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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홍준표 말대로라면 진정한 기부는 한국당 해체

ⓒ 오마이뉴스


자유한국당이 당무감사 후폭풍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당내 반발을 의식해 그간 신중한 행보를 보여온 홍준표 대표의 돌출 행동이 화제가 되고 있다. 19일 오전 KBS 불우이웃돕기 모금 생방송에서 방송 취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홍 대표는 이날 KBS1 '나눔은 행복입니다'에 출연해 불우이웃돕기 모금에 동참하며 소외된 이웃들이 따뜻한 연말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정치인으로서 소외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일 터. 여기까지는 이상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문제의 장면은 바로 그 다음에 불거졌다. 홍 대표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KBS도 이제 파업을 그만하고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KBS 여러분들이 파업을 그만하는 것이 오늘 국민에 대한 큰 기부가 될 것"이라며 뜬금없이 KBS의 파업 철회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돌발 발언에 당황한 사회자가 황급히 화제를 돌렸지만 홍 대표는 작심하고 나온 듯 멈춤이 없었다.  대한민국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정책을 준비하고 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금수저 정당에서 흙수저 정당으로,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답하면서도, KBS를 향해 "파업을 그만하고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라"고 재차 주장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홍 대표가 '파업 중단'을 입에 담은 횟수만 총 네 차례에 달한다. 이쯤되면 이날 특별생방송에 출연한 목적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홍 대표의 지적처럼,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19일 현재 107일째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12년의 95일 파업 기록을 넘어선 KBS 사상 최장기 파업이다. 새노조가 총파업에 나선 이유는 주지하다시피 고대영 사장의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에 있다. 함께 파업에 나섰던 MBC가 김장겸 사장을 퇴진시키며 공영방송 정상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사이, KBS는 아직까지도 기약없는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태다.

지난 8일 저녁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센터 앞에서 새노조의 파업집회인 '돌리고(돌아와요 리셋 고봉순) 불금파티'가 열렸다. '돌리고'는 '돌마고(돌아와요 마봉춘 고봉순)'에서 '마봉춘'이 빠지면서 새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이날 집회에는 낯익은 얼굴이 자리를 함께 해 주목을 받았다.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이 새노조의 파업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KBS라는 훌륭한 라이벌이 있을 때 MBC의 존재 이유도 커진다.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 보장을 위해 방송통신위원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MBC는 현재 최승호 신임 사장이 취임한 직후 곧바로 보도국 인사가 단행되는가 하면, 해직자가 복귀하는 등 방송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이런 MBC의 모습을 바라보는 새노조의 심경은 과연 어떨까.


ⓒ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의 지난 5일 기사 "KBS 아나운서가 'MBC 부럽다'를 외친 이유"에서 어쩌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도에 따르면, 새노조는 이날 오후 1시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KBS 비리 이사 즉각 해임을 촉구하는 필리버스터 집회를 시작했다. 영하 7~8도의 매서운 한파 속에 진행된 이날 필리버스터에서 이승연 아나운서는 MBC를 바라보는 심경을 솔직하게 토로해 눈길을 끌었다. 기사에 소개된 이승연 아나운서의 발언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파업 시작할 때는 '덥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이제는 털모자를 쓰지 않으면, 내복을 입지 않으면 파업에 나올 수 없는 계절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KBS가 파업을 하고 있니?', 'MBC만 하는 것 아니었어?', 'MBC 파업 끝나서 KBS도 끝난 줄 알았어'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KBS본부는 꿋꿋이 100일 가까이 파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죽은 KBS를 살리기 위해, KBS를 국민의 품으로 돌리기 위해서입니다......MBC가 부럽습니다."

MBC를 바라보는 심경이 이 아나운서의 고백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그런 마음이 왜 들지 않겠나. 비슷한 시기에 파업을 시작한 MBC는 공영방송을 처참히 망가트린 경영진을 교체시키는 데 성공하고 방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 반면 KBS는 한겨울이 다 되도록 전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무너트린 경영진과 이사진은 새노조의 사퇴 요구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MBC가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지난달 감사원의 KBS 이사진에 대한 감사 결과 구여권 성향의 이사들이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인호 이사장 역시 2800만원 상당의 돈을 부당하게 유용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KBS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실시한 '지상파 재허가 심사'에서 재허가 탈락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기도 했다. 보도국장 재직 시절부터 KBS의 보도기능을 악화시킨 주역이라 평가받는 고대영 사장과 비리 이사들이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한 채 공공성과 공익성에 반하는 편파 불공정 방송을 일삼아왔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 테다.

"공영방송 MBC는 국정원 문건이 제시한 시나리오에 따라 차근차근 권력에 장악돼 갔습니다. 말 그대로 청와대 방송이 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세월호 참사입니다. 유례없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MBC는 슬픔에 빠진 국민과 유가족을 위로하기는커녕 권력자의 안위를 살폈습니다. 사회적 공기였던 공영방송이 사회적 흉기가 돼 버린 것입니다. MBC 몰락의 가장 큰 책임은 구성원들에게 있습니다. 거듭 사과드립니다."

지난 7년 동안의 'MBC 몰락사'가 12일 방송된 <PD수첩>에 오롯이 녹아있다. 이날 방송을 진행한 손정은 아나운서는 MBC의 지난 과오에 깊이 고개를 숙였고, 반드시 달라지겠다고 다짐했다. 통렬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언론의 공적 책임을 다하는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MBC만의 문제였을까. MBC의 자기고백이 아니더라도, MBC와 KBS가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하며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크게 훼손해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양대 방송사의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적폐들은 '사회적 공기'가 되어야 할 언론이 '사회적 흉기'로 돌변한 탓이 크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했다면 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 등으로 천문학적인 국민혈세가 낭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정원·군사이버사령부·기무사 등 국가기관의 불법 정치개입이 지금와서 밝혀지지도 않았을 테고, 세월호 참사 당시 골든타임이 그리 허무하게 날아가지도 않았을 터다. 어디 그뿐인가. 미증유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나라가 이 지경이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 엄동설한에 국민들이 만사를 제쳐두고 촛불을 들어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불우이웃돕기 방송에 출연해 KBS 파업 중단을 요구한 홍 대표의 처신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가 파업 사태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방송주권을 국민에게 되돌려주기 위한 새노조의 투쟁을 철저하게 기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공영방송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아 여론을 호도해 오는데 앞장서온 한국당의 대표가 저리 말하는 건,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홍 대표는 국민을 위한 진정한 '기부'가 무엇인지 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각계각층으로부터 국정농단 사태의 공동정범으로, 적폐의 원흉으로 지목받으며 '당 해체' 요구까지 받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한국당'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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