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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홍준표의 비정규직 대책에 '뜨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

ⓒ 오마이뉴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의 파격적인 노동 공약이 화제다. 19대 대통령 선거 공식 첫 유세가 시작된 17일 대구 동성로 유세 현장에서 홍 후보는 역대 어느 정권도 이뤄내지 못했던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한 혁신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홍 후보는 이날 "해고됐다가 다시 들어오고 이렇게 유연성을 확보해줘야 비정규직이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말인즉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해서 해고의 유연성이 확보되면 비정규직 문제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뜻이다. 발상의 전환, 전복이라고 해야 할까. 홍 후보의 역발상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그의 주장은 밑돌 빼서 윗돌 괴자는 소리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홍 후보의 비정규직 대책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9년,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며 MB가 들고나왔던 '고용의 유연화' 정책의 재판이다.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홍 후보의 노동정책이 누구의 입장에서 설계돼 있는지 명약관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홍 후보의 비정규직 해법은 이 시점에 과연 온당한 것일까. 홍 후보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추진돼온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이상, 이 정책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려보는 것이 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저성장을 극복하고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적극 추진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는 일단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면 기업의 투자 확대가 활발히 이뤄져 고용이 증가하고 내수가 확대돼, 경제 역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는 재계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반면 노동계의 입장은 달랐다. 노동계는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유연화 대책이 결국 일자리의 파편화를 불러일으키고 쉬운 해고가 가능한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시키게 돼,  오히려 내수 및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고용 불안정성이 증가할 수밖에 없어 삶의 질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경제 성장과 노동시장 문제 해결을 위해 '고용의 유연화' 정책을 내세웠던 보수우파 정부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정부 대책이 고용과 생활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궁극적으로 노동자 서민의 삶을 하향 평준화시키게 될 것이라던 노동계의 경고가 맞는 것일까.


ⓒ 오마이뉴스


모름지기 제 3자의 시선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대단히 유효하다. 이해당사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노동환경과 직결되는 OECD의 각종 지표들은 이 첨예한 논쟁의 '시시비비'를 판별하는데 있어 아주 유의미하다 할  수 있다. 

OECD는 매년 각국의 사회·경제 지표들을 비교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저임금 노동자 비율, 임금 격차, 산업재해 사망률, GDP 대비 복지비 비율, 직장인 유급휴가 비율, 가계부채 증가율 등에서 수년 째 '당당히'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저임금, 실업률 증가율, 사회복지 지출 비율, 사회자본 지수, 정규직 보호지수 등에 있어서도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수치들은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하고 척박한지를 보여주는 비근한 예들이다.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경쟁력이 강화되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정부는 기업경쟁력이 살아나면 그를 통해 경제 성장과 고용확대를 진작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효과' 이론을 내세워 노동계의 희생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낙수효과 이론은 제 3세계나 신흥개발도상국에서나 통용되는 경제전략이다. 미국·영국·독일·일본 등지의 경제 정책은 소득불균형에 따른 부의 편중이 외려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입장에 맞춰 재편되고 있는 실정이다.  IMF가 지난 2015년 6월 보고서에서 '소득 상위 20%의 점유율이 높아지면 낙수효과가 줄어들면서 국내총생산(GDP)은 중기적으로 하락했다. 소득 하위 20%의 소득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국내총생산은 더욱 커졌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전세계적으로 '낙수효과' 이론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재계의 입장을 반영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고용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이것이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 성장 저하와 삶의 질을 하락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세계 각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한 경제적 불평등 해소에 노력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거꾸로다. 세계 최고의 비정규직 규모와 최악의 노동환경을 지녔다는 오명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극단적 성장주의자들이 경제정책을 '쥐락펴략'하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이 전통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 달 144만원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그의 나이는 고작 19살이었다. 정규직이 되겠다는 희망 하나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묵묵히 감내하던 이 청년은 그러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비극적인 삶을 마감해야 했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법을 만들고, 탈법과 편법을 엄격하게 감시하고, 제도를 정비했더라면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자식으로, 친구로, 동료로 살아가고 있었을 터다. 비극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며 법률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마저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이 수두룩하다는 뜻이다. 


사회 경제를 바라보는 집권 세력의 철학과 인식은 그래서 중요하다. 집권 세력의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사회경제 정책들이 극단적으로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해고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홍 후보의 인식 속에는 노동의 본질을 철저하게 외면해왔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빈곤한 노동감수성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홍 후보의 비정규직 대책에 '뜨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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