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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백선하 교수가 '병사'를 고집하는 이유

ⓒ 오마이뉴스

 

 

11일 국회 교육문화관광위원회가 실시한 국립대병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관련해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날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백선하 교수는 사망진단서에 사망 원인을 '병사'로 기록한 것이 소신에 의한 것이라며 진단서를 수정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백 교수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자 이를 보다 못한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당신 의사 맞아?"라고 강하게 따져 묻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병사'인가, '외인사'인가. 한 사람의 죽음의 원인을 두고 의견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린다. 여기서 백 교수의 주장이 진실인지 아닌지 따져 묻는 것은 지극히 무의미하다. 고 백남기 농민이 관련 규정을 어기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외상성 뇌출혈을 일으켰다는 것과, 의사라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마당에 이를 논하는 것 자체가 비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의아한 것은 대부분의 현직 의사들과 법의학자들, 그리고 의사의 길을 가려는 수많은 의학도들의 입장과는 다르게 백 교수가 '병사'를 고집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이를 의사로서의 확신이나 소신,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존심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의사들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마저 백 교수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여전히 납득하기가 어렵다.

백 교수의 주장은 일반적 의학 지침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백 교수가 작성한 사망진단서가 과학적·의학적 원칙과 범주에 맞지 않다는 증언과 증거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는 탓이다. 무엇보다 사망진단서 작성지침을 발간한 대한의사협회의 판단이야말로 백 교수의 주장이 틀렸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럼에도 백 교수는 왜 '병사'를 고집하고 있을까. 확실한 이유는 오직 백 교수만이 알고 있을 터다. 그러나 여러가지 정황을 통해 합리적 추론은 충분히 해 볼 수 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에 따라 경찰과 정부가 떠안아야 할 책임의 밀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 핵심 포인트다.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이 '병사'로 확정될 경우 경찰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는 공권력 남용이라는 국민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두둔하기에 급급하고 있는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병사'는 경찰과 정부가 국가폭력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외인사'라면 상황이 아주 복잡해진다. 진상 규명을 통해 강신명 전 경찰서장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수뇌부에 대한 법적 책임이 불가피해진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집회와 시위에 대해 강경대응을 일삼아왔던 정부 책임론 역시 비등해지게 된다. 경찰의 과잉 진압을 묵인하고 이를 방조한 박근혜 정부에게 직접적 화살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일각에서 제기되는 '청와대 개입설'마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권퇴진론으로까지 비화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등산 중이었던 백 교수가 뇌출혈 전문가였던 당직 교수의 가망없다는 판단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수술을 집도한 점, 이 과정에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정용근 전 혜화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백 교수가 수술을 하도록 지시한 점, 이 사건과 관련있는 강신명 전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정용근 전 혜화경찰서장이 모두 청와대 라인이라는 점, 백 교수가 '병사'로 기록한 사망진단서가 경찰의 부검 요구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청와대 개입설'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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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와 관련해 아직까지 확실하게 드러난 사실은 없다. 다만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와 관련해 이성과 상식에 반하는 일들이 검·, 정부와 청와대, 서울대병원 측과 백 교수 쪽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백 교수에게 세간의 의혹이 집중되고 있을 뿐이다.

'병사'냐 '외인사'냐의 논란이 거세지자 서울대병원장은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에는 담당의사의 철학이 들어가 있다며 백 교수의 손을 들어 주었다. 사망진단서가 의사로서의 '철학' '소신'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팩트'의 문제라는 사실을 의사로 잔뼈가 굵은 그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No'라고 고개를 젓고 있는 사안에 단호히 'Yes'를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그들의 말을 믿을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각자가 판단한 일이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변명과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백 교수의 행위가 의사로서의 '철학' '소신'으로 둔갑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성과 상식에 기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이는 죽음에 대한 예의이면서 동시에 산 자의 양심에 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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