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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보복 주장한 박근혜의 노림수

ⓒ 오마이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말들을 격정적으로 토해냈다.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법원이 지난 13일 검찰의 추가 구속영장 청구를 받아들인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혐의 자체를 완전히 부인하며 자신이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말해 사법제도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이날 재판부에 일괄 사임계를 제출하며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법원의 구속연장 결정이 나지 않았다면 이날은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구속 연장의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추가 구속연장을 결정했다. 그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석방은커녕 최장 내년 4월 16일까지 구치소에 갖혀있어야 할지도 모르는 궁색한 신세가 됐다.

기대가 컸턴 탓이었을까?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통령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재판이 열린지 6개월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는 사실부터가 남달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재판이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재판부의 양해를 얻어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 갔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의 공정성과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재판부의 법리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듯한 의도를 공공연히 내비쳤다. 주목할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는 재판 과정 및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으로, 사실상의 '재판 보이콧'이자 '재판 불복' 선언이다.

구속 연장 결정 이후 열린 첫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 측이 이처럼 초강수를 들고 나오자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점점 불리해지고 있는 국면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을 결정하면서 검찰이 추가 적용한 SK와 롯데와의 뇌물 공여죄 혐의를 받아들였다. 이는 단순한 혐의 추가의 의미를 넘어 재판부가 그만큼 박 전 대통령에게 제기된 범죄 혐의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새롭게 공개된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의 세월호 참사 당일 최초 보고 시점 조작이나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수정 의혹 등 박 전 대통령을 더욱 곤궁에 빠지게 만드는 정황들이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는 것도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의 부실 대응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서 빠져있는 상태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이 되면 세월호 책임 은폐 혐의가 추가로 드러날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던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의문스런 행적이 공개될 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관련된 의혹 등 박근혜 정권 시절 자행된 적폐들이 추가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통령을 향한 비난 여론은 더욱 비등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 재판을 둘러싼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와중에 재판부가 구속연장까지 결정하자 박 전 대통령 측으로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을 터다. 어차피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매한가지인 만큼 국면을 어떻게든 뒤흔들 필요성이 있었다는 얘기다.


ⓒ 오마이뉴스


실제로 변호인단이 일괄 사퇴했기 때문에 향후 재판 과정의 차질이 불가피해 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이 새롭게 변호인단을 꾸릴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하기 때문에 재판부는 국선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 새로운 변호인단이 10만 쪽이 넘는 사건 기록을 검토하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어서 재판이 제대로 진행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이 재판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론의 동향도 변수다. 당장 보수단체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연장을 기화로 보수단체들의 규탄 집회와 석방 촉구 집회 등이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14일 대학로 일대에서 열린 집회에는 류여해 자유한국당 최고위원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의 모습까지 포착됐다. 조원진 의원이 공동대표로 있는 대한애국당은 박 전 대통령 석방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태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이 진영 논리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의 벼랑 끝 전술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움직임에 '정치 보복' 프레임으로 맞대응하고 있는 보수야당 및 보수단체와 공동전선을 구축한 모양새가 됐다. 이렇게 되면 박 전 대통령 재판의 본질이 법리적 양상을 벗어나 정치적 문제로 옮겨붙는 것은 시간문제다.

박 전 대통령 측의 노림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재판을 법리 다툼이 아닌 정치적 문제로 몰고가겠다는 전략이다. 어차피 재판과정에서 불리한 정황들이 들어난 만큼 법리로 맞서기 보다는 재판의 불공성을 최대한 부각시켜 보수세력의 결집을 시도하고, 그를 바탕으로 판을 크게 뒤흔들어 보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이는 12월 9일 국회 탄핵소추가 결정된 이후 박 전 대통령 측이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정형화된 패턴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그동안 검찰과 특검의 수사 결과는 물론이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 절차와 과정까지 전면 부정해온 터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재판부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재판의 과정과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함으로써 보수세력의 준동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역시나'다. 민주주의를 파괴시키고 헌법가치를 유린했던 당사자답게, 미증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국가의 품격과 국민의 자존감을 한없이 추락시킨 장본인답게 그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자신' 밖에는 없다. 국민들이 받았을 상처와 충격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듯 오직 자신의 '구명(救命)'에만 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한때 대한민국 호(號)를 책임지고 이끌었던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힘든 후안(顔)이자, 국민에 대한 배신(背信)이다.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인 박근혜식 '배신 정치'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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