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
"과거 민주투사였던 김 전 지사가 친박 간신들의 돌격대로 변신했다. 두달 전만 해도 비리·불통·무능 대통령이 탄핵돼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 이제는 가장 청렴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기각돼야 한다고 입장이 바뀌었다. 그런 분이 새누리당 대권 후보에 정신이 팔려서 수구세력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이 7일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정계은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 전 지사가 전날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비판하면서다. 하 의원은 이날 바른정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김 전 지사 정계은퇴를 촉구한다"며 김 전 지사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하 의원 역시 과거 운동권 출신이다.
앞서 김 전 지사는 지난 4일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데 이어, 6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융성과 스포츠 진흥을 위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설립한 것이라며, "그것은 헌법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한 정당한 통치행위였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그는 "대통령 주변인들의 비리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나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비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며 이번 사태가 박 대통령 개인의 사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전 지사의 발언은 이내 큰 파장을 불려 일으켰다. 그의 발언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인식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데다, 그가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까지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김 전 지사는 박 대통령의 헌법 위반마저 정당한 통치행위로 받아들이는 반헌법적 인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어이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실제 온라인과 SNS에서는 김 전 지사를 향한 비난이 맹렬히 터져나오고 있다. 김 전 지사의 발언에 발끈한 사람이 비단 하 의원 한사람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 전 지사는 자신을 향한 비판이 거세지자 7일 SNS에 전날 발언에 대한 해명글을 게재했다. 그런데 이 해명글 역시 거센 논란에 횝싸이고 있다. 그는 해명글에서 자신의 발언에 격려와 비난이 동시에 쇄도하고 있다며, 그와 같은 "비난, 험담, 기꺼이 감수할 각오가 돼있다. 비난하시는 분들의 말씀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분명히 밝혀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며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먼저 "촛불세력만 우리 국민이고 그들의 주장만이 진리처럼 여기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촛불주도세력은 골수 좌파와 민주노총, 전교조, 통진당원, 더불어 민주당원 등 야권지지세력이다. 어찌 이들만이 대한민국의 국민인가"라며 촛불집회가 골수 좌파와 특정 세력에 의해 주도됐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촛불집회 음모론을 제기한 박 대통령의 인식과 대동소이하다.
반면 김 전 지사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상반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나라를 걱정하는 정통보수세력이라고 주장하며, "야당은 이분들을 골통보수, 극우세력이라고 비난하는데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게 골통보수고 극우라면 저는 그말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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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도단도 이만한 언어도단이 없다. 지역과 이념, 진영논리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그 반사이득을 톡톡히 누려온 자들이 바로 박 대통령이며, 새누리당이다.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을 비판하고 권력의 부정과 비리에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종북좌파'로 매도하고 탄압해온 세력 역시 그들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를 권력의 입맛대로 재단했던 '블랙리스트 파문'이야말로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의 '반헌법적', '반민주적', '파쇼적' 행태를 여과없이 드러낸 엽기적 사건 아닌가.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정통보수세력이라 규정하는 것에도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보수의 가치는 다른 데에 있지 않다. 보수의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의 질서와 헌법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사회적 가치를 유지하려는 태도 속에서 오롯이 빛이 난다. 보수가 헌법, 도덕, 규범, 전통, 자유 등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정통보수세력이라는 '말 같지 않은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있나. 그들이 보수라면, 그것도 정통보수라면 자유민주주의의 질서와 헌법을 부정하고 이를 사사로이 농단한 세력에 대해 추상 같은 책임을 물어야 마땅할 터이다. 그러나 그들은 외려 민주주의와 법치를 농단한 세력을 비호하기에 혈안이 돼있다. 세상에 이런 보수가 어디에 있나.
더욱이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고엽제전우회 등의 관변단체들은 이미 청와대의 지시로 전경련의 자금지원을 받아온 사실이 드러났고,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는 설 연휴 직전인 1월26일 '탄핵 기각 사유'와 'JTBC의 태블릿PC 보도에 대한 의혹' 등의 내용이 담긴 4면짜리 가짜뉴스 300만부를 제작 배포해, 제작과정과 자금지원 등에 강한 의혹이 쏠리고 있는 상태다. 어디 이뿐인가. 반인륜적·반사회적 행태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일베 역시 태극기 집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을 과연 정통보수세력이라 칭할 수 있나.
김 전 지사는 이날 탄핵 찬성에서 탄핵 기각으로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문 전 대표가 박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한 상황을 거론한 뒤,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게 하야라는 것은 맞지 않는다. 그건 헌법위반이다. 박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면 차라리 탄핵을 해서 그 잘잘못을 법정, 다시 말해 헌재서 판단할 기회를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두달이 흐른 지금 검찰, 특검수사와 헌재 재판상황을 보면서 측근의 비리와 박 대통령 자신의 어설픈 일처리 등에 문제가 있지만 그렇더라도 탄핵사유는 안된다는 게 고심끝에 내린 제 결론이다"고 밝혔다.
김 전 지사의 이 발언은 먼저 사실관계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하야 촉구가 헌법위반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헌법은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를, 헌재에 의해 탄핵당하는 경우와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하는 경우로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국민의 요구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주권을 가진 국민의 당연한 권리다.
김 전 지사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우려스러운 점은 다름 아닌 그의 철학과 인식이다. 그는 미증유의 국정농단 사태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단순히 측근 비리와 대통령의 일처리 미숙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결과 측근 비리를 차단하지 못한 어설픈 국정 운영의 문제만으로 박 대통령을 탄핵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어 버린다. 대선 후보로 평가받는 사람의 철학과 인식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는 문제적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밝혀진 박 대통령의 헌법 위반 사례만으로도 탄핵이 인용돼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여기에 애초 국회가 탄핵소추안에 적용시킨 탄핵 사유 이외에도 박 대통령의 헌법 위반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대한민국판 분서갱유 사건이라 불리는 '블랙리스트 파문'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국민주권과 법치주의 위반, 대통령의 권한 남용, 언론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뇌물수수 형사법 위반 등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파괴한 정황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박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 역시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도 김 전 지사는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세력을 '정통보수'라 운운하면서 박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 회복이라는 절대 명제를 위해 숨가쁘게 달려온 촛불집회에 대한 모독이며, 도발이다.
김 전 지사의 정계은퇴를 주장한 하 의원은 "본인 양심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보라.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한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나"고 성토했다. 김 전 지사는 한때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의 날 선 비판을 직시해야 한다. 아울러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 입에서 나온다고 해서 다 같은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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