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강원도 산불 대응을 걸고 넘어지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의 공세가 점입가경이다. 가짜뉴스와 루머, 말도 안 되는 억측을 바탕으로 무리한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당은 지난 8일 국회에서 '강원도 산불 피해복구 지원 및 사고원인규명 연석회의'를 열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예산 부족과 관리 소홀이 산불의 원인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한전의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전이 누적적자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배전 유지보수 예산을 상당히 삭감한 부분이 있다"고 밝혀 산불을 탈원전 정책과 연계시켰다.
정용기 정책위의장도 거들었다. 그는 "한전이 전신주 관리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관리 소홀이 이어졌다면 결국 대통령께서 탈원전, 무분별한 태양광정책을 추진해서 우량 공기업 적자가 예산 삭감, 관리 소홀 화재로 이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면 이건 대통령에 의한 인재다. 자연재해가 아니고, 문재인에 의한 인재고, 문재인에 의한 대통령 재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한국당 원내 투톱의 말은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으로 한국전력공사가 자금난에 빠지게 됐고, 그로 인한 관리 소홀과 안전 시스템 미비가 산불로 이어지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당의 공세는 한전의 반론과 다수 언론의 '팩트체크'를 통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한전은 8일 보도자료를 통해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적자 때문에 관리부실이 발생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전은 "지난해 영업적자는 탈원전 영향이 아닌 국제 연료가격 급등에 따른 연료비 증가가 주요 원인"이라며 "적자 여부와 상관없이 안전과 직접 관련된 예산은 지속적으로 증액해 설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전은 설비교체 보강예산이 2018년 줄어든 것과 관련해서도 "최근 3년간 설비교체보강 및 점검수선 평균투자비는 1조8000억원이나 최근 10년간 평균은 약 1조1000억원"이라며 "지난해 실적 1조4000억원은 오히려 10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투자가 이행되면 그 효과가 15년에서 20년 동안 지속되므로, 과거 3개년(15~17년)의 집중적인 투자로 인해 18년도 이후부터는 설비교체보강 대상설비가 줄어들게 되어 17년 대비 18년도 예산이 줄어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에 한전의 적자가 증가하고 그로 인해 변압기 등의 설비교체 예선이 삭감됐다는 보수진영의 주장은 이미 2018년과 2019년 초 한전의 해명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내용이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탈원전 정책이 강원도 산불의 원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견강부회'(牽强附會)나 다름 없는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산불을 정쟁화 시키려는 한국당 등의 행태는 9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행정안전부·소방청 업무보고에서 한국당과 대한애국당 등이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캐물으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 것이다.
안상수 한국당 의원은 "문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온 것이 화재 발생 후 5시간 후, 소방 대응 3단계 격상 후 2시간 30분 후였다"며 "청와대가 초대형 산불에 너무 한가한 것 아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은 초 단위로 알리라고 그렇게 난리 치지 않았느냐"고 성토했다.
유민봉 한국당 의원 역시 "행정안전부 중앙상황실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서 보고가 있었다고 했다. 4일 밤 12시 이전엔 4번의 영상회의 겸 보고가 위기관리센터와 청와대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때 이뤄졌던 회의의 녹취록을 제출하길 요구한다"며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위기대응조치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영우 한국당 의원도 "'이럴 때 대통령이 어디 계실까' 하며 지난 정부 때 일어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며 의혹을 부추겼다. 마치 문 대통령의 '5시간' 행적이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처럼 문제가 있다는 뉘앙스다.
과거 문 대통령을 향해 "정신없는 인간", "미친 XX"등의 막말을 퍼부어 논란이 됐던 조원진 애국당 의원 역시 대통령의 행적에 의문을 제기했다. 조 의원은 "23시에 BH(청와대)에서 위기관리 센터 회의를 하는데 VIP는 왜 처음부터 참석을 안했나, 술 취해 계셨나"라며 보수 유튜브 채널 등에서 제기된 음주 의혹을 끄집어냈다.
앞서 <신의 한수>, <진성호 방송> 등은 '신문의날' 행사에 참석했던 문 대통령이 언론사 사주들과 술을 마시느라 강원도 산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낸 바 있다. 조 의원은 이를 토대로 문 대통령이 술에 취해 초기대응을 제때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그러나 보수 유튜브 채널이 주장한 문 대통령 음주 의혹은 가짜뉴스인 것으로 밝혀진 상태다. '신문의 날' 기념축하연은 화재발생 시간보다 30분 가량 앞선 오후 6시 40분경 마무리됐고 문 대통령도 그 시간 행사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없는 상황에서 운영위에 함께 있었던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을 먼저 위기관리센터로 보내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를 주재했다"며 "이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23시경에 도착해 상황을 체크했고, 23시15분경에 대통령의 긴급 지시가 내려져 서면 브리핑을 냈고, 0시20분에 위기관리센터를 대통령께서 방문해 긴급회의를 주재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당 등의 주장과 달리, 청와대의 위기관리 대응은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정부는 지자체와 협력해 소방차와 소방헬기는 물론 군 병력 등 가용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산불 진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강원도 산불이 조기에 진압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발빠른 대처와 현장에서 화마(火麻)와 사투를 벌인 소방공무원들의 헌신와 노력 덕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외려 촌각을 다투는 국가적 재난상황에 위기관리를 컨트롤 해야 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 출석을 이유로 붙잡아둔 한국당의 행태에 비난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한국당은 지난 4일 홍영표 위원장의 요청에도 국가위기관리 책임자인 정 실장의 이석을 받아들이지 않아 산불 대응에 차질을 빚게 했다는 비판에 휩싸인 바 있다.
관련해 정두언 전 한나라당 의원은 5일 KBS '오태훈의 시사본부'와의 인터뷰에서 "그럴 때는 당연히 빨리 보내고 다른 사람이 질문하면 된다. 정의용 대신에 그 밑에 있는 사람이. 그런데 그걸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정신 나간 사람들이다. 그런 거는 진짜 잘못된 거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당 등이 문재인 정부의 강원도 산불 대응을 세월호 참사와 비교해 의혹을 부추기는 것도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한국당)의 무책임하고 비상식적인 행태를 상기한다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퇴임을 앞둔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임식을 취소하고 현장에서 진영 후임 장관에게 임무를 인계해 폭풍 공감을 받았다. 의전을 최소화하고 피해자들을 살뜰히 보듬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리더십도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문 대통령 역시 예정된 일정을 취소한 채 다음날 바로 화재 현장을 찾았다. 정부는 강원도 산불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피해복구와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달라도 너무 다른 대응이다. 사고를 모두 막을 수는 없겠지만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적어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망연자실해 있는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대책마련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노력 말이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어떠한가. 박근혜의 '7시간 의혹'은 아직까지 그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김장수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국가안보실은 재난 대처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유족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정부 여당 관계자의 막말과 부적절한 행동이 공분을 사기도 했다.
강원도 산불과 관련해 정부 때리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당을 향한 비판 여론이 심상치 않은 것도 이같은 전사(前事)와 무관치 않을 터다. 여야가 합심해 피해 복구에 최선을 다해야 할 시점에 산불마저도 정쟁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행태에 여론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기억력이 좋다. 게슴츠레한 표정으로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횡설수설 하던 대통령, 이런 대통령을 감싸고 비호하던 정부와 여당을 잊지 않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한국당이 산불로 정치공세를 펴는 건 번지수를 잘못 잡아도 한참은 잘못 잡았다. 국민은 세월호 참사 때 '당신들'이 어떻게 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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