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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4대강 사업부채 물값인상으로 막겠다고?

만담은 재미있고 재치있는 입담으로 청중에게 웃음을 안겨주던 고전적 코미디의 한 장르였다. 그 중 두 사람이 빠르게 질문을 주고 받으며 청중을 웃기는 형식의 만담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소팔·고춘자씨의 만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할 만큼 국민적 인기를 누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두 사람 중 한쪽이 조금 모자란 역할을, 다른 한쪽은 다그치는 똑똑한 역할을 맡는 만담은 주로 말장난을 통해 속사포처럼 주고 받는 말의 향연이 웃음의 포인트였다. 입에 모터가 달리기라도 한듯이 빠르게 오가는 두 사람의 대화는 상대방이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피나는 연습의 과정을 통해 빠르게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14일 국토교통위 국정감사에서는 마치 만담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연출되어 눈길을 끌었다. 물론 장소팔·고춘자씨처럼 빠르게 말을 주고 받지도, 그렇다고 배꼽이 빠지게 웃겨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어떻게 질문하고 어떻게 답을 할 것인지 공유하고 있었고, 한쪽이 질문을 하는 조금 똑똑한 역할을, 다른 한쪽은 조금 모자란 역할을 맡으며 말장난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만담의 형식과 아주 흡사했다. 다만 이 역할극은 웃음을 주는 대신 보는 이들을 역겹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만담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경북 칠곡·성주·고령)은 최계운 수자원공사 사장에게 "수자원공사의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물값을 7년 동결했다가 몇 년 전에 올렸는데 그럼에도 원가의 80%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물값인상 추진여부를 넌지시 물었다. 이완영 의원은 속보이게도 수자원공사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물값을 올렸음에도 물값이 여전히 저렴하다며 슬그머니 멍석을 깔았다. 그는 정부가 물값을 4.9% 인상한 것이 불과 1년 전 일인데 어찌된 일이지 몇년 전에 올렸다며 만담에서는 빠질 수 없는 말장난을 은근슬쩍 끼워 넣는것도 잊지 않았다. 


이완영 의원이 물값인상의 당위에 대해 군불을 때자 이번에는 최계운 수자원공사 사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 받았다. "현재 물값은 원가율이 83~85%정도이기 때문에 원가는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수돗세 인상은) 4대강 사업과는 별도"라고 물값 인상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도둑은 언제나 제발이 저린 법이다. 공공재 요금인 물값에 시장원리를 도입시키려는 발상 자체도 문제지만, 물값인상이 4대강 사업과는 별개라고 말하는 그의 행동은 누가 봐도 물값인상이 4대강 사업때문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여서 눈에 거슬린다. 그의 연기는 너무나 어설프고 많이 모자란다. 아이돌의 발연기도 그보다는 나을 듯 하다. 





이 덜 떨어진 만담을 보다 못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미경 의원이 "마치 수자원공사가 약자니까 물값도 올리고 빚을 어떻게 갚아줄까하는 얘기처럼 들리는데 화가 나서 못 듣고 있겠다"며 두 사람이 애써 준비한 만담의 수준을 명확하게 정리해 준다. 그렇다. 정말이지 듣고 있자니 화가 나고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4대강 사업의 실체를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이런 대국민 사기극을 또 다시 봐야 한다는 건, 국민 정서에도 해롭고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위해한 일이다. 이 정도면 사기를 넘어 희롱에 가깝다. 집권여당과 수자원공사의 국민 우롱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사업에 투자한 돈은 약 8조원 가량이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다른 분야의 예산이 감소한다는 비판과 예산규모를 증액할 경우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늘어날 것을 우려해 4대강 사업 예산 중 약 8조원을 수자원공사에 떠넘겼다. 그런데 바로 이때문에 수자원공사의 부채비율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2012년 10월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사업에 8조원을 투자하면서 부채규모는 참여정부시절인 2007년의 1.6조원에서 2012년 6월 기준으로 13.2조원으로, 부채비율은 2007년 16%에서 2012년 6월에는 118.9%까지 껑충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자원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수자원공사의 부채액은 4대강 사업이 시작된 이후 급증하기 시작했다. 국정감사에서 수자원공사는 부채가 늘어난 것이 4대강 사업, 경인 아라뱃길 조성 등의 국책사업과 댐·수도 등의 신규시설 투자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일 뿐 실질적인 이유는 4대강 사업에 투자한 8조원 때문이었다. 수자원공사는 8조원의 투자비용 마련을 위해 2009년부터 2012년 6월까지 총 6조7037억원의 공사채권을 발행했고, 2013년부터는 발행한 공사채권이 모두 고스란히 수자원공사의 금융부채로 남게 된 것이다. 이때문에 수자원공사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12조원에 달하는 원리금을 상환해야만 한다.


