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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위대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돌아왔다. 7 10일간의 G20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이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그가 24일 국무회의에서 쏟아낸 말들은 단호하고 엄격했으며 매우 격앙되어 있었다. 매정함은 여전했고, 문득문득 살벌함마저 느껴졌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 14일 열렸던 광화문집회를 '불법폭력집회'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날 시위에 대해 원색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복면을 쓴 시위대를 가리켜 "IS(이슬람국가)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는 말까지 했고, 민주노총과 한상균 위원장을 폭력시위의 배후세력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전매특허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그는 탁월한 감각으로 사회적 현상이나 사건에서 반사이득을 귀신같이 얻어낸다. 그는 이번에도 전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IS의 파리 폭탄테러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국민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무나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능력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감각이 빛나면 빛날수록, 그의 능력이 발휘되면 발휘될수록 사회는 분열되고, 갈등과 대립의 격랑 속으로 빠져든다는 데에 있다. 이번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만 보더라도 관련 소식이 언론에 공개되자마자 야당과 노동계는 즉각 반발하고 있고, 시민사회는 깊은 한숨과 함께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 대통령이 통합과 화합의 정치가 아닌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펴고 있는 탓이다.



ⓒ 한겨레



시국 현안에 대해서 박 대통령이 토해내고 있는 언어들은 대부분 적대적인 자기중심의 언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배타적이고 고압적인 자세에서 자기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태도를 고집하고 있다. 정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권위와 복종을 강권하는 통치가 대신한다.

집권에 성공한 이후 박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이와 같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이다. 이 야만적인 이분법이 우리 사회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 결과 이제는 그 어디에서도 상생과 협치, 연대와 공존같은 사회공동체적 가치를 발견하기가 어려워 졌다. 이념과 진영에 따라, 지역과 세대, 계층에 따라 갈등과 반목이 점점 극심해지고 있다. 어쩌면 '헬조선'의 본질이 바로 이 부분에 놓여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열의 정치는 편가르기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가장 저급한 정치에 속한다. 인간 내면 속에 잠자고 있는 증오를 부추겨 체제를 안정시키고 권력 누수를 최소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시대 이후로 통치자들은 대중의 증오를 극대화시켜 적에게 맞서는 분열책을 빈번하게 사용해 왔다. 여기서 적이란 외부의 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통치자에게는 더 두려운 법이다.



ⓒ 연합뉴스 TV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그동안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국민들을 '종북세력'이라 칭해 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게 된 배경과 본질은 도외시한 채, 시위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시위대의 폭력행위와 '복면'을 문제삼고 시위대를 IS와 비교하며 폭도와 테러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시위대는 자신의 권위에 체제에 도전하는 내부의 ''이며, 따라서 응징해야 할 대상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인식 그 어디에서도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킨 국정교과서 강행, 노동개혁, 쌀값 폭락,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성찰을 찾아볼 수는 없다. 이번에도 그는 그 대신 폭도, 테러세력 같은 원색적인 비유를 통해 지지층의 결집을 유도하는 한편, 강력 대응을 천명함으로써 공포감을 유발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라고 엄포를 놓는 정부의 대통령다운 선택이다.

그런데 이 장면들은 어딘가 매우 낯이 익다. 과거 이승만 정권 말기, 박정희 유신 정권 말기, 전두환 신군부 정권 말기가 정확히 지금의 모습과 같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말살되고, 권위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공작정치가 횡횡했고, 공안통치와 강권통치가 시민권을 강제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그 당시의 복사판이다



ⓒ 연합뉴스



시위대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독재정권 말기에도 통치자들은 예외없이 국민들의 저항을 '폭도'들의 체제 전복 행위,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예를 들며 시위대를 향해 총기 사용을 언급한 집권여당 모 국회의원의 인식은 시위대 100만 쯤 죽여도 상관없다고 말했던 차지철의 재림이며, 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국민들을 향해 쏟아내고 있는 적대의 언어, 극단의 언어는 저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나타내는 방어기제일 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조짐이 매우 좋지 않다. 
박근혜 정부가 상상 이상의 강력한 국민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행태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 심각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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