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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유승민 사퇴와 새누리당의 끔찍한 자기부정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사퇴했다. 유 원내대표는 어제(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원총회 뜻을 받아들여 대표직에서 물러난다"는 입장을 밝히며 '유승민 파문'의 종지부를 스스로 찍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배신자로 낙인찍힌 지 13일 만이다. 이로써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이후 2주간 끌어온 유 원내대표의 거취 논란은 청와대와 여권 모두에게 지독한 상처만 남긴 채 끝이 나게 됐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던 날 새누리당은 하나였고, 아주 끈끈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 내에는 유 원내대표의 사퇴만은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쫓아내려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 사이에 불꽃튀는 공방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새누리당은 지독한 내분에 횝싸여야만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불과 몇일 만에 이같은 극심한 당내 갈등이 모두 봉합됐다. 귀신에게 홀린 듯 새누리당 의원들은 한 몸으로 유 원대대표의 사퇴결의안을 채택했고, 유 원내대표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동료의원들의 압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퇴장하고야 말았다. 정치적 이익 결사체의 저렴함이 돋보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자 코미디나 다름없었던 새누리당의 의원총회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 내리고 있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북한의 장성택에 비교하는가 하면 교장이 학생회장을 쫓아내는 격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청와대 2중대로 전락한 집권여당의 초라한 민낯을 한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을 무시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봉건적 인식에 몸서리를 치는 이도 있다. 그 어느 것이든 꼴사납기는 매한가지다. 역사는 이 날을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치부로 기록할 것이 분명하다. 





유 원내대표는 이 날 사퇴의 변에서 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향해 의미있는 발언을 남겼다. 그는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였다. 저의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애둘러 말하기는 했지만 저 발언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던지는 비판적 메시지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집권여당이 의원총회를 열어 원내대표를 사퇴시킨 경우는 초유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서슬 퍼런 진노에 여야가 합의했던 국회법 개정안 재의표결에 불참해 이를 폐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원내대표에게 그 책임을 물어 사퇴까지시켜 버렸다. 이는 여당이 정권의 하부조직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자인한 것으로 독재시절에도 없었던 진풍경이다. 


국회의원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지위와 정당인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이 둘이 충돌할 경우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할 의무(헌법 제46조 2항)를 우선해야 한다.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 시행되는 개원식에서 국회의원들이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다짐하는 것도 전제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지위가 정당인으로서의 지위에 우선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유 원내대표를 사퇴시키는 과정에서 새누리당 내에서 의회민주주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서 의회정치를 꽃피우고 이를 통해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지위보다 정당인으로서의 지위를 우선했다. 뿐만 아니라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할 의무 역시 철저히 외면했다. 이는 국회의원으로서 의회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할 막중한 의무를 져버린 것으로 명백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특히 '1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신분을 망각한 채 청와대의 거수기가 되기로 작정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앞으로 의회민주주의를 입에 달 자격조차 없다. 그들의 자격없음은 같은 당 이혜훈 전 최고의원의 날선 비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는 이 날의 풍경을 "박수로 통과시킵시다, 이의 있는 사람 있습니까? 이의 있는 사람 없죠? 이런 식으로 하면 북한식밖에 없다"고 묘사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의원총회 분위기를 북한의 그것과 다름없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 날의 분위기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 당은 민주적 절차에 의거해 개인의 양심과 철학에 따라 무기명 비밀투표로 결정되어야 할 주요안건을 최고 권력자와 지도부의 압력에 의해 박수치며 결정한다. 이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양심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원내대표의 거취를 논하는 중차대한 자리에서 박수로 사퇴 권고를 하는 이 장면에서 새누리당과 북한 노동당 사이의 차이점은 눈꼽만큼도 발견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민주정당임을 스스로 부인했다. 나는 이처럼 끔찍한 자기부정을 일찌기 본 적이 없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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