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관련 수사를 가능하면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문무일 검찰총장의 발언을 두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누리꾼들의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등은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가 하면 청와대는 적폐수사를 연내에 끝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선긋기에 나섰다. 그동안 검찰 수사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던 청와대가 검찰총장의 발언에 황급히 제동을 건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인 적폐청산을 적당히 봉합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앞서 문 총장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각 부처에서 넘어온 적폐청산 관련 수사에 집중되는 상황은 연내에 마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며 "올해 안에 주요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지치는 것처럼 사회 전체가 한 가지 이슈에 매달려 있는 게 너무 오래 지속되면 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요컨대, 계속되는 적폐청산 수사로 사회적 피로감이 쌓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올해 안에 수사를 끝내겠다는 뜻이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 느껴지는 발언이다. 문 총장은 지난 10월 17일 대검찰청 출입기자 간담회에서도 같은 맥락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문 총장은 "적폐청산 수사 관련 시한을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마치는 걸 목표로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수사가 길어지면 피로감이 커질 수 있으므로 수사팀 숫자를 늘려 최대한 빨리 사건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슷한 내용의 발언이지만 전해지는 체감은 판이하게 다르다. 10월 17일 발언이 적폐청산 수사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라면, 지난 5일의 경우는 수사시점을 '연내'로 분명하게 못 박았기 때문이다.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정황은 또 있다. 문 총장의 발언이 보수언론의 주장과 '결'이 대단히 유사한 탓이다. 문 총장의 10월 17일 기자간담회 다음날 <동아일보>의 칼럼을 보자. 당시 전성철 사회부 차장은 '적폐청산이 지겨워진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면서 "좋은 노래도 계속 들으면 질리는데 특정 정권 수사가 1년 넘게 이어지니 지겨운 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칼럼은 "현 상황에 하루 빨리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로 끝을 맺는다.
전 차장은 어떠한 근거 제시도 없이 사람들이 적폐청산 수사에 싫증을 느끼고 있다고 단언한다. 요상하다. 내 주변에는 적폐청산의 칼끝이 무뎌진 것 아니냐는 사람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싫증은커녕 외려 적폐의 몸통인 MB를 왜 전격 소환하지 않느냐고 아우성이다. 유유상종인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릇 주장은 적확한 근거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이렇게 말이다. 전 차장의 칼럼이 나오기 사흘 전인 15일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및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활동"에 찬성하는 여론이 77.1%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대 의견 20.9%에 비해 무려 55.2%포인트가 높은 수치다.
국민들은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정치보복' 프레임에도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폐청산 논란과 관련해 "불법과 부정을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엄중하게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72.7%로, "과거 정권에 맞춘 정치보복 성격의 수사임으로 중지해야 한다"는 의견 24.5%보다 48.2%포인트가 높게 나온 것이다. (10월 13~14일 이틀 동안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34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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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전 차장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검찰 수사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주장과는 달리 국민들은 적폐청산 수사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참여연대가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 창'과 공동으로 여론조사기관 '우리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적폐청산과 관련해 '불법 행위에 대한 당연한 처벌'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67.5%에 이르렀다. 이는 여전히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반증이다. (11월 16일 하루 동안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00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정치보복 프레임을 가동시키며 사회적 피로감을 운운하는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의 주장과 달리 국민들의 의사는 확고부동하다는 것이 각종 지표로 입증되고 있다. 적폐청산 작업이 불법과 부정, 비리 등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니 만큼 수사에 만전을 기해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문 총장의 인식은 국민들의 기대와 바람과는 한참은 동떨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범죄 수사의 기본적인 원칙과도 어긋나 있다.
박근혜·이명박 정권 시절의 비위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드러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새로운 범죄의혹들이 밝혀지는 시국인 것이다. 최근만 해도 국정농단 수사의 정점이라 불리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진보교육감을 불법 사찰하도록 국가정보원에 요구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정치권 및 검찰 안팎에서는 지금껏 밝혀진 사안들이 단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이명박 정권 시절 자행된 불법과 부정의 정황들이 그만큼 방대하다는 방증일 터다.
더욱이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의 댓글 조작,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2012년 총선개입 의혹, 기무사령부 민간인 사찰 의혹, 롯데월드타워 건립 의혹, KBS 방송 장악 의혹 등의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전 대통령과 관련된 비리 의혹들은 아직까지 관련자 소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밝혀내야 할 실체적 진실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시한을 두겠다는 것은 범죄 수사의 주체인 검찰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다.
적폐청산을 '민생'과 분리시키는 것 역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문 총장은 "내년에는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민생사건 수사에 보다 집중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말은 그럴 듯 하지만 본말전도나 다름이 없다. 정치권력 오남용의 단적인 예가 바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자행된 적폐들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유화 했고, 그를 통해 민주주의와 헌법가치를 마음껏 유린했다. 국민을 불법적으로 사찰하고 종북으로 매도하는가 하면,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억압하기도 했다. 무도한 권력이 양산해 낸 적폐들이 민생을 더할 나위 없는 절망과 고통에 빠트린 셈이다. 적폐청산이 흐지부지 끝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적폐가 쌓이면 민생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적폐청산은 지난 9년 동안의 찌든 때를 벗겨내는 엄중한 작업이다. 단지 몇 개월만에 청산될 것이라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적폐세력의 반발과 저항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럴 터다. 적폐청산은 정의롭고 공정한, 투명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시발점이다. 실체가 규명될 때까지 멈춤 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들의 갈증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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