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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탈원전 정책이 무책임하다는 황교안, 누가 더 무책임한가

ⓒ 오마이뉴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2017년 10월 20일 정부에 '공사 재개' 권고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는 시민참여단의 찬반투표 결과 찬성 의견이 59.5%, 중단 의견이 40.5%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위원회의 권고가 나온지 이틀 뒤인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3개월에 걸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이 마무리되었다"며 "정부는 그 결과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재개는 여러모로 의미가 남다르다. 그동안 국가 주요 정책은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신고리 원전 5·6호기는 달랐다.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공약이 시민들이 참여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번복됐다.

참여단은 3개월에 걸친 공론조사와 학습, 치열한 토론을 거쳐 공사를 재개하는 편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정부는 이 결정을 즉각 정책에 반영시켰다. 시민의 숙의로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숙의 민주주의'의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 재개에 찬성 입장을 나타낸 참여단이 정부의 핵발전 정책은 원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제시했다는 점이다.

참여단은 공정률이 30%에 이른 원전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공사를 재개하는 것보다 경제적 손실이 크다고 판단했다. 신규 원전의 안전성이 강화됐다는 점도 공사 재개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참여단은 공사 재개 결정과는 별개로 원전을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조사결과 참여단의 53.2%가 '원전 축소'에 찬성했고, '원전 유지'는 35.5%, '원전 확대'는 9.7%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토대로 위원회는 정부에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 재개를 권고하면서도 핵발전 정책은 '원전 축소' 의견을 제시했다. 경제적 측면 등을 고려해 공사 재개 결정을 내렸지만 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전 찬반 논쟁은 우리 사회의 첨예한 화두 중의 하나다. 원전을 찬성하는 쪽은 경제성과 효율성, 친환경적이고 기술집약적인 산업인 원전을 확대·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원전을 반대하는 쪽은 사고 발생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초래되고, 방사선과 방사능 폐기물 등 생명과 안전, 환경에 치명적인 원전을 점진적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전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한 만큼 장·단점을 모두 열어놓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를 논의하고 합의해가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론화 과정 속에 담긴 메시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일 터다.

주지하다시피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펴고 있다. 원전 사고가 자칫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쪽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겠다는 방침이다.

원전이 대도시 주변에 밀집돼 있는 우리나라는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체르노빌, 후쿠시마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치명적인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탈원전으로 가야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원자력업계 등은 '탈원전 정책' 폐기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이 전기요금 폭등으로 이어지고 전력난을 초래하며, 일자리가 줄어들고 관련 산업이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강변한다.

특히 보수언론은 '기승전-탈원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방위적으로 '탈원전 정책'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잘못된 근거나 자료를 인용해 탈원전의 본질을 왜곡·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전 찬성론자들은 탈원전 정책이 원전 가동의 전면적 중단을 의미하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부 정책대로 시행된다 해도 설계수명 등을 고려하면 원전의 완전 폐기는 빨라야 60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것도 신규원전 건설이 없을 경우를 가정한 예측이다.

게다가 정부의 탈원전 선언에도 원전 건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가 재개된 데 이어, 준공을 마친 신한울 1·2호기는 운영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역시 원전업계와 보수언론, 한국당 등 정치권의 압력이 계속되고 있어 건설 재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수명이 다한 노후원전을 차례대로 폐기시키고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방향으로 탈원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제성은 물론이고 전력수급 문제와 지역민심,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접근해나가겠다는 복안이다.

 

ⓒ 뉴스1


그러나 원전 찬성론자들은 원전의 경제성과 효율성 등을 강조하며 탈원전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 속으로 민생투쟁대장정'에 나서고 있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 역시 그런 인사 가운데 하나다.  

황 대표는 9일 울산 울주군 한국수력원자력 새울원자력본부에서 열린 원전 관련 정책간담회에서 탈원전 정책을 맹비난했다.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가 없는 가운데 추진되는 정부의 탈원적 정책은 무책임하다며 강하게 성토한 것.

그러나 탈원전 정책으로 핵발전소가 당장 가동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세계 각국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노후한 원전의 운행을 중단시키고 폐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흐름과는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후쿠시마 원전 참사의 실상을 경험한 세계 각국은 원전을 감축하는 한편 대체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일고 있는 에너지 전환 움직임에 동참하자는 것이 탈원전 정책이 나온 배경이기 때문이다.

물론 원전 찬성론자들의 주장도 나름 일리는 있다. 원전의 경제성과 효율성이 높다는 것도, 이를 대체할 만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반경 3.5km 내에 원전 10여 개가 초밀집되어 있는 곳은 지구상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와 관련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노후한 고리원전이 후쿠시마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강력하게 경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원전 찬성론자들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료가 폭등할 것이라 하는가 하면, 미세먼지가 극심해진 원인이 탈핵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얼마 전 발생한 강원도 산불 역시 탈원전 정책의 결과라고 몰아가고 있다. 이래도 탈원전 탓, 저래도 탈원전 탓이다. 

그러나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료 인상은 언론의 팩트체크를 통해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마저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미세먼지의 요인 중 하나인 화력발전소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집중 건설됐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산불과 탈원전 정책을 연관시키는 것 역시 억측이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원전 찬성론자들은 사실 관계를 왜곡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계와 내용을 교묘하게 활용해 탈원전 정책의 폐기를 부르짖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끔찍한 참상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하고도 원전만능주의에 빠져있다는 사실에, 그 무모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과 효율성에 집착해 원전을 고집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자본과 이념,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폭넓은 토론과 숙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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