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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이 공수처를 반대하는 이유

지난 4일 아주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서울신문>과 서울대 폴랩(pollap)의 한규섭 언론정보학과 교수팀이 지난달 16~20일 사이에 성인남녀 17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33개 공공기관 신뢰도 조사'(신뢰지수 95%, 표본오차 ±2.4%포인트) 결과가 그것이다. <서울신문>은 이 조사를 바탕으로 '신뢰사회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심층기사를 연재할 예정이다.

기사에 따르면, 정부부처를 포함한 공공기관들의 신뢰도는 지극히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잘하고 있다(신뢰)', '못하고 있다(불신)', 잘 모르겠다(무관심)' 등의 항목으로 이루어진 이번 평가에서 신뢰지수가 50% 이상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가장 높은 기관은 42.4%를 기록한 헌법재판소였고,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의 비위들이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는 국가정보원은 의 9.9%로 가장 신뢰지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이번 여론조사를 통해 다시 한번 드러나고 있다.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 불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매년 실시하는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도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현저하게 낮게 나타난다. 지난해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신뢰도와 청렴도 부분에서 4점 만점에 3점 이상을 기록한 공공기관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대적으로 신뢰도와 청렴도가 높게 나타난 조직인 의료기관조차 각각 2.5%와 2.4%를 기록했을 뿐이다.

반면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는 신뢰도와 청렴도에서 각각 1.7%와 1.6%를 기록해 최하위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중앙정부부처(2.0%, 1.9%), 검찰(2.0%, 1.9%), 법원(2.1%, 2.0%), 경찰(2.2%, 2.1%) 등도 신뢰도와 청렴도 부분에서 민망한 성적표를 받기는 매한가지였다. 세계 반부패운동을 주도하는 비정부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지수 순위(2016년 기준)에서 우리나라가 176개 조사 대상국 중 52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29위를 기록한 것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국가기관에 대한 지독한 불신은 지난 수십 년간 층층이 쌓여온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의 산물이라 할 것이다. 주목할 것은 국가권력의 중추인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모두 신뢰도와 청렴도 면에서 낙제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정기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검찰 역시 마찬가지였다. 곳곳에 숨어있는 적폐를 발본색원 해야 할 검찰이 정치권력과 유착하거나, 스스로 거악의 일원이 되어가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는 공직사회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국가 시스템이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정기관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검찰을 대신해 권력형 비리와 불법 등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한 별도의 기구를 통해 2급 이상의 고위공무원들과 그 가족들의 비위를 전담 수사하게 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검찰조직으로는 권력형 비리를 근절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공수처는 국민의정부 시절인 1999년 당시 박상천 법부무 장관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공직비리수사처'를 만들겠다고 보고한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두다. 고위공직자의 부정비리가 터져나올 때마다 공수처 설치 요구는 빗발쳤고, 관련 법안이  쏟아져 나왔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8대 국회부터 현재까지 발의된 공수처 관련 법안만 해도 10차례에 이른다. 그러나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 공수처 설치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충돌하면서 번번히 좌초되고 말았다.


오마이뉴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공수처 설치 관련 입법 역시 연내 처리가 난망한 상태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법률 제정안 초안 공개로 재점화된 공수처 신설 문제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결사 반대로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공수처 설치와 관련해 지난 20년 동안 초지일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제출된 공수처 관련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공수처는 죄파 검찰청을 하나 만들어서 기존 검찰 권력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다. 공수처라는 것이 국민 80%가 찬성하는데 어떤 기관이 될 것인지도 모르고 찬성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도 없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를 만들어 대한민국 수사기관을 장악하고 대북 수사기관을 무력화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11월 30일 <영남일보>가 주최한 정치특강에서 나온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발언이다. 공수처가 검찰조직의 사정기능을 무력화 시킬 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권력기반 구축을 위한 제3의 기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홍 대표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궤변에 가깝다. 주지하다시피 공수처는 검찰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만들어 낸 대안 조직이다.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면 공수처 설치 요구가 이처럼 뜨겁게 분출되지는 않았을 터다. 그런 면에서 공수처 설치는 검찰조직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찰조직이 '무력'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수처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의심된다면 이 역시 입법 과정에서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미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공수처장을 야당에서 추천하는 안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러나 한국당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을 채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다. 그것도 공수처 설치를 찬성하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우민(愚民)으로 몰아가면서 말이다.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권력형 부정비리 사건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부지기수로 발생했다.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부정비리 의혹의 상당수가 검찰의 봐주기 수사, 꼬리 짜르기 수사 등으로 실체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만약 공직비리 전담기구인 공수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국민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드는 대형비리사건의 상당수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고 있는 한국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는 이유일 터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4일 '인사권까지 준다는데...홍준표, 왜 공수처 반대할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치권에서 한국당 외의 당들은 공수처에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또 한국당 내에도 찬성론자가 상당하다. 그럼에도 한국당 지도부만 이를 반대하는 것에 대해 '다른 정치적 고려가 작용하는 것 같다'는 관측이 많다. 국민의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현재 검찰 수사가 한국당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검찰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라는 내용을 내보낸 바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이고 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야당, 80%에 달하는 국민들까지 찬성하는 공수처 설치를 유독 한국당만이  '부득불'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한국당이 공수처를 두려워 하고 있다는 소문이 세간에는 파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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