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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을 독재자라고 '디스'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여려 차례에 걸쳐 개헌을 역설해 왔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심지어 새누리당은 정부가 직접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할 만큼 개헌의 당위를 적극적으로 피력해 왔습니다 . 

현 한국당 원내대표인 김성태 의원은 2016년 9월 2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헌법 128조 1항은 대통령의 헌법개정 발의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역대 사례를 보더라도 정권의 의지가 없으면 개헌은 요원하다. 여야 정치권에만 의지해서도 안 된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2017년 4월 12일 보궐선거와 연동해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정부 주도 개헌까지 거론하던 한국당의 입장은 갑자기 돌변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개헌의 '개'자도 꺼내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헌법 조항까지 거론해가며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당시와는 천양지차입니다. 언제는 대통령이 앞장서 개헌해야 한다고 난리더니 이제는 대통령은 빠지라고 아우성입니다.



ⓒ 오마이뉴스



한국당의 공세는 문 대통령이 26일 정부 개헌안을 공식 발의하자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을 공격할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독재', '관제 개헌' 등의 수사를 총동원해 맹공에 나선 것입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를 "국회와 상의하지 않은 대통령의 일방적 개헌안 발의"라며 "해방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4번째 독재 대통령이 탄생하는 날이 오늘이다"라고 거세게 성토했습니다.

이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고치자는 국민적 여망을 깡그리 뭉개고 사회주의로의 체제 변경을 시도하는 이번 헌법개정쇼는 앞으로 관제 언론을 통해 좌파 시민단체들과 합세해 대한민국을 혼돈으로 몰고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대통령 주도의 개헌을 강력하게 호소했던 김성태 원내대표도 "3일에 걸쳐 홈쇼핑 광고하듯 개헌 TV쇼를 벌인 청와대가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오늘 국회로 '문재인 관제개헌안'을 던지겠다고 한다"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또한 "이렇게 오만하고 방자한 정권이 헌정 역사상 어디 있었나. 한국당은 국회 논의를 통해서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께 권력을 돌려드리는 개헌을 하겠다. 분권 대통령·책임총리제, 한국당이 야4당과 협력해 반드시 국민개헌안을 합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요컨대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가 국회를 완전히 무시한 전횡이자 독재이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유지하기 위한 '관제 개헌'이라는 주장입니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가 한국당의 주장처럼 정말 관제 개헌인 것일까요.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서는 먼저 관제 개헌의 실제 사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부 출범 이후 관제 개헌은 모두 독재정권 치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발췌개헌'(1952년 7월 4일),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철폐하도록 한 '사사오입 개헌'(1954년 11월 27일),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을 갖도록 하는 '유신헌법'(1972년 10월 17일), 7년단임제와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5공화국 헌법'(1980년 10월 27일) 등이 그렇습니다.

이들 모두는 국민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 개헌으로, 집권세력에 의해 헌법과 민주주의 질서를 송두리째 파괴당한 정치사의 오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를 저들과 '동급'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정말 독재권력의 정치적 탐욕의 결과물인 '관제 개헌'과 동치 관계인 것일까요.



ⓒ 오마이뉴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사실관계를 왜곡한 정치공세에 가깝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개헌안 발의가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는 한국당의 주장과는 달리 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2018년 '지방선거-개헌 동시투표'를 일관되게 주장해 왔습니다.

정부 출범 이후에도 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회담,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 새해 신년 기자회견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국회의 협조를 간곡하게 당부해 온 터였습니다.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가동시킨 2017년 초부터 지금까지 무의미한 정치공방으로 허송세월 하다시피 해온 국회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온 셈입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개헌 갈등은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이를 방기해온 국회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게다가 김성태 원내대표의 말대로, 개헌안 발의는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이기도 합니다. 수차례에 걸쳐 개헌 합의를 요청했음에도 손을 놓고 있던 국회를 대신해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문 대통령은 국회 개헌안이 합의된다면 대통령 개헌안을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청와대 역시 개헌안 발의를 시사하면서 "국회가 개헌에 합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드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대통령 개헌안 발의에 담긴 숨은 뜻을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국회를 압박해서라도 개헌을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일 뿐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하겠다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국회의 개헌안 합의를 계속해서 촉구하는 동안 제1야당인 한국당은 논의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지난 대선 당시 약속했던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공약을 파기했을 뿐 아니라 개헌 시기 역시 말을 바꾸며 불신을 자초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당은 심지어 아직까지 당차원의 개헌안조차 내놓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김어준 : 정부가 생각하는 개헌안은 이런 걸 담고 있어야 된다는 걸 내용을 발표하자 야당에서는 독재. 독재 참 좋아해요. 이 단어. 독재라고 얘기하는데....

노회찬 : 많이 해봤으니까 잘 알죠. 익숙하고. 이런 표현부터 먼저 떠올리는 거죠.

김어준 : (대통령 개헌안 발의는) 이건 그냥 헌법에 보장된 권리고 자신들도 사실은 정부 발의하자고 계속 했었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랬고.

노회찬 : 이 발언을 하기 위해서 굳이 평소와 다른 복장으로 나타났어요. 가죽점퍼 입고 나타났어요, 실제로. 이 발언을 하기 위해서.

김어준 : 전투 의지를 보여주는?

노회찬 : 그렇죠. 가죽점퍼 하면 주로 누가 입었습니까? 파시스트, 무솔리니, 나치. 이걸 입고 나타나서 정말 독재적 발상을...."개헌 표결에 참여하면 제명하겠다." 본인은 국회의원이 아니니까 참여할 수 없다는 건 아는데 그럼 본인만 안 해야지 왜 이런 헌법 파괴적 발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지난 3월 21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노회찬 원내대표와 김어준 공장장이 나눈 대화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이날 두 사람은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가 독재라고 주장하는 자유한국당의 이율배반적 행태를 강하게 꼬집었습니다. 개헌안 발의는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일 뿐더러,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 주도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한국당이 이제 와서 반대하는 건 명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대통령 개헌안을 둘러싼 정치공세의 본질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가 과거 독재정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문제입니다. 개헌을 논의할 시간과 여건이 국회에 이미 충분히 주어진 데다가, 문 대통령이 개헌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떠한 물리력도 동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대통령 개헌안과는 별개로 국회는 지금이라도 개헌 논의를 주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의지가 있다면 말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당은 이승만(자유당)·박정희(공화당)·전두환(민정당) 독재정권의 적통을 잇고 있는 정당입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독재정권이었다면 진작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국회가 해산되고, 개헌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 상당수가 체포·구금되었을 것이라는 걸 그들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가 "야당에 대한 선전포고", "독재", "관제개헌"이라며 정치공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의'(豕眼見惟豕,佛眼見惟佛矣)라더니, 작금의 한국당이 딱 그 짝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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