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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이 공수처 도입 반대하는 진짜 이유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지난달 29일 밤 진통 끝에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안 등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을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의결을 막기 위해 폭력을 동반한 집단행동에 나서 빈축을 샀다.

한국당은 국회 의안과 안팎을 봉쇄하고 법안 접수를 가로막는가 하면, 동료의원과 국회직원을 감금하고 회의장을 점거하는 등 국회 의사일정 진행을 방해하는 폭거를 자행했다. 드러눕기, 폭언, 집기와 기물 파손, 법안 갈취 등 한국당은 한동안 잊혀졌던 '동물국회'의 악몽을 소환시켰다는 평가다.

패스트트랙 저지에 실패한 한국당은 현재 '장외투쟁'에 힘을 쏟고 있다.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필두로 여야 4당을 강력 규탄하는 실력행사에 돌입한 것이다.

황 대표는 3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광주를 찾아 '문재인 STOP! 광주 시민이 심판합니다' 행사를 주도했고, 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민생경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상정을 "좌파 독재", "국회 패싱"이라 맹비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태흠 의원 등 한국당 소속 의원 4명은 이날 국회 앞에서 패스트트랙 상정에 대한 항의 표시로 삭발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한국당은 당분간 장외투쟁을 통해 패스트트랙 상정의 부당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여론전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이다.

 

ⓒ 오마이뉴스


한국당의 장외투쟁은 사실상 황 대표가 진두지휘하고 있다. 황 대표는 2일부터 전국 곳곳을 누비는 장외순회투쟁에 나서고 있다. 이날 서울·대전·대구·부산에 이르는 '경부선' 투쟁에 나선 데 이어, 3일에는 광주·전주 등 '호남선'을 타고 올라오며 규탄집회를 개최했다.

3일 광주 송정역앞 집회에서 황 대표는 정부와 여야 4당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황 대표는 특히 공수처 도입과 관련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공수처는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치려고 만드는 것"이라며 "이 정권이 독재정권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이 아무리 열심히 수사해도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게 하면 공수처가 해당 사건을 가져올 수 있다"라며 "공수처도 정권에 맞출 수밖에 없다. 이러니 공수처가 수사하면 공정하게 되겠나"라고 날을 세웠다.

황 대표는 또 "공수처는 시민들과 상관이 없다.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하기 위해 공수처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이런 정부, 이런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상황을 보면 우리들만으로는 부족하다"라고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공수처의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미 검찰이 있고, 여야 합의로 특검과 특별감찰관 제도까지 두고 있는데 또 다른 사정기관을 만드려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 대표의 주장을 면밀히 뜯어보면 역으로 공수처가 도입돼야 하는 이유가 잘 드러난다. 왜 그럴까. 

정치권을 비롯해 학계, 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공수처는 검찰에 대한 지독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이나 권한남용 사건, 고위공직자 비리 등에 대해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한다면 굳이 공수처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검찰은 봐주기 수사, 부실 수사 등으로 권력형 범죄나 고위공직자 비리 등에 면죄부를 주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경준·홍만표 전 검사장 등이 연루된 이른바 '스폰서 검사' 파문에서 보듯 '제 식구 감싸기'와 조직보호 논리 속에 검찰조직의 비위가 유야무야되는 일도 상당하다. 최근만 해도 검찰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는 과정에서 편파·부실 수사를 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특검과 특별감찰관 제도 역시 권력형 비리를 밝혀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특검은 개별 사안에 대해서만 다루기 때문에 고위공직자의 비위를 전반적으로 감시·견제하기 어렵다. 더욱이 여야 합의 과정에서 정치적 갈등이 빚어지는가 하면, 수사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대부분 용두사미로 결론이 났던 역대 특검 결과가 그 방증일 터다.

특별검찰관 제도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강제 수사 권한이 없는 특별감찰관 제도로는 고위공직자 비리를 제대로 수사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이니만큼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경우처럼 비위 조사과정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할 수도 있다.

지난 19대 대선 당시 홍준표 한국당 후보를 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안철수 국민의당·유승민 바른정당·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이 검찰개혁 방안의 일환으로 공수처 도입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고위공직자 비리 등 권력형 범죄와 비위를 제대로 감시·수사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 오마이뉴스



지난달 29일 여야 4당이 의결한 공수처 설치 법안 2건(백혜련 민주당 의원 안,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 안)은 각계의 요구대로, 검찰 권력을 분산·견제하고 고위공직자 비리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두 안은 수사 대상과 제한적 기소권, 재정신청 등의 내용에서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권 의원이 발의한 안의 경우, 공수처의 공소제기 여부를 심의하고 의결할 기소심의위원회를 따로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수처장 임명과 관련해선, '추천위가 추천한 2명 중 대통령이 지명한 1명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백 의원 안)하거나 '대통령이 지명한 1명에 대해 청문회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권 의원 안)하도록 했다. 이밖에도 권 의원 안은 공수처내 검사 임명을 대통령이 아닌 처장이 직접 하도록 했다. 여야 4당은 이 두 안을 심사해 본회의 상정 전까지 단일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주목할 것은 한국당이 특히 문제삼고 있는 공수처장 임명과 관련해 두 안 모두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여야 4당은 법안 심사 과정에서 국회의 임명 동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여지까지 남겨뒀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반대 입장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한국당의 반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7년 10월 법무부가 공수처장 선출 권한을 국회에 주는 자체 방안을 발표한 바 있고, 민주당 역시 공수처장 추천권을 야당에게 양보하는 절충안을 제시하며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한국당은 요지부동이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공수처 도입에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문제다. 무엇보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권력형 비리를 제대로 감시하고 수사할 수 없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성 검사, 떡 검사 등 극한 불신을 받고 있으면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검찰 조직을 분산·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평가다.

공수처가 도입됐더라면, 권력형 비리만 만나면 한없이 작아지는 검찰의 행태에 시민의 속이 타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력형 비리의 궁극을 보여준 '김학의 사건'이 무혐의로 끝나는 일도 없었을 터다. 검찰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불리는 '스폰서 검사 사건',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집어삼킨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공수처가 필요한 이유는 일일히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한사코 반대다. 자신들이 집권할 때는 '옥상옥'(지붕 위에 지붕. 물건이나 일을 쓸데 없이 거듭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라고 반대하더니, 정권이 바뀌자 공수처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절대불가'를 외치고 있다. 

권력형 비리 척결을 위해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한 별도의 기구를 통해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한국당은 공수처 도입을 바라는 다수 시민의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맹목적인 반대는 명분도 없을 뿐더러 '도둑이 제 발 저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만 증폭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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