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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240원 인상이 폭탄? 나경원이 기억해야 할 유시민의 일침

ⓒ 오마이뉴스

 

최저임금위원회가 12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240원 오른 시간당 8590원으로 의결했다. 올해보다 2.87% 인상한 것으로 월급(209시간 기준)으로 계산하면 179만5310원이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은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수치다. 이는 다시 말해 최저임금위원회가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을 외환·금융위기 당시와 비슷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여러 경로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최악이라는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등을 중심으로 무차별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경제위기론'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 통계청과 한국은행 자료, OECE 보고서,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의 평가자료 등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실업률, 재정부채비율, 경상수지비율 등 많은 경제지표에서 OECD 국가 평균보다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글로벌 경제 환경의 악화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경기가 안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국당과 보수언론의 주장처럼 우리나라 경제가 파탄 지경에 놓여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만약 그 논리대로라면 우리나라보다 각종 경제지표가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유로존과 일본, 호주, 캐나다 등 OECD 선진국들의 경제는 진작에  몰락했어야 한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그럼에도 한국당과 보수언론은 다른 나라는 멀쩡한데 우리나라 경제만 벼랑 끝에 서있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제정책은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국당은 노골적인 반대와 몽니로 정부 정책을 가로막고 있다. 경제위기가 심각하다면서 민생 추경안까지 반대하고 있는 것이 그들이다. 제1야당이 이렇게 '건건이' 방해하고 있는 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은 결국 국회의 입법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 오마이뉴스

내년도 최저임금이 240원 오르자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아무리 작은 폭탄도 결국 폭탄"이라며 재심의를 요구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다.

나 원내대표는 "아무리 낮은 인상률일지라도 인상 그 자체가 우리 경제엔 엄청난 독이다. 시장을 또 다시 얼어붙게 만드는 충격파"라며 "최저임금 폭탄을 막기 위해선 동결이 최소한의 조치"라고 최저임금 인상에 불만을 표시했다. 

정치인 '나경원'의 빈약한 노동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왜 그럴까. 최저임금법 제1조에 명시된 것처럼, 최저임금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최저임금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노동계에 따르면 임금 노동자 5명 중 1명이 최저임금을 받거나 그에 못미치는 임금으로 한 달을 살아간다. 한국은행이 지난 2016년 금융통화위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수가 313만 명(2017년 기준)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나 원내대표의 인식은 이같이 저임금 노동자가 처해있는 현실과는 현저히 동떨어져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우리 경제에 엄청난 독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의 가슴에 '폭탄'을 투하한다.

기업 걱정에 여념이 없는 나경원 대표지만 사실 이는 쓸데 없는 기우다. 기업들은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의 '대기업 프랜들리 정책'과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 보호막 아래 지난 10여 년동안 튼실히 살을 찌워왔다.

지난 2018년 재벌사내보유금환수운동본부와 사회변혁노동자당이 그 해 3월 말 공시된 재무재표를 토대로 사내보유금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30대 재벌의 사내보유금 액수가 무려 88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다. 올해 국가예산이 469조원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기업들이 쌓아논 막대한 사내보유금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당장 기업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한국당과 보수언론의 주장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게다가 축적된 사내보유금이 신규 투자나 고용, 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비판적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한국당과 보수언론은 최저임금 인상이 마치 대한민국 경제를 망치는 주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호도하고 있다. 황당한 것은 한국당 역시 지난 대선 당시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대선공약으로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당시 홍준표 한국당 대선후보는 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연평균 시급인상액 차이는 약 350원 정도다. 2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지만 두 후보간 최저임금 인상액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당은 정권창출에 실패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바꾼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을 문제 삼으며 연일 날선 공세를 펼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한국당의 지난 대선공약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런 자가당착이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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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원내대표가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자 지난 1월 2일 JTBC 신년토론회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했던 발언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유시민 이사장은 '2019년 한국 어디로 가나'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 "최저임금으로 영향을 받는 노동자가 500만명이다. 최근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 30년 함께 일해온 직원을 눈물을 머금고 해고했다는 기사를 보고 눈물이 났다"라며 "아니, 30년을 한 직장에서 데리고 일을 시켰는데 어떻게 30년 동안 최저임금을 줄 수가 있나"라고 반문해 묵직한 여운을 남긴 바 있다.

최저임금 240원 인상이 "폭탄"이자 "독"이라는 나 원내대표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라는 유 이사장의 인식은 물과 기름처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들이 지향하는, 혹은 지향하고자 하는 사회의 공기와 색깔이 이 장면 속에 오롯이 녹아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거운 화두다. 소득불균형을 개선해 양극화의 부작용을 덜어줄 것이라는 기대와 인건비 부담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것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최소치이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임금 노동자의 5분의 1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고, 300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그보다 못한 임금을 받고 있는 씁쓸한 현실도 마찬가지다.

사는 것이 버거운 이들과 사학재벌의 딸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을 나 원내대표에게 '240원'의 의미가 같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는 유 이사장의 일침이 남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최저임금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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