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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배현진의 '자기합리화'..친일부역자 생존 논리 빼다 박았다

ⓒ 오마이뉴스


지난 14일 자유한국당은 '좌파정권 방송장악 피해자 지원특위'를 구성했다. 특위는 이인호 전 KBS 이사장, 강규형 전 KBS 이사,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임하거나 해임된 방송 관계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위위원장은 서울신문 기자 출신으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박대출 의원, 간사는 KBS 기자와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거친 민경욱 의원이 맡았다. 이밖에 김진태·강효상·전희경·임이자 의원이 특위 위원에 포함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당에 입당하자마자 서울 송파을 당협위원장 자리를 꿰찬 배현진 전 MBC 앵커가 특위 위원에 선임됐다는 점이다. 당시 한국당은 최승호 MBC 사장 부임 이후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서 물러난 배 전 앵커가 방송장악에 희생당한 언론인의 대표적인 예라며 특위 합류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27일 특위 구성 이후 첫번째 열린 회의에서 배 전 앵커는 당의 기대(?)에 부응하듯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배 전 앵커는 "지난 몇년동안 인격살인에 가까운 회사 안팎의 고통 속에서 지냈다"면서 자신을 문재인 정권의 '블랙리스트'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자행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자신과 동치한 것이다.

배 전 앵커는 "지난 1월 최승호 MBC 사장은 '다시는 배현진은 뉴스에 출연할 수 없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잘못 들었나 싶었다"라며 "블랙리스트에 착한 블랙리스트가 있고 나쁜 블랙리스트가 있냐는 누구의 말을 들으면서 혼자 웃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저 뿐만이 아니라 양승은 아나운서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십명 기자들이 어디서 발령나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채 뿔뿔이 흩어져 있다"며 "(이들은) 방송의 공공연한 블랙리스트가 된 사람들이다. 언론노조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고 끝까지 현장에서 일을 하겠다고 우겼기 때문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배 전 앵커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것도 죄가 되느냐.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자에게 파업불참 책임을 묻는 게 온당하냐"고 반문하면서 "다시 한번 MBC에 묻고 싶다. 국민의 방송인지, 언론노조의 방송인지 그 좌표를 분명히 해줬으면 좋겠다"고 각을 세우기도 했다.

배 전 앵커의 이날 발언은 그의 철학과 세계관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배 전 앵커의 인식과 행동 속에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새로 부임한 경영진에 의해 방송에서 부당하게 배제됐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노조를 탈퇴하고 파업에 불참한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했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MBC를 향해 되묻는다. 국민의 방송인지, 언론노조의 방송인지 명확하게 밝히라고.


ⓒ 오마이뉴스


2010년 김재철 사장의 해임을 촉구하며 시작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방송정상화 투쟁은 8여 년만인 지난 2017년 11월 마침내 끝을 맺었다. 그 사이 2012년과 2017년 두 차례 걸친 대규모 총파업이 진행됐고, MBC 구성원의 대다수가 공정방송을 위한 투쟁에 동참했다. 특히 2017년 총파업 당시는 찬반 투표결과 파업찬성 의견이 무려 93.2%에 이를 만큼 그 열기가 뜨거웠다.

주지하다시피 MBC 구성원들이 길고 긴 투쟁에 나섰던 이유는 방송의 공정성 회복을 위해서였다.정권에 부역하는 불공정 방송이 아닌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 구축을 목표로 장장 8년 여의 세월을 싸워왔던 것이다.

국민 역시 이들의 총파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지난 2017년 9월 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KBS·MBC노조의 파업에 공감하는 국민여론은 66.7%로, 반대 의견 24.5%를 압도했다. (전국 성인 1만 5395명 중 521명 응답, 응답율 3.4%.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3%.  자세한 조사개요 및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이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총파업에 나선  MBC 구성원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다시 말해 다수 국민은 정권에 부역하는 방송이 아닌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MBC 구성원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앞서 배 전 앵커의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될 수 있을 터다.  

배 전 앵커의 인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자신을 언론장악의 피해자라 규정한 대목이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것과 파업에 불참한 것에 책임을 묻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배 전 앵커의 반문에는 아주 중요한 전제가 하나 빠져있다. MBC 구성원들이 공영방송 회복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동안, 국민들이 불공정 편파 방송에 진저리를 치는 동안의 그의 '행적'이다.

배 전 앵커를 향해 세간의 비판이 끊이질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MBC의 활약상(?)은 새삼 재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 시절 MBC는 '정권의 혓바닥', '엠O신'으로 불리는 등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촛불시위 취재에 나선 MBC 기자가 성난 군중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현장에서 쫓겨나는 장면은 당시 MBC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비근한 예다.

이와 관련해 배 전 앵커는 한때 신뢰도 1위를 달리던 MBC의 몰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뉴스데스크> 최장기 앵커 기록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 하는 동안 MBC는 시청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받았다. 사측의 무한신뢰를 받던 배 전 앵커가 탄탄대로를 달릴 때 정작 MBC는 언론자유 위축과 저널리즘의 위기 속에서 지독한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자신을 "현 정권의 공공연한 블랙리스트"라 주장하는 배 전 앵커의 강변에 공감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되는 동안 배 전 앵커가 공영방송의 대변자가 아니라 사측의 입장을 대신하는 창구 역할에 충실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배 전 앵커가 마이크를 잡던 시기 편파·왜곡 방송을 일삼던 <뉴스데스크>를 향해 국민적 비판이 폭주했던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본질은 배 전 앵커의 노조 탈퇴, 파업불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뚜렷하게 각인돼 있는, 한 개인의 '행적'에 관한 문제다. 그런 면에서 배 전 앵커의 논리가 친일부역자의 생존 논리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사실은 곱씹어 볼 만하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친일 행위를 감추기 위해 사실을 왜곡·은폐하고 여론을 호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합리화를 통해 부정하려 해도 드러난 '행적'까지 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

공영방송 MBC를 망쳐 놓은 책임이 경영진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일 터다. 저널리즘을 망각하고 정권에 부역한 주역들은 물론이고 그들에게 동조해 MBC를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한 기자와 PD, 아나운서 등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공정보도가 사라진 MBC가 시청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는 동안 <뉴스데스크>의 아나운서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시대가 바뀌자 정치판으로 재빨리 말을 갈아탄 배 전 앵커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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