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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자유한국당 혁신? 싹수가 노란 이유

ⓒ 오마이뉴스


"한국의 미래가 밝으려면 좌우 양 날개가 건강해야 한다. 우파의 날개는 꺾이고, 썩고, 문드러지고 좌파만 득세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잊혀진 세력이다. 대선 때 정말 열심히 해주셨는데 제가 부족해서 주사파 정부가 탄생했다는 것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홍준표 전 경남지사)


"지금은 이념만 갖고 국민에게 다가갈 수 없다. 이제 우리 한국당이 할 일은 튼튼한 이념 무장 하에 민생에 다가가고 젊은이들을 다시 한국당의 지지자로 돌려야 한다."(원유철 한국당 의원)

"보수가 궤멸하느냐, 다시 대한민국을 이끌 정치세력의 중심으로 우뚝 서느냐의 갈림길에 있다. 문재인 정부의 좌파 정책과 싸우려면 학생•노동운동을 하고 의사협회장을 한 신상진이 필요하다."(한국당 신상진 의원)

15일 서울 여의도 기계회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서울시당 당사 이전 개소식에서 7.3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신상진·원유철 의원과 홍준표 전 지사가 당의 진로와 미래에 대해 밝힌 발언 중 일부다. 이날 개소식에 참석한 세 사람의 인식을 보니 누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한국당의 체질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 대표에 도전하는 세 사람의 정국 인식이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다, 무엇보다 저들이 구체제로 돌아가고자 하는 '반동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측은하고 딱하다. 현실을 그들이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한국당은 처참하게 몰락했다. 과거의 영화에 비하면 확실히 그렇다. 현재의 상황을 '잘 나가던' 그 때와 비교해 보면 저 표현의 적확성이 이내 드러난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한국당)은 국회의석의 과반이 넘는 152석을 획득해 당당히 원내 1당이 됐다. 그해 치러진 대선에서도 승리해 보란듯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율은 TK와 보수층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아쉬울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조금씩 균열은 시작되고 있었다. 권위주의를 앞세운 정부여당의 일방적 국정운영에 민심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권력에 심취했던 정부여당이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 민심은 계속해서 새누리당에게 경고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다. 민심이반의 징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지난 2016년의  20대 총선이다. 

당시 야권은 분열하고 있었고,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견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예상을 뒤짚었다.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는데 그쳐 123석을 획득한 더불어민주당에게 원내 1당의 지위를 내주고 말았다.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선거지형을 감안하면 굴욕적인 패배였다. 

선거 패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극심한 계파 갈등이 초래한 공천 파동이 지목됐다. 새누리당의 공천 잡음이 언론을 통해 생생하게 공개됐고, 그 과정에서 '욕설 파문', '옥쇄파동' 등 당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지역주의와 보수유권자에 대한 맹신과 자만, 극심한 계파 패권주의에 빠져있던 새누리당은 민심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총선 참패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총선 이후 선거 패배의 책임과 원인을 놓고 당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비박은 친박을, 친박은 비박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이 과정에서 혁신과 쇄신을 외치는 당안팎의 요구는 결국 관철되지 못했다. 당시 친박계의 무력시위로 혁신위원장에 오르지 못한 김용태 의원은 "새누리당의 정당 민주주의는 죽었다. 새누리당의 마지막 혁신 기회는 사라졌다"며 장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새누리당의 몰락은 그때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더블스코어가 나던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급속하게 줄어들며 지지기반의 붕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깊은 내홍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당시 새누리당의 원내대표였던 정진석 의원은 훗날 "그때 정신차렸어야 했다"며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어쩌면 마지막 혁신의 기회였던 그때, 정신을 차렸더라면 한국당이 이처럼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인적 청산을 필두로 한 대대적인 혁신 작업이 수반되었어야 했다. 당내 민주화를 가로막는 계파 패권주의와 단호히 결별하고,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이념에 기대는 구태 정치에서 벗어났어야 했다. 왜곡된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로 거듭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질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한국당의 현주소다.


"당이 존속하기 힘들 거라고 예상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결국 영남 자민련으로 축소돼 이합집산하는 과정에서 사라질 것이다."

구여권의 전략통으로 손꼽하는 정두언 전 의원은 지난달 2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한국당의 미래가 지극히 암울하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정 전 의원의 진단은 앞서 "마지막 혁신 기회는 사라졌다"고 말한 김용태 의원이나, "그때 정신차렸어야 했다"고 실토한 정진석 의원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당안팎으로 팽배해 있는 것이다.

한국당의 신임 지도부를 선출할 7.3 전당대회는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열리게 된다. 이번 전당대회가 당의 미래와 직결되는 변곡점이 되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당권에 도전하는 후보들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위기에 빠진 당을 살릴 적임자가 자신이라고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런 이유일 터다. 그런데 과연 한국당이 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당권에 도전하는 신상철·원유철·홍준표(가나다 순) 세 사람의 인식 속에서 보수 혁신의 당위와 명분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 시대를 위한 본질적인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는 국민을 향해 저들은 여전히 '주사파, 이념, 좌파' 등 과거의 낡은 언어를 부르짖고 있다. 전가의 보도였던 색깔론과 이념논쟁을 재소환하고, 대립과 갈등의 극단적 대결 정치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 간 수도 없이 봐왔던 낯익은 방식 그대로다. 


위기 극복을 위해 그들이 들고나온 특단의 해법이란 게 고작 과거로의 회귀, '반동주의'다. 한국당이 고수해온 낡은 관행과 관성, 바로 그 구태 때문에 민심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역시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정두언 전 의원의 저주(?)가 들어맞지 말라는 법도 없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갈망하는 국민 의식과 철저히 유리돼 있는 한국당 당권 주자들의 인식을 보니 확실히 그래 보인다. 한마디로 싹수가 '노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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