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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독재타도? 헌법수호? 벼룩도 낯짝이 있다

ⓒ 오마이뉴스

 

자유한국당이 국회 보이콧을 포함한 강도 높은 대여투쟁을 예고했다. 29일 밤과 30일 새벽에 이뤄진 여야 4당의 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안 등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의결에 따른 후속조치다.


앞서 "선거제와 공수처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순간 20대 국회는 없다"(나경원 원내대표)라고 공언했던 한국당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독재가 무엇인가. 권력자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며 "한두 번 그러면 그렇게 말할 수 없지만 조직화·체계화되고 굳어지면 독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문재인 정부를 독재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황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저들은 패스트트랙 지정안을 통과시키고 의회 쿠데타에 성공, 문재인 세력들은 독재를 위한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며 "독재 세력들이 든 독재 촛불에 맞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횃불'을 높이 들자"고 장외투쟁을 시사하기도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여야 4당은 민주정당임을 포기한, 친문 관제정당이자 청와대 하명 정당을 자청했다"라며 "국회에서, 광장에서 결사항전하는, 전방위적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고 맹렬히 성토했다.

한국당 지도부의 강성 발언은 추경안 처리 등 민생 법안 처리가 시급한 정부·여당을 강하게 압박하는 동시에 '좌파독재정권' 프레임으로 여론전을 이아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색깔론과 반정치. 한국당이 장외투쟁을 시사하며 내민 카드다. 전자는 반공이데올로기와 냉전주의의 산물이며 후자는 기득권 양당정치의 후과(後果)다. 한국당은 선거제 개편이 좌파장기집권을 위한 것이며, 공수처가 좌파정권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패스트트랙이 불법적인 "의회쿠데타"이자 "폭거"라고 강변한다.

"좌파독재", "헌법수호", "민주주의 조종"을 외치는 한국당은 그러나 며칠 전 국회의원과 국회직원을 불법 감금했다. 회의장을 점거해 국회 의사진행을 방해하고 법안 상정을 원천 봉쇄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은 국회 집기와 기물을 파손하는 등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는 '누구든지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력행위 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한 국회법 165조와 166조를 정면으로 위배한 불법적 행태다. 또한 패스트트랙이 과거 새누리당 시절 도입된 정상적인 입법절차라는 점에서 이율배반이다.

"좌파독재", "의회민주주의 사망"이라는 공세 역시 어불성설이다. 한국당의 주장은 '선거제 개편 협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정당이 누구인가', '여야 5당 원내대표간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시킨 당사자가 누구인가', '비례대표제 폐지를 골자로 한 위헌적 당론을 제출한 정당이 누구인가', '절대다수 시민이 찬성하는 공수처 도입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당사자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한국당이 "독재타도"를 외치는 장면은 더욱 씁쓸하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한국당은 이승만 독재 정권과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후신(後身)이다. 서슬 퍼런 권력이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하던 그 시절은 민주주의의 암흑기였다. 인권은 유린됐고, 수많은 시민들이 정권 유지의 희생양이 됐다.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행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세탁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기억하는 이는 많다. 한국당의 "독재타도" 외침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백 번 양보한다 해도 '5·18 망언'이 여전히 활개치는 정당에서, 구시대적인 색깔론이 난무하는 정당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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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의 색깔론 공세는 황 대표 체제 출범 이후 더욱 노골화되는 모양새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좌파 운동권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며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이들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안검사 출신다운 인식으로 한국당이 왜 우경화 논란에 휩싸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당은 지난달 27일 장외집회에서도 '독재타도, 헌법수호'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김정은 수석대변인", "김일성 치하" 등의 마구잡이 색깔론을 펼쳐보이며 참석자들을 선동했다. 이념 갈등을 부추겨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전형적인 '갈라치기' 전략이다.

'색깔론'은 '반정치'와 함께 정치 발전과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으로 손꼽힌다.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대중의 정치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기 탓이다. 색깔론과 반정치는 다양성이 핵심인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충돌할 뿐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정치의 본령과도 거리가 멀다.

문제는 한국당이 원내의석 114석을 거느린 제 1야당이라는 점이다. 정치정당은 시민의 정치적 욕구와 열망을 제도권 정치에 반영시켜 대의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한국당이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반정치 공세로 분열과 갈등 조장에 앞장서고 있으니 딱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한국당의 퇴행적·반동적 행태를 지켜보는 시민의 마음은 참담하고 착찹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국당의 행태는 한결 같다. 맹목적인 반대와 트집, 발목잡기로 정부 정책을 가로막는가 하면, 습관적으로 보이콧을 남발하며 국회 의사일정을 무력화시키는 데 앞장서 왔다. 아무리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야당의 주된 역할임을 감안한다 해도 도가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거제·개혁입법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 도입은 다수 시민이 찬성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다. 그러나 한국당의 반대와 비협조로 번번히 입법이 무산돼왔다. 소선거구제와 검찰 권력을 유지하는 쪽이 차기총선과 기득권 유지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패스트트랙이 불법이라는 한국당의 주장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국회선진화법은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주도해 만든 입법 절차다. 다수당의 '날치기' 처리를 방지하는 한편 특정 정당의 반대로 입법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패스트트랙이라는 안전장치까지 마련해뒀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패스트트랙의 절차적 정당성을 왜곡시키고 있다. 자신들이 만든 법안을 부정하면서 태연하게 "헌법수호"를 외치고, "독재타도"를 부르짖는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더니 한국당의 행태가 딱 그 모양이다.

문재인 정부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책적 혼선과 인사잡음, 지지부진한 개혁 등으로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이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80%가 넘던 대통령 지지율도 반토막이 났다. 그러나 제 1야당이 지금처럼 사안마다 반대할 경우 정부·여당의 선택지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의결에 한국당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정국은 또다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후진적 정치시스템이 만들어낸 이유 있는 파행일 터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바꿔야 한다. 외치고 또 소리쳐야 한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지긋지긋한 질곡의 사슬을 끊어내려면 그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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