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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통합 선언한 안철수의 이율배반

오마이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일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선언했다. 이날 열릴 예정이던 의원총회에 앞서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전당원투표를 제안하면서다. 안 대표의 전격적인 통합 선언으로 이날 국민의당은 크게 흔들렸다. 의총은 안 대표를 비난하는 성토의 장이 됐는가 하면, 의총 결과에 대한 유권해석을 두고 통합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안 대표가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위한 전당원투표를 제안한 것은 오전 11시 15분. 오후 2시로 예정된 의총을 불과 두 시간여 앞둔 시점이었다. 두 달 가까이 지속돼 온 통합 논란을 서둘러 매듭짓겠다는 안 대표의 의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안 대표의 통합 의지는 기자회견문 곳곳에서 드러난다.

요컨대, 당의 생존과 변화를 위해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통해 중도개혁 정당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전국을 다니며 의견을 취합한 결과, 현재의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하고 당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정치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통합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동안 안 대표의 통합 행보는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중진 의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온 터였다. 통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들의 기세를 꺾어야 하는 상황. 안 대표 역시 이를 의식한 듯 반대파를 향해 날을 세우기도 했다. 통합에 반대하는 호남 중진 의원들을 겨냥해, "근거를 알 수 없는 호남여론을 앞세워 지지자들의 절박한 뜻을 왜곡하고 있다"면서 "계속해서 당이 미래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서서 여전히 자신의 정치 이득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이는 반대파를 향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로, 사실상 분당까지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설사 당이 깨진다 하더라도 통합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출한 셈이다. 이는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안 대표가 절박하다는 의미도 된다. 좀처럼 반등하지 않는 당 지지율, 지방선거에 대한 불안감, 차기 대권을 염두해 둔 외연확장의 필요성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 때문에 통합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당을 위해서나, 안 대표 자신을 위해서나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통합 선언의 실질적인 배경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통합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이는 다시 말해 통합을 통해 중도개혁 정당으로 일신하려는 안 대표의 구상이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당의 구심이라 할 수 있는 호남 의원들의 반발이 극명하게 표출되고 있다.

의원들의 격노는 의총에서 확인된다. 이날 의총에서는 "기자회견장에는 나타나면서 의총에는 왜 안 나오는 거요. 그 정도 간땡이 갖고 당 대표를 하겠어?"(정동영 의원) "끌고라도 와야지. 이런 비겁한 경우가 어디에 있어!"(유성엽 의원) "의총장에 설명 못 하는 대표라면 기본적으로 대표 자격이 없다. 대표 사임하든지 공개적으로 나와 떳떳하게 설명하라"(김경진 의원) "안 대표는 당원과 국회의원, 국민들에게 '통합의 통자도 꺼내지 말라', '없다' 이렇게 사기를 쳤다. 오늘이 안 대표의 구상유취한 정치행태를 확인시켜 준 날이다"(박지원 의원) 등 격앙된 반응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 오마이뉴스


호남 의원들의 좌장 격인 박지원 의원은 이날 밤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의총에 참석하지 않은 안 대표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심지어 박 의원은 이 자리에서 "만약 보수야합 합당을 하려면 안철수 당신이 나가서 하라"며 불편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안 대표를 향한 호남 의원들의 분노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박 의원은 현재 국민의당 내에서 통합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의원이 20여명, 통합에는 반대하지만 분열 역시 원치 않는 의원이 10여명 안팎이라고 전했다. 이는 만에 하나 당이 깨질 경우 통합의 의미가 상쇄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안 대표가 통합의 근거로 내세운 여론조사의 '허수'도 간과할 수 없다. 안 대표는 지난 2달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통합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가장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통합으로 단번에 지지율 2위의 정당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장미빛 전망은 (여론조사의 신뢰도에 대한 논란은 차지하고라도) 당대당 통합을 전제로 했을 때라야 가능한 수치다. 국민의당이 분당했을 경우를 배제했기 때문에 객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 대선과 당 대표 출마 당시 공언했던 내용과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고 있는 것에서 드러나듯,  안 대표의 구상이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했을 경우 통합정당의 대표에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적합하다는 여론이 높다는 사실이다. 월간중앙이 12월 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만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한다면 누가 통합정당의 대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유 대표가 34.4%를 기록한 반면 안 대표가 17.4%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20명 대상. 무선 RDD(임의전화걸기)자동응답방식. 응답률2.6%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국민의당 싱크탱크인 국민정책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18~19일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현재 야권을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인가를 묻은 질문에 유 대표가 26.2%로 1위를 차지했고, 안 대표는 14.5%를 기록하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18.2%)에도 뒤지는 3위를 기록했다. 특히 안 대표(21.0%)는 최대 지지기반인 호남에서조차 유 대표(24.5%)에 밀리며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50명 대상. 설문지를 이용한 1대 1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포인트. 응답률은 11.0%. 이상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바른정당과의 통합 선언에도 불구하고 실제 통합이 이뤄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들이 한둘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통합에 성공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국민의당이 현재의 상태대로 통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과 노선, 이념이 다른 두 정치집단의 인위적인 통합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다. 선거를 앞두고 이뤄지는 정치공학적 통합에 여론이 비판적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화학적 결합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부터가 의문이다.

게다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겠다며 당 대표에 출마했던 안 대표가 불과 몇 개월만에 당의 간판을 바꿔 달겠다 선언했다. 통합의 명분과 대의, 가치와 비전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같은 이율배반적 태도가 공감을 받기는 힘들다. 안 대표를 향해 당안팎의 우려와 비판이 비등해 지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절박함이 장미빛 미래를 담보해 주지는 않는다. 동거동락해 온 의원들과 당원들조차 설득하지 못하면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크나큰 오산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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