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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이다 총리' 이낙연, 그의 정계복귀를 주목하는 이유

 

ⓒ 크리스천투데이

 

정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이낙연 국무총리가 곧 자유(?)의 몸이 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이 총리의 후임으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지명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경신해나가고 있는 이 총리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 총리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신임 총리 인선을 발표하며 "이 총리님이 내각을 떠나는 것이 저로서는 매우 아쉽지만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신망을 받고있는 만큼 이제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놓아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소회했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이 총리는 안정적인 국정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국민적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는다. 탁월한 국정장악 능력과 원활한 내각 운영을 통해 자기색깔을 확실히 보여주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등을 통해 야당의 날선 공세를 품격있고 절제된 언행으로 되받아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고 노회찬 의원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자해공갈단 같은 거였는데, 자해만 하고 공갈은 못 하는 그런 상황"이라며 "중학생을 대하는 자상한 대학생 같다"고 이 총리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실제 2017년 9월 대정부질문 당시 이 총리가 보여준 품격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본래 대정부질문은 정부여당의 실정을 부각시키기려는 야당 의원들의 파상공격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야당의 공세는 이 총리의 정연한 논리와 차분한 대응에 가로막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화제가 만발했던 이 총리의 발언 일부를 소개해본다.

"MBC 김장겸 사장 내쫓을 겁니까? 최근에 MBC나 KBS에서 불공정 보도하는 거 보신적 있습니까?"(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

"잘 안 봐서 모르겠습니다. 꽤 오래 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습니다"(이 총리)

"이미 한미 동맹관계가 금이 갈대로 갔습니다. 오죽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통화하면서 한국이 대화 구걸하는 거지같다는 그런 기사가 나왔겠습니까?"(김성태 한국당 의원)

"김성태 의원님이 한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이 총리)

"문재인 정부가 대화 제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조선은 대화자격이 없다. 핵은 우리와 미국 사이의 문제다' 이것이 북한의 입장입니다"(함진규 한국당 의원)

"오히려 되묻고 싶습니다. 미국이 대화를 말하면 전략이라 하고 한국이 대화를 말하면 구걸이라 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이 총리)

"한국은 삼권분립 국가가 아닙니다. 한국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제왕적 대통령 1인제 국가입니다."(황주홍 국민의당 의원)

"조금 전에 우리는 삼권분립을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이 지명한 헌재소장 후보자가 인준받지 못한 사태가 바로 있었잖습니까. 삼권분립은 살아있습니다"(이 총리)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술술'이다. 이 총리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유연하고 절제된 화법으로 정곡을 찌르며 논리로 상대를 제압해 나간다. 이는 이 총리가 정치·경제·외교·통일·안보 등 각종 현안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다, 신속한 상황대처 능력과 품격까지 겸비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 체득된 꼼꼼함과 분석 능력이 빛을 발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의 경우 대정부질문의 특성상 같이 고성을 지르거나 두루뭉술하게 답변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이 총리는 달랐다. 일찌기 보지 못했던 장면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대정부질문 이후 이 총리에게는 '사이다 총리'라는 닉네임이 붙여졌다.

이 총리가 돋보이는 건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이 총리는 '책임총리'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했다. 과거 총리의 역할이 대통령을 보좌하고 국정을 조율하는 관리형 수준에 그쳤다면, 이 총리는 적극적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국정을 주도해나가는 실세총리의 면모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이 총리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을 비롯해 강원도 산불, 돼지열병, 조류인플루엔자(AI), 지진, 태풍 등 각종 재해·재난 상황에서 내각을 직접 총괄하며 발빠르게 초동대응에 나서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피해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그 경과를 세밀히 살피는 이 총리의 현장 중심 행정이 빛을 발했다는 게 중론이다.

문 대통령은 이런 이 총리를 크게 신뢰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신년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이 총리가 직접 주재하도록 했다. 대통령이나 권한대행이 이닌 국무총리가 직접 정부 업무보고를 받은 것은 이 총리가 처음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 총리가 외국순방에 나설 때도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1호기를 타도록 배려했다.

권위를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국민과 교감하는 모습도 눈여겨 볼만 하다. 지난 4월 6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안전재난상황실에서 열린 강원산불 대책회의 이후 이 총리의 수첩 메모가 공개돼 화제가 됐다. 회의 내용과 함께 향후 대책과 지원 방안, 심경 등이 빼곡히 적혀있는 8쪽 분량의 수첩은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는 이 총리의 평소 스타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국민에게 깊이 머리 숙이는 이 총리의 모습은 이제 익숙한 장면이 됐다. 이 총리는 독립유공자를 비롯해 한국전쟁 참전용사 등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등 극진한 예우를 표하는가 하면, 일반 시민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스스로를 낮추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2018년 5월 제38주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기념사를 읽으며 연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같은 이유로 퇴임을 앞둔 이 총리의 행보를 두고 다양한 관측이 제기된다. 여권에서는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각한 이 총리가 차기 총선에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정치권에서는 종로 출마 가능성과 함께 이 총리가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지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이 신임 총리를 발표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정치권 안팎의 전망에 대해 "저나 (이해찬) 대표나 청와대는 그런 이야기까진 한 적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그 역할이 무엇이 됐든 이 총리를 향한 안팎의 구애(?)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행정가로서의 자질과 업무능력, 품격있는 언변과 치밀한 국정수행 능력, 겸손한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소통의 리더십을 선보여왔다는 점 등이 이같은 전망에 무게를 실어준다. 현직 총리 신분임에도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현실도 그와 무관치 않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책임총리, 민생총리로서 경륜과 능력을 확실하게 입증한 이 총리의 정계 복귀는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지금처럼 정치 불안과 정국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그럴 터다. '사이다 총리' 이낙연의 정치 2막을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