유통시킨 일당에 대한 경찰 수사를 검찰이 가로막은 것(직무유기-직권남용)이고, 그 과정에 전직 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결탁돼 있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요약하면 검찰이 불법 고래고기를 유통시킨 업주와 그들의 뒤를 봐준 변호사에 대한 수사를 무마시킨 것이다.

그런데 1년이 넘게 검찰이 뭉개고 있던 사건을 윤석열이 얼마 전 울산지청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가져와 새로운 판을 짜기 시작했다. 봐주기 기소 의혹이 본질인 고래 고기 사건을 청와대의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하명수사로 둔갑시켜 버렸다. 청와대가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민정수석실 수사관을 울산에 내려보냈고, 경찰에 하명수사를 지시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울산지청의 봐주기-부실 수사 의혹을 청와대 하명수사로 치환시키는 윤석열 검찰의 상상력도 대단하거니와, 울산 지역계에 파다하게 퍼져있는 김기현 형제와 토건세력간의 비위 의혹을 관건선거로 물타기하는 한국당의 정략적 행태 또한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이 사회의 정의와 상식, 공정이 어떻게 망가져 왔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고래고기 사건과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검찰과 한국당의 행태다.

자기들 비리는 철저히 은폐-보호하면서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위선을 떠는 검찰과 적폐의 온상이면서 정치-사회개혁을 결사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한국당의 콜라보가 가관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불공정하게 휘두르고, 비이성적이고 반지성적 정치세력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리는 만무하다. 우리가 검찰개혁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한국당을 정치판에서 퇴출시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