새누리당의 이완영 의원은 준비한 만담이 생각만큼 재미를 못 보자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 만담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는 이 자리에서 물값인상의 당위를 위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았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결국 수자원공사의 재무건전성을 위해서는 물값인상이 불가피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그는 이 불가피성을 피력하기 위해 수자원공사가 무너지게 되면 어차피 더 많은 국민세금이 투입되야 하므로 차라리 물값을 올리는 편이 더 낫다는 얼토당토 않은 논리를 폈다. 그의 주장은 이명박의 '이왕 이렇게 된거'라는 상황인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또 국민들이 "물을 펑펑 쓴다", "물 쓰듯이 쓴다"는 말이 있는 만큼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물값은 인상되야 한다며, 수자원공사는 물관리를 잘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무분별하게 물낭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물값인상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수자원공사의 4대강 사업 투자 비판에 대해서는 "5~10년은 돼야 4대강 사업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정서와는 동떨어진 황당한 인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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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조원(정부발표)의 국민혈세가 투입된 대형국책사업이 감사원의 감사에 의해 총제적 부실로 판명이 났고, 시공업체들간의 불법적인 담합이 자행되었으며 이 과정에 정부와의 검은 커넥션 의혹이 붉어졌다. 어디 이뿐인가. 참여정부 시절 건실한 공기업이었던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에 투자한 막대한 자금때문에 재무건전성 악화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으로 전락했다. 물값인상을 통해 수자원공사의 재무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이완영 의원의 주장은 좋게 봐주자면 고통분담이고, 나쁘게 봐주자면 아무 대책이 없는 자들의 '배라식' 버티기에 불과하다. 괘씸한 것은 그 어디에도 4대강 사업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없고 오직 책임을 전가하고 회피하려는 비논리적 객기와 후안무치함만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은 감사원에 의해 그 총체적 부실이 공식적으로 확증되기 훨씬 전부터 야당과 시민단체, 학계전문가, 일반시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저명한 하천 전문가들까지도 세금낭비와 예산불균형, 환경파괴 및 수질 오염, 4대강 사업체의 담합 및 특혜 비리, 수중보의 안전문제, 농경지 침수 등의 문제점들을 거론하며 반대했던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종북세력'과 '사회불안 조장세력'으로 매도해 가며 부득불 공사를 강행하고야 말았다. 단 한번의 공청회도, 공론을 모으는 과정도 없이 수 십조원의 국민혈세를 투입한 대규모 국책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은 그러나 말 그대로 '삽질'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당시 입에 침이 마르도록 4대강 사업을 예찬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선전·선동에 사활을 걸었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잘못된 통계와 근거를 제시하며 교언영색하기에 바빴던 정부 관계자 및 어용 전문가들, 4대강 사업 찬성 여론조작에 돌격대 역할을 담당했던 관변단체들 중 누구도 사과를 하거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들이 없다. 기가 막힐 일이다. 책임윤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보기 힘든 대한민국의 저급 정치가 빚어낸 비극이다. 그런데 기가 막힐 일이 또 있다. 4대강 사업에 투자했던 수자원공사의 부채마저 국민들이 떠안아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담뱃세, 주민세, 자동차세 등 간접세와 지방세를 증세하겠다고 밝혔고, 어제(14일)는 도로공사가 고속도로 통행료를 4.9% 인상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여기에 더해 수도요금까지 인상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경제는 더욱 힘들어질 수 밖에는 없다. 특히나 수도요금은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수도요금이 인상되면 서민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수많은 시민들이 4대강 사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정부여당으로부터 '종북세력'으로 매도당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은 주권을 가진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다.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를 무참히 짓밟았던 정부여당이 이제 와서 수자원공사의 재무건전성을 이유로 사업부채를 함께 짊어지자고 말한다. 이자들의 무도함과 뻔뻔함이란 그 크기와 깊이를 도무지 측량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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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부여당이 해야 할 일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지 서민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투척하는 세금폭탄이 아니다. 4대강 비리를 척결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이지 서민들의 호주머니에 눈독을 들이는 일 따위가 아니다. 정부여당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혹세무민과 서민수탈을 일삼던 중세 봉건시대에서나 볼 수 있던 장면들이다. 이같은 현실은 우리사회가 얼마나 낡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와도 같다. 낡은 것들로 둘러싸인 사회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단호히 낡은 것들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는 점점 더 구시대적인 것들의 지배를 받는 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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