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관련 논란으로 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은 이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며 맹공을 펼치고 있다. 주식투자 의혹으로 도덕성에 흠결이 드러난 만큼 공직후보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미선 후보자의 주식투자 의혹이 심각한 결격사유로 지적되고 있음에도 임명강행 움직임이 보인다"며 "이미선 후보자를 즉각 사퇴시키고 청와대 인사라인 전체를 물갈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자와 청와대 인사 책임자인 '조조라인'(조국 민정수석·조현옥 인사수석)을 한데 묶어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 "법관의 명예, 그리고 헌법재판관으로서는 매우 부적격한 태도에 대해 본인 스스로 사퇴하는 게 답이라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께 간곡히 호소한다. 더이상 오기인사를 관철하려 하지 말고, 이미선 후보자를 놓아달라"며 임명권자인 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이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은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는 보유주식 관련 회사에 대한 재판 의혹이다. 2018년 10월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였던 이 후보자가 본인이 주주로 있는 회사의 보험 관련 사건을 맡아 사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이 후보자가 재판을 담당했던 해당 사건은 2014년 9월에 벌어졌다. 충북 제천의 한 시멘트회사의 발전설비 공사 중 기중기 사고로 정전이 발생했고, 그 여파로 인근 공장에 설비피해가 발생하자 이 공사의 보험사였던 삼성화재가 보험금 1억6천만원을 지급한 사건이다.
보험금을 지급한 삼성화재가 사고를 낸 기중기 회사의 공제보험사인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에 보험금을 돌려달라는 구상금 청구 소송을 낸 것이 골자다. 관련해 당시 재판부는 "삼성화재가 보험금을 지급한 것은 공사 보험계약에 따른 자신의 보험금 지급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은 보험사 사이의 구상금 반환과 관련된 것으로 이 후보자가 주주였던 이테크건설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재판 결과가 피보험사인 이테크건설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삼성화재가 패소하며 보험료 상승 요인이 발생했으므로 이 후보자가 이테크건설과 관련해 유리하게 판결했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두번째 의혹은 이 후보자 남편이 주가조작과 미공개 자료를 통한 주식거래로 불법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주장이다. 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이 후보자 남편의 주식 거래가 주가조작의 전형적인 패턴을 띠고 있다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또한 OCI그룹 계열사인 삼광글라스 주식을 주요 공시와 공정거래위원회 적발 등을 전후해 매수·매도한 점을 지적하며 내부정보 거래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반론도 제기된다. 의혹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데다, 주식 투자를 통해 외려 5억 원 이상의 손해를 입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이 후보자 남편이 주가조작과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불법 주식거래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법조계 내부에서는 이 후보자에 대한 과도한 의혹 제기와 여론 몰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분출되고 있다. 전수안(67) 전 대법관은 14일 오전 페이스북에 "'부실한 청문회'와 언론이 포기한 기능이 빚어낸 프레임을 '부실한 후보' 탓으로 호도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라며 이 후보자를 옹호하는 글을 남겼다.
전 전 대법관은 "(여성이 아니더라도) 법원 내 최우수 법관 중 하나다. 이례적으로 긴 5년간의 대법원 근무가 그 증거"라며 "강원도 화천의 이발소집 딸이 지방대를 나와 법관이 되고 오랫동안 부부 법관으로 경제적으로 어렵게 생활하다가, 역시 최우수 법관이었던 남편이 개업하여 아내가 재판에 전념하도록 가계를 꾸리고 육아를 전담하고 하여 법원에 남은 아내가 마침내 헌법재판관이 되는 것이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난다고 누가 단언하는가"라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의 임명을 촉구하는 각 지역 변호사들의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지난 12일 부산지역 변호사 58명이 이 후보자의 임명을 요구하고 나선 데 이어, 15일에는 광주·전남 변호사 103명이 이 대열에 동참했다.
이 후보자가 그동안 노동과 인권, 여성과 소수 약자 등을 위해 노력해 왔고, 주식 거래나 재산형성 과정에서 내부정보를 이용하는 등의 결정적 위법사항이 드러나지 않은 만큼 기회를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초지일관이다. 이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 시한이었던 15일 한국당은 예고했던 대로 이 후보자 부부를 검찰에 고발했다. 바른미래당 역시 이 후보자 부부에 대한 금융위 조사를 의뢰하며 공세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후보자의 도덕성을 문제 삼고 있는 한국당 등 보수야당의 과거 행태다.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촛불집회 수사를 비롯해 '미네르바 사건' 등 각종 시국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박한철 대검 공안부장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박 전 재판관 임명 당시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전관예우'였다. 2009년 7월 서울 동부지검장 퇴직 후 국내 최대 로펌회사로 불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재직하면서 4개월간 2억 4500만 원의 급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
당시 국회에 제출된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박 전 재판관의 재산은 불과 6개월만에 검찰 퇴직시 신고했던 액수보다 4억 4천만 원이 늘어난 것으로 밝혀져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재판관은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한국당+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 계열)이 적극 엄호를 한 끝에 결국 임명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었던 2013년 1월 지명된 이동흡 전 헌재소장 후보자에 대한 당시 새누리당의 입장은 더욱 가관이다. 당시 이 후보자는 헌재 특수업무비 전용의혹, 위장전입, 증여세 포탈, 외환거래법 위반 의혹, 논문 표절 의혹, 자녀 대기업 특채 의혹, 잦은 해외출장 및 부부동반 출장 의혹 등 숱한 의혹과 부적절한 처신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새누리당은 '의혹 백화점'이라 비판받던 이 후보자를 비호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각계의 사퇴 요구에 "자진사퇴는 도리가 아니다"라며 이 후보자를 감싸고 돌았고, 이한구 원내대표와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지도부, 인사청문특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던 권성동 의원 등은 "결정적 하자가 없다"며 옹호에 나서기도 했다.
어디 이뿐인가. 이밖에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자질 논란에 휩싸였던 인사들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은 그때마다 적극적인 방어막을 쳤고, 그들 중 상당수는 부적격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고위공직에 임명됐다.
고위공직자의 도덕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다. 국민 눈높이를 감안해 인사에 각별히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일 터다. 그런 면에서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된 이 후보자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주식투자 의혹과 관련해 국민 정서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후보자 부부에게 제기된 의혹 중 불법이 드러난 부분은 없다는 사실이다. 수십억 원대의 주식 보유가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주식 거래에 위법이 없다면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한국당 등은 불법을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는 내놓지 못한 채 의혹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이율배반이자, 자가당착이다.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당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와 기준대로라면 지난 2013년 법무부 장관에 임명될 당시 병역면제 의혹, 전관예우 논란, 전화변론 의혹, 증여세 회피 의혹 등으로 곤욕스러워 하던 황 대표부터가 '자격상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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