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일주일 전이다. 앞으로는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기 때문에 누가 유리한지 불리한지 알 수 없다. 기존의 여론조사를 기반으로 대략적인 판세를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정치칼럼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이후 이번이 세번째 맞는 국회의원 선거다. 어느 하나 애간장을 녹이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그중 이번이 가장 간절한 선거가 될 듯 싶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을 국정농단의 주역들이 여전히 활개를 친다. 이명박-박근혜 9년간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던 그들이, 시민의 인권과 기본권을 갉아먹었던 그들이, 노동자 서민의 삶을 외면하고 재벌-기득권의 곳간을 채워줬던 그들이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자고 핏대를 세운다.
순리대로라면 이명박-박근혜와 함께 정치적 심판을 받았어야 할 이들이 극적으로 생환했다. 그리고 이제는 기세등등 정부의 멱살을 쥐고 흔들어댄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책임은커녕 염치조차 없다. 오직 권력을 향한 비루한 탐욕이 구더기처럼 들끓는다.
미래통합당과 그들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국정농단과 탄핵의 원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그 어떤 책임도,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번 총선이 그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선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합당과 한국당이 이번 선거에서 폭망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리고 대다수 후보들이 국회의원의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믿고 있지만, 그중 특히 자질이 의심스러운 후보자들이 있다. 이름하여 'KKK' 리스트다. 오늘은 그 첫번째 시간으로 주인공은 곽상도다.
대구참여연대와 인권운동연대 등 17개 진보단체가 9일 성명을 통해 곽상도(대구 중구/남구)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가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사건 담당 검사로 독재정권에 부역했고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에 개입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직에 관여했다는 이유다. (오늘은 그중 유서대필사건에 대해서만 쓰려한다.)
2015년 5월 14일 '유서대필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씨가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을 받았다. 노태우 정권 시절이던 지난 1991년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작성해주고 그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처벌을 받은지 무려 24년 만이다.
1991년 대학가와 노동계는 용광로처럼 뜨겁게 닳아 올랐다. 곳곳에서 노태우 정권의 실정과 공권력의 폭력에 저항하는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이 뜨거움은 그 해 4월 강경대 군이 국가폭력의 상징인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자 절정으로 치달았다.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고 급기야 분신을 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전국적으로 11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분신을 했다. 재야운동가였던 김기설씨 역시 그 중의 한사람이었다.
전국으로 '정권퇴진' 시위가 번져 나가자 노태우 정권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대학생들과 재야운동가들의 연이은 분신이 문제였다. 분신은 저항의 가장 극단적인 표출방법이다. 분신이 잇따르자 노태우 정권으로서는 국면을 전환시킬 묘수가 필요했다. 때마침(?) 당시 서강대 총장이었던 박홍 총장의 기자회견이 국면전환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는 김기설씨가 서강대에서 분신한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려는 어둠의 세력, 죽음의 세력이 존재한다"며 분신의 배후에 이를 조정하는 세력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홍 총장과 노태우 정권과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발언 이후 언론은 '배후음모설'을 대대적으로 제기했고, 경찰은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했다며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유서대필 사건'의 수사는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순풍에 돛단 듯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경찰과 검찰은 한 몸으로 움직였고, 이 과정에 국과수도 동참했다. 법원 역시 경찰과 검찰, 국과수가 합작한 날조극에서 강기훈씨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며 저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영원히 묻힐 것 같았던 희대의 조작극은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의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재조사가 이루어졌고, 마침내 재심의 길이 열리게 됐다. 그리고 지난했던 법정공방 끝에 마침내 2015년 5월 14일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다. 국가기관이 합심해 사건을 조작하고 한 개인의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린 국가폭력의 부당함을 바로 잡기까지 무려 24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의 대표적인 조작극이자 날조극이었던 '유서대필 사건'에 가담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국가폭력으로 강기훈씨가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 24년 동안 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당시 수사검사였던 곽상도도 그중 한 사람이다.
곽상도는 2013년 대통령인수위원회에 발을 딛은 후 박근혜 정권 초기 민정수석과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거친 뒤 20대 총선에서 대구 중구/남구 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가족을 향한 '묻지마' 폭로전을 펼치며 통합당의 대표적 스피커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현재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통합당 대구 중구/남구 후보로 재선 도전에 나서고 있다.
국가폭력의 피해자였던 강기훈씨가 헤어나오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던 반면 악랄한 날조극의 주역 중 하나였던 곽상도는 국가요직을 두루거치며 거침없이 비상했다. 대법원 판결로 노태우 정권이 날조한 '유서대필 사건'은 부끄러운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것이 여실히 밝혀진 상태다. 그러나 곽상도는 참회는커녕 사과조차 없다.
피해자였던 강기훈씨와 가해자였던 곽상도. 이 극명한 대비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나는 이처럼 후안무치하고 비열한 인간은 정치판에서 영원히 퇴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적어도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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