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 관련해 '탄핵 기각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변론에서 박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 8명을 채택하며 사실상 2월 말 탄핵 선고가 불가능해지자, 언론과 정치권 일각에서 헌재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초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헌재가 사회적 혼란과 국정 공백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빠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박한철 헌재소장이 퇴임하기 전인 1월31일 이전에 선고가 내려질 가능성마저 제기되기도 했다. 헌재가 지난달 박 대통령 측이 신청한 39명의 증인 중 29명을 무더기 기각시킬 때만 하더라도 이같은 예측에 힘이 실리는 듯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 측의 노골적인 지연책이 먹히기 시작하면서 조기 탄핵 선고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박사모와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 극우보수단체들이 '태극기 집회'를 통해 보수결집을 시도하고, 여기에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폐족 신세를 면치 못하던 새누리당이 태극기 집회를 발판 삼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흐름이 묘하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탄핵 기각설'이 불거져 나왔다. 청와대와 말을 맞춘 헌법재판관 2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다음달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면 재판관 중 한 명이 사퇴해 판결 자체를 아예 무산시킬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음모론에 가까운 황당한 내용이지만 2월 탄핵 선고가 물건너가면서 야당과 범시민사회는 바짝 긴장하는 모양새다.
"어째 돌아가는 꼴이 심상찮다. 그동안 거침없이 달려왔던 특검이 청와대 문턱을 못 넘고 있다. 염치도 법치고 내던져버린 박근혜 대통령을 좀처럼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 헌재 심리도 대통령 대리인의 노골적 지연작전에 불필요하게 늘어지고 있다. 반성과 쇄신을 말했던 새누리당은 돌변해서 친박집회에 나가 '박근혜 사수'를 부르짖고 있다. 천만 촛불에 뿔뿔이 흩어졌던 세력이 총집결하고 있다. 역사의 물길을 거스르려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사법처리가 국민의 기대대로 이뤄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지난 6일 상무위 회의 도중 발언이다. 현 상황은 심 대표의 지적 그대로다. 헌재는 박 대통령 측의 시간끌기에 휘둘리는 있고, 여론전에 사활을 걸던 청와대의 바람대로 보수세력은 태극기 집회를 구심으로 빠르게 세를 불리고 있다. 앉아서 당할 수 없는 새누리당도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본격적으로 대중 선동에 나서고 있다. 분위기가 달라졌고, 아주 고약해진 것이다.
이 모두 박 대통령이 원했던 대로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했던 전선을 그는 두 달여만에 자신이 원하는 그림으로 바꾸어 놓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탄핵 지연 전략, 새해 첫날의 기자간담회, 보수매체와의 인터뷰 등도 결과적으로 국면 전환의 핵심 동력인 보수결집에 일조한 모양새다. 나라를 도탄에 빠트린 어리석은 대통령일지는 모르나 그렇다고 만만히 볼 상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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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탄핵 기각설'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탄핵 심판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온갖 '설'들은 모두 억측이라는 것이 헌재의 기본 입장이다. 탄핵 심판을 흔드는 근거 없는 낭설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그러나 헌재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 번 불거진 '탄핵 기각설'이 쉽사리 사그라들지는 않을 전망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미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탄핵 이상 기류가 급속히 확산된 상태다. 박한철 소장의 사임 이후 헌재의 탄핵 속도 역시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탄핵 선고가 늦춰질 가능성도 높다. 박 대통령이 심판정에 직접 출석하는 변수가 남아있고, 헌재가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특검 수사 종료 이전에 선고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정미 재판관이 사임하는 3월13일 이전 선고는 어려워지게 되고, 그로 인해 '탄핵 기각설'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탄핵 찬성파와 기각파로 양분된 우리 사회는 이미 분열의 정점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중이다. 기각이 되든 인용이 되든, 탄핵 선고 이후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후유증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이미 그 징후는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탄핵 심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 각층의 극심한 '불신'이 그 바로미터다.
극우보수단체들은 '박 대통령은 죄가 없다'는 절대 명제에서 벗어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다. 드러난 '팩트'는 어디까지나 조작이고 왜곡이며, 박 대통령을 사지로 몰아넣기 위한 특정세력의 음모라고 규정한다. 태블릿PC 는 조작의 산물일 뿐이며, 언론 보도와 검찰·특검 수사 역시 거짓이라 단정한다. 대신 그들은 유언비어로 가득한 가짜 뉴스를 진실이라 믿는다.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뿌리 깊은 '불신'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탄핵 기각설' 역시 그 기저에 '불신'이 놓여있다. 정부는 물론이고 검찰, 심지어 사법부조차 불신의 온상이 돼버린지 이미 오래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종속된 국가기관들이 정의와 상식을 벗어난 행태를 반복해 온 결과다. 이는 '정의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헌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불신의 사회에서는 진실의 진위를 가려줄 대상조차 불신의 타겟이 되기 십상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으로 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 없다면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최선은 박 대통령이 '결자해지'하는 것이다. 국정을 어지럽히고 헌정 질서를 문란하게 만든 책임을 지고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그나마 줄이는 최선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단언코 없다. 박 대통령이 그럴 요량이었다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헌재가 탄핵 선고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었듯이 탄핵과 관련된 갖가지 유언비어와 거짓 정보, 가짜 뉴스들이 범람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실을 가리는 허위 정보들이 대량 생산·유통되고, 그것이 날 것 그대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은 이 사회의 공감 능력과 자정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다. 헌재의 공정성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는 '탄핵 기각설'이야말로 그 방증일 것이다.
탄핵 심판이 두 달 가까이 진행되면서 피로감이 이어지고, 사회적 혼란과 갈등 역시 극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선고가 늦어질수록 이같은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헌재 스스로 밝혔듯이 탄핵 심판은 형사재판이 아니다. 소추 당사자인 박 대통령의 헌법 위반의 정도를 판단해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과정일 뿐이다. 극심한 사회적 혼란 속에 '탄핵 기각설'까지 불거진 마당이다. 헌재는 신속한 선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사회 주체 간 갈등과 대립, 반목과 증오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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