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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무성 대표의 굴욕이 의미하는 것은

지난 16일 정계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발언으로 발칵 뒤집혔다. 당시 중국을 방문 중이었던 김무성 대표는 16일 오전 중국 상하이의 숙소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의 봇물이 터지게 된다.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다. 다음 대선이 가까와지면 개헌 논의가 가능하다"며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이는 당청관계의 상식을 파괴하는 보기드문 장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집권여당의 대표 입에서 나온 발언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충격 그 자체였다. 





멀리 상하이에서 날아든, 마른 하늘의 날벼락같은 소리에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무성 대표의 이날 발언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6일 "(개헌논의가) 경제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어서 그 충격파는 더할 수 밖에 없었다. 새누리당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 혼란스러웠고, 특히 친박 의원들은 비분강개하며 김무성 대표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했다. 대표적인 친박의원인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의원은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시점이 아니다"며 단단히 못을 박았고, 홍문종 의원은 약방의 감초인 민생과 대통령 임기 등을 적절히 섞어가며 주군에 대한 변함없는 충정을 표현했다. 


예상밖으로 당 안팎으로 볼멘소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자 김무성 대표는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그는 발언 하루 만인 17일 "(내 말은)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많이 시작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투였다. 대통령께서 이태리에 계시는데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죄송하다. 제 불찰"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였다. 하루동안 정가를 들쑤셔 놓았던 집권여당 대표의 상하이발 항명 사태는 이렇게 하루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싱겁고 또 싱겁다. 카리스마에 있어서 둘째가면 서러울 김무성 대표의 정치적 소신이 굴욕적인 1일 천하로 일단락됐다. 그런데 이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낯이 익다. 이 풍채 좋고 위풍 당당한 정치인이 대통령에게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진땀을 흘리는 장면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과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다. 그렇다. 김무성 대표가 대통령에게 쩔쩔매는 모습이야말로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새누리당의 비민주적 정당 체제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과도 같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권의주의를 청산하고 민주적 정당시스템을 구축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저들에게도 자의반 타의반 변화의 조짐이 살짝 엿보이기도 했다. 





21세기의 정치권의 큰 화두 중의 하나는 정당 민주화에 놓여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당내 리더가 없었던 민주당은 노무현을 중심으로 권위주의 청산과 당내 민주화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한나라당도 이같은 정치적 흐름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이회창 총재 중심의 보스정치는 2002년을 정점으로 점점 힘을 잃어 갔다. 소장파 의원들이 하나 둘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으며, 박근혜 대통령 역시 2002년 당시 이회창 총재의 권력독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당권•대권 분리를 골자로한 당내 민주화를 강력하게 요구하며 1인 보스정치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러나 한번 몸에 밴 습성을 좀처럼 바뀌지 않는 법이다. 저들의 변화가 각성이 아닌 집권과 당권을 위한 변신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내 드러났다. 이회창 총재의 퇴장 이후 한나라당은 친이(이명박)와 친박(박근혜)을 옮겨가며 줄서기에 여념없는 정치 철새들로 넘쳐났고, 당내 민주화라고는 찾아볼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권위주의적 수구정당으로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 한때 당내 민주화를 요구하며 이회창 총재의 독단적 리더십에 반기를 들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오늘날 독단과 독선이라는 달갑잖은 수식어가 늘 따라 다닌다. 그녀가 십여년 전 1인 보스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며 탈당까지 불사했던 그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민주주의를 만개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에게 중세 왕조시대에나 어울리는 '제왕적'이라는 수식어가 껌딱지처럼 붙어다닌다. 저 당에는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며 하루만에 무릎을 꿇는 정치인을 주군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들도 여전하다. 이런 대통령과 정당이 집권을 하고 있는 나라에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의회민주주의가 번성하기란 요원한 일일 것이다. 김무성 대표의 굴욕이 의미하는 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의 빈약함이자 천박함이다. 단 하루 만에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